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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이 병으로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1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고속버스에 오릅니다.

할아버지 산소 벌초를 위해 부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가방 속 약 봉지를 만지작거립니다.

아침 일찍 내과에 들러 받아 온 약입니다.

먹어도 신통치 않았던 약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점심을 거른 후라 출출한 느낌입니다.

그런데도 입 맛이 돌지 않습니다.

버스가 출발합니다.

추석이 코 앞이라 고속도로가 많이 막힐 것 같았는데

버스 전용차선이 있어서인지 순조롭게 달려갑니다.

한 낮의 하얀 구름이 어느새 검게 변했습니다.

졸음이 옵니다.

초저녁이라 잠을 청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잠 맛을 잃은지 오래된 듯 합니다.

' 어서 빨리 도착했으면... '

불안한 마음이 차창으로 그려집니다.

행여 버스 안에서 또 다시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창으로 비춰지는 얼굴을 봅니다.

낯선 느낌...

내가 아닌 내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집니다.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하얀 종이처럼

가슴이 졸아듭니다. 답답합니다.

또 다시 시작되는 알 수 없는 두려움, 공포...

노래를 부릅니다.

히죽 히죽 마른 웃음을 지어 봅니다.

공연히 헛기침을 하고 자리도 고쳐 앉습니다.

하지만 사라지기는 커녕 점점 커져만 가는 공포...

가슴이 타들어가는 느낌입니다.

허벅지를 꼬집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으로 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퍼렇게 멍이 들도록 꼬집어도

가슴 속 두려움은 사그러들 줄 모릅니다.

불안이 점점 커져갑니다.

어떻게.. 어떻게... 내가 어떻게 될 것만 같습니다.

일어섰다 앉았다 일어섰다 앉았다

어수선한 모습에 옆 사람들이 힐끗 봅니다.

아..그런데...

다른 사람의 시선은 더이상 들어오지 않습니다.

" 잠시 후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쉬시는 동안.... "

아... 다행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몸을 추스리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어쩌지? 어쩌지? '

아버지 대신 가는 벌초 길인데...

일 년에 한 번 가는 벌초 길인데...

모든 생각이 지워집니다.

아무나 붙들고 매달립니다.

" 아저씨! 여기.. 여기.. 병원에 가야하는데.. "

주차 관리를 하시는 아저씨입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아저씨.

"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

" 심장이.. 심장이.. 멎을 것 같아요.. 구급차 좀... "

" 예? 예... 잠..잠깐 만 기다리세요. 금방 불러 드릴께요. "

부리나케 달려가는 아저씨를 바라보며

고개 숙여 무릎을 잡고 버팁니다.

" 하아~ 하아~ 하아~ "

숨이 가쁩니다.

순간 버스에 두고 내린 가방이 생각납니다.

버스로 올라 가방을 내립니다.

책이며, 음료수며, 빵이며

앞 좌석 그물망에 걸어 두었던 것들은

가져갈 엄두를 못냅니다.

" 여기.. 음료수라도 좀 드세요.. "

" 아니요.. 괜..괜찮아요.. "

" 숨은 쉬실 수 있으신거죠? "

" 네... 가슴이.. 가슴이.. 답답해요.. "

요란한 싸이렌 소리.

구급차가 옵니다.

황급히 내리는 구급대원이 묻습니다.

" 환자 어디있어요! "

" 여기.. 서 계신 분인데..."

" 어디가 아프신데요 "

" 심장이요.. 심장이 멎을 것 같아요.. "

심장이라고 얘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땅히 어디라고 얘기할 수가 없기에.

구구절절히 설명하기에는 남아있는 힘이 없습니다.

" 자! 어서 타세요. "

구급차를 차고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이제는 고향길에 가기는 다 틀렸습니다.

창 밖으로 금강 휴게소라는 팻말이 보입니다.

" 고향 가시는 길이신가 본데.. "

" 예..벌초 가는 길이었어요. "

" 산소 마스크 필요하세요? "

" 아니요. 지금은 괜찮아요. "

' 내가 구급차를 다 타 보다니...'

온갖가지 장비들이 즐비합니다.

생명을 위해 존재하는 장비들...

순간 어느 병원에서 봤던 작은 액자 글이 떠오릅니다.

' 병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갓난 아이와 같다 '

병원에 도착합니다.

뒷 문이 열리고 간호사들이 뛰어 옵니다.

" 환자는요? "

" 여기 있잖아요. "

멍 하니 의자에 앉은 나를 보고서

의아해 하는 표정입니다.

" 어디가 아프신거에요? "

" 심장이 멈출 것 같아서요. "

" 어서 내리세요. "

응급실입니다.

다행히 응급 환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 자! 여기 침대에 누우세요. "

벨트를 풀고

양말을 내리는 것을 보니

심전도를 체크할 모양입니다.

" 며칠 전에 심전도 체크한 적 있는데요. "

" 그래도 다시 해야 되요. "

체온을 재고 맥박을 잽니다.

호흡 수를 계속 확인하면서

심전도 수치를 들여다 봅니다.

" 다시 한 번 말씀 해 주세요. 증상이 어떻다구요? "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되돌려 말합니다.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물으면 말하고 물으면 또 말합니다.

" 일단 안정이 안 되니, 진정제를 놔 드리겠습니다. "

구급대원이 신분증을 가져갑니다.

힘없이 누워 하얀 천정을 바라봅니다.

'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듭니다.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져 옴을 느낍니다.

숨 쉬기도 한결 편해집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다가옵니다.

" 심전도도 이상없고, 맥박도 정상이고...

혹시 집 안에 안 좋은 일 있으신가요? "

" 아니요. "

" 그럼..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든지.. "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

" 음.. 그렇다면 제 생각엔... "

형광 불빛에 빛나는 의사의 안경테가 보입니다.

" 신경 정신과에 가면.. 공항 장애라고 하는게 있는데...

증세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없고 또 지금은 연휴기간이니까

안정이 되는대로 대학병원 신경 정신과를 찾아가 보세요.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신경정신과 의사도 있으니, 응급실로 가시면 될 겁니다. "

" 예.. 알겠습니다. "

" 필요하시면 제가 소견서를 써 드릴 수는 있습니다. "

" 예..그렇게 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

응급실 철재 침대에 누워 하얀 하늘을 바라보는 오늘은

추석 연휴 첫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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