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생각...
눈을 떳습니다. 번쩍!
하얀 천정이 보입니다.
눈동자만 굴려 좌,우를 살핍니다.
자던 곳에서 그대로 깨었습니다.
다행입니다.
목이 아파서 엎치락 뒤치락
나무침대에서 쿵하고 떨어지길 여러 번.
제일 중요한 순간!
준비운동도 안 한 얼굴
있는 얼굴 없는 얼굴 다 이그러뜨려 침을 꼴깍!!
아..................
안 아픕니다. 천만다행...
몸을 모로 눕혀 천천히 일어납니다.
머리가 가뿐...
확실히 감기는 주사 한 방이면 해결되나 봅니다.
씨익..
웃음이 납니다..
이 놈들..
아이들 얼굴이 스쳐가며 장난할 생각에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치솔도 반갑고 하얀 면도 거품도 반갑습니다.
휘익 휘익 .. 휘파람을 부르며 샤워기를 틉니다.
"앗.. 차가 !"
허겁지겁 벗은 옷을 입고 보일러 실로 달려갑니다.
보일러 고장..
그래도 즐겁습니다..
찬물로 머리 감으며 " 으.... 시원타!!"
면도하다 네 군데나 피투성이 되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최고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 면도를 시작했는데
아직도 면도만 했다하면 곧잘 피를 봅니다. 쯧 쯧..)
신나게 대걸레를 타며 헤리포터가 됩니다.
물 통에 물을 채우며 소방관 흉내도 냅니다.
오늘따라 복도가 반짝 반짝 합니다.
선생님의 눈에서도 반짝 반짝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파김치가 되었던 어제처럼
약먹은 병아리마냥 처량했던 어제처럼
따뜻한 햇볕 창가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 녀석들이 왔습니다..
"선생님.. 여기 쌍화탕!!"
인사는 던져두고 쌍화탕부터 내미는 녀석..
오자마자 호주머니를 터는 녀석.. 뭘 하는것이지?
"여기 있다.. 선생님.. 비타민 씨..."
"근데.. 한쪽은 어디갔냐?"
"친구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한쪽 줬어요.. 히...."
에구.. 이쁜 녀석...
약봉지를 들고 있는 선생님 주위로
아이들이 빙 둘러 에워쌉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야.. 선생님도 약 먹는다.. "
"맛있겠다.. 우리 할아버지도 저거 먹던데.."
"내가 할아버지냐.. 이 녀석...."
"헤헤헤.."
"어.. 저 초록색 약통.. 맛있겠다..."
"이건 먹는게 아니구 가글 가글 하는 가그린이야.. 이 녀석아.."
"나두 가그린 하면 안되요??"
이 때에 제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너도 나도 덤빕니다.
제빨리.. " 이거 안 아픈사람이 하면 목에 병 생긴다.."
"저도 목 아파요.. 보실래요??"
새끼 악어들 마냥 입을 벌리고 있는 녀석들...
"입 안 다물면 입 안에 파리 한 마리씩 넣어 줄테다.."
합죽이가 됩니다.
"선생님.. 이제 안 아파요??"
"그럼.. 그럼.. 오늘만 너희들이 말 잘 들으면..."
조용해 집니다...
"자.. 그럼 ...신나게 시작해 볼까??"
"녜... 선생님!!!"
세상에 요로코럼 예쁜 천사들이 있을까....
하나님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렇게 많은 천사들과 사는 사람..
하나님 말고 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 용서해 주세요!!
두 번째 생각..
초등학교 아이들 몸 익히기 시간입니다.
1, 2학년 합반 수업...
이 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질경이반, 민들레반이었던 녀석들..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동생들만 보면 어깨에 힘을 줍니다..
그것도 모자라 으름장을 놓거나...
나팔꽃 화분에 물 주는 아이들.. 장난을 걸고....
심지어는 욕까지 합니다..
이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이제는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왕년의 담임 선생님을 놀이친구로 아는 녀석..
보기만 하면.. '헤이.. 느끼스타... "
무슨 뜻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에 대한 존경(?)은 어디로 갔는지..
존경은 아니더라도 그 애정어린 눈 빛은 어디로 갔는지..
온 눈에 장난기만 달고서 반 말만 일삼는 녀석들..
이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선생님이 몸 익히기를 하기전에 먼저 할 이야기가 있어요..."
눈치빠른 녀석들..
슬금 슬금 엉덩이를 들더니 선생님 앞으로 쪼르르 달려 나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 덩달아 나옵니다..
"너는 들어 가라..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나오냐?"
"얘들이 나가잖아요.. 나오는거 아니에요?"
"제들은 왜 나오는지 안다.. 너는 아니?"
"아니요??"
"그럼 들어가라..." "녜..."
"왜 나왔는지 알지?" "녜..."
선생님의 압도적인 눈빛도 딱 딱 부러지는 말의 힘에 견주어
아이들은 정말로 반성하는 기색이 영력합니다..
나중에는 아닐지언정... 그런데.. 따악 한 녀석!!
