버스 창에 메달려 손 흔들던 녀석들이 사라집니다.
가방을 들고 옥길동을 나섭니다.
" 병원 좀 다녀올께요 "
" 예..선생님.. 잘 다녀오세요 "
가슴이 답답합니다.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가슴이 쿵쾅댑니다.
가슴이 물결칩니다.
' 왜 이러지? '
알 길 없어 찾는 병원입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오고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펼쳐든 책 안으로 까만 글씨, 하얀 종이만 보입니다.
비가 내립니다.
물기 하나 없는 우산을 손에 들고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습니다.
애써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펼치기 싫습니다.
한의원입니다.
소문에 소문을 달고
입 소문에 용하다는 한의원입니다.
" 어떻게 오셨어요"
" 가슴이 이상해서요 "
" 가슴이 이상하다뇨? "
한 손으로는 맥박을 짚으며
가만히 바라보는 한의원 원장님.
" 고향이 어디에요? "
뜬금없는 질문.
" 부산인데요. "
가족관계는?
사시는 곳은?
거기서 사신지는 얼마나?
지금은 누구랑 함께 살죠?
하시는 일은?
일 하신지는 얼마나?
평상시 신경을 많이 쓰시는 편이신가?
왜 묻는지도 모르면서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합니다.
" 맥박은 정상인데.. 자신을 위해 활동적인 운동을 좀 해 보세요. "
" 활동적인 일을 하는데요 "
" 자신 만을 위한 운동을 말하는거에요. 자기만의 취미 생활이라든지..."
" 글을 쓰는데요 "
" 글이요? "
" 아이들과 생활하는 글을 씁니다. "
" 활동적인 것을 해 보세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내과에 가서 심전도 검사를 한 번 받아 보세요
그래서 이상이 없으면... 그것은 심리적인 원인입니다. "
" 예..잘 알겠습니다. "
별 희안한 질문에
별 희안한 처방에
별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다시금 비를 맞습니다.
' 나를 위한 일이라...'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여전히 펼져진 책 속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옆 자리에 젊은 여자 두 명이 나란히 앉습니다.
팔 목에 전해지는 사람의 느낌... 여자의 느낌.
' 아... 내겐 참으로 낯선 느낌... '
몸이 무겁습니다.
쉬고 싶습니다.
잠을 자고 싶습니다.
하지만, 잠이... 무섭습니다.
집 입니다.
눈을 감습니다.
가슴에서 온 몸으로 전해지는 심장 박동 소리.
' 둥.. 둥.. 둥.. 둥둥.. 둥둥.. 둥둥둥...둥둥둥둥...'
점점 빨라집니다.
온 몸으로 전해지는 소름끼치는 느낌.
' 이게 뭐지? 이게 도대체... '
벌떡 일어나 손에 집히는 대로 옷을 입습니다.
약국으로 달려갑니다.
" 저.. 진정이 안 되서 그러는데요.. 가슴이 막... 뛰어서... "
청심완을 꺼내 줍니다.
" 한 15분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실꺼에요 "
" 만약 자다가 또 그러면... 어쩌죠? "
" 그럼, 한 병 더 가져가세요. 만약을 위해... "
" 예... "
자리에 다시 눕습니다.
가슴 속이 엉망인 느낌입니다.
마땅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차라리 어디가 아픈지 알 수나 있었으면...
몇 시간을 뒤척이나 겨우 잠이 듭니다.
다행입니다.
오늘은 무사히 잠을 이룹니다.
아침입니다.
옷을 입고 병원으로 갑니다.
동네에 있는 내과 병원으로.
접수 창고에 접수를 하고 기다립니다.
" 어떻게 오셨어요? "
" 심전도 검사를 받아 보려구요. "
" 잠깐만 기다리세요. "
아이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 녀석들.. 담임 선생님 없다고 신났겠네~ '
심전도 검사를 받습니다.
가슴 사진도 찍습니다.
오줌 검사도 하고,
검사를 위해 검붉은 피도 뽑아 갑니다.
" 심전도에는 별 이상이 없는데... 증상이 어떻다고 했죠? "
" 예..그러니까... "
그동안의 일을 천천히 이야기합니다.
" 음.. 제가 생각하기로는 순간적인 비맥같은데...
혹시 오늘 저녁에도 그러면 맥박을 한 번 재어 보세요.
그리고, 오늘 검사한 것은 내일 알 수 있으니까 내일 다시 오시구요.."
" 예..알겠습니다. "
엉덩이에 주사 한 방을 맞고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받습니다.
이제 곧 아이들 점심시간입니다.
서둘러 가야하겠습니다.
" 선생님... 왜 이제 와요? "
" 선생님.. 어디가 아픈거에요? "
" 선생님, 죽어요? "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하는 녀석들..
" 응, 아냐~ 가슴이 아파서.. 병원에 갔어. "
" 가슴이 아파요? 슬퍼요? "
" 아니. .슬픈게 아니라... "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가슴이 져미어 옵니다.
가슴이 쏴-
기분 나쁜 느낌입니다.
" 아냐~ 괜찮을꺼야. 주사 맞았으니까... "
오늘은 편히 잘 수 있을까?
하루만이라도 편히 자고 싶은 마음...
하루 해가 참으로 긴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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