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놀라고 긴장하다 보니
새벽녘이 되면 기진맥진입니다.
책을 읽어도 글이 없고
텔레비젼을 봐도 모양이 없고
좋은 냄새를 맡아도 입 맛이 없어
뻐꾹이 시계마냥 시간 맞춰 약만 먹습니다.
" 거.. 별초하러 갔으면 끝까지 하고 와야지..
나 같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벌초 하고 온다 "
아버지 섭섭한 말씀에
가슴이 더욱 시려옵니다.
" 몸 좋아지면 그때 다시 갈께요. 걱정하지 마세요. "
병든 병아리 골골하는 모양으로
아들 녀석 파리하고 해쓱한 모습에
쾡한 눈 바라보는 것이 못내 답답한 아버지이십니다.
" 거 참.. 젊은 놈이 별 놈의 병에 다 걸리네~ "
" 에이~ 아빠는... 오빠한테 자꾸 그러지 마요. 안 그래도 힘든데..."
말이란 씹어 뱉으면 냄새가 나고
가슴에 담으면 병이 되고
흘려 보내면 바람이 됩니다.
아버지의 말씀에는
모질어도 사랑이 묻어 있습니다.
그 사랑에 더욱 가슴이 시립니다.
" 오빠! 우리 영화라도 보러 갈까? "
" 아니~ 영화관이 답답할 것 같아. 시원한 바람 좀 쐬었으면 좋겠다. "
" 언니 금방 올텐데 조금 있다가 나가지 "
" 금방 올께. "
대수롭지 않은 병 하나 때문에
하루종일 벽에 눌린 듯 우울한 자신이 한심스럽습니다.
집 앞 구멍가게 앞
한 복을 예쁘게 입은 꼬마 셋이서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습니다.
정성스레 땋은 머리하며
발그레한 볼이 참 예쁩니다.
붉고 쓴 장같은 몸으로
걸음에 걸음을 보태기만 합니다.
아이들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 가슴 아프다고
가슴에 뽀뽀해 주던 녀석들.
그런 녀석들에게 지난 금요일에는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습니다.
애써 참는 화가 아니라
아무리 들여다 봐도 없었던 화(火)가 생겨난 것입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다고...
아이들을 바라보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한 마디 한 마디 말 속에
알알이 그 행복이 묻어나고
그래서 그런 삶에 풍덩 빠져
나날이 행복하게 살았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 행복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3년 전, 어머니 돌아가셨을 적에도
아픈 가슴 내밀어 함께 부등켜 안았던 아이들인데
그런 아이들에게
나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큰 소리를 내고 말다니...
힘든 내가 고통스러워
아이들을 믿지 못한 자신이 정말 밉습니다.
지금이라도 팔 벌리면
' 선생님~ '하면서 달려올 것만 같은 아이들.
그 아이들의 그 웃음이 정말 보고 싶습니다.
어떤 놈이 내 가슴에 들어와
재미를 훔쳐갔습니다.
어떤 놈이 내 가슴에 들어와
신바람을 메고 갔습니다.
어떤 놈이 내 가슴에 들어와
온갖가지 행복을 헤쳐 놓고 갔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녀석도 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보지 못하여 가져 가지도 헤치지도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 없어도
결코 포기하거나 쓰러지지 않는
내 마음의 희망이 그것입니다.
내 마음을 둘러싼 희망의 울타리가 그것입니다.
어떨 때는 나 자신도 못 느끼는 것이기에
그 어느누구도 훔쳐갈 수도 빌려갈 수도 없습니다.
희망이 곧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어 살아있음을 느껴봅니다.
가슴에 손을 얹어 쿵쿵 뛰는 자신을 느껴봅니다.
가슴에 손을 얹어 앞으로도 힘차게 살아 갈 자신을 그려봅니다.
가슴에 손을 얹어 내 마음의 희망을 느껴봅니다.
괴롭고 힘들수록 희망은 더욱 나와 함께 함을 믿습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봅니다.
언제나 말 없이 높기만한 하늘
그래서 하늘은 언제나 하늘입니다.
'달봉샘의 성장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꾸러기 바라보기 (0) | 2010.05.05 |
---|---|
겨울 할아버지 (0) | 2010.05.05 |
다툼 (0) | 2010.05.05 |
배가 아픈 이유 (0) | 2010.05.05 |
높고 높은 담 너머에는 (0) | 2010.05.05 |
이 병으로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2 (0) | 2010.05.05 |
이 병으로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1 (0) | 2010.05.05 |
보기에도 좋고 놀기에도 좋고 (0) | 2010.05.05 |
고구마를 캐는 마음으로 (0) | 2010.05.05 |
마음의 병 (0) | 2010.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