입가에 오묘한 웃음.. 눈가에는 여전한 장난 끼..
" 뭘? "
"뭐...뭐..뭘이라고 했니? 방금?"
" 그래.. 뭘? "
고개가 땅에 떨어지랴 반성한 녀석들은 들어가고 한 녀석만 남았습니다.
" 너는 선생님에게 계속 반말하겠다는 뜻이에요? "
" 그래.."
"그래?"
"알았어요.. 선생님은 선생님에게 반말하는 녀석에게는 수업을 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도 존댓말을 쓰는데 아이가 반말을 하면 이상하잖아요.. 안 그래요?"
" 이상하긴 뭘? "
"그런데.. 왜 선생님에게 반말을 하는데요?"
"그냥... "
"그럼.. 몸 익히기 수업 못해도 좋아요?"
" 좋아... "
"그럼. .나가세요.. "
"알았어..."
문을 열고 나가는 녀석..
"정말 나갔어..." 수군대는 녀석들..
전부 아리송한 표정들입니다..
제가 왜 저럴까?
6살, 7살 2년동안 가르친 녀석인데.. 7살때는 담임선생님이기도 했는데..
가만히 보니 밖에서 혼자서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안되겠습니다..
"이리 와 보세요.. 담임 선생님께 허락을 맞고 와야겠어요.."
담임 선생님께 데려 갑니다..
"저.. 선생님.. 얘가 몸 익히기 수업을 하기 싫다는데요?"
"그래요? 그럼 교실 한 쪽에 세워 두세요. . 수업동안에..."
"그럴까요? "
선생님의 허락을 맞고 교실로 다시 데려 옵니다..
" 여기에 서 있으세요.. 기대어서도 안 되고. .앉아서도 안 되요..
수업중에 잘 생각하다 선생님에게 할 말이 생기면 이야기 하세요..
알았죠? "
" 여기 가만히 서 있으라고? 손을 짚어도 안 되고? "
"그래요..."
"알았어..."
누가 선생님인지.. 누가 아이인지..
1시간 30분동안 계속된 수업 시간동안 이 녀석은 몸을 들쑥 날쑥 하기만 할 뿐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날 쯤...
"하고 싶은 이야기 있니? "
"아니.. 없어..."
"그런데.. 선생님이 정말 궁금한게 있는데...
선생님에게 왜 반말만 하는거야? 왜 그런거야?"
다리가 아픈지.. 얼굴색이 신통치 않던 녀석..
한쪽눈을 계속 비비더니 결국에는 눈물을 흘립니다..
두 손목을 잡습니다..
" 이야기 해 봐. .선생님에게 왜 그러는지..."
눈물이 흐르더니 울음보를 터뜨립니다..
" 이거 놔.. 집에 갈꺼야.. 친구들도 가잖아..."
친구들이 나가다 말고 쳐다 봅니다..
"얘.. 이러는거.. 처음 본다.."
친구들이 걱정이 되는지 가다 말고 거듭니다..
"괜찮으니까 너희들은 먼저 가세요..."
한 번 터진 울음보.. 그칠 줄을 모릅니다..
가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이 녀석...
멍하니 쳐다만 봅니다..
울음소리를 듣고 담임선생님이 오십니다..
"얘가 몸이 안 좋아서 그래요.. 인사하고 가야지.. 자.. 고개 숙이고.."
담임 선생님이 억지로 인사를 시키고 데려 갑니다..
아이들이 없는 교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2년동안 가르친 녀석..
이제 8살이 된 녀석..
몸 익히기 수업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녀석...
선생님에게 반말을 자주 해서 엄마를 난처하게 하고
아빠를 화나게 했던 녀석.. 하지만
선생님과 약속하면 약속을 정말 잘 지키던 녀석..
놀이 시간에만 편안대로 말하겠다고 하던 녀석..
특히.. 오늘만큼은 너무나도 건강한 이 녀석..
바로 그 녀석이 선생님 앞에서
온갖 생 때를 쓰다가 갔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
너무나도 사랑하는 녀석이고
녀석이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알지만
그래도 반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며칠이나 생각하다 한 말인데..
내가 잘못한 것일까......
아이들이 가고 난 후 담임선생님께서 이리 저리 상황을 말씀 해 주십니다.
그것은 아닌것 같은데..
내가 아는 저 녀석은 그런 녀석이 아닌데..
담임선생님의 말에 그냥 고개만 끄떡 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럴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아이들이야 그럴 수도 있지!!
그러니까 아이들이잖아..
7년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한 번도 생각 해 본 적이 없는 말들입니다.
여러번 생각하지도 뒤틀리지도 않은것이 아이들 생각입니다..
선생님이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그 녀석은 그렇습니다...
무엇을 잘 못 했을까..
다리가 아파서 터뜨린 울음일까?
하고 싶은 것을 못 해서 화나서 터뜨린 울음일까?
애석하게 마음을 몰라주는 선생님이 미워서 흘린 눈물일까???
별 일도 아닌 일이라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생각입니다.
오늘따라 선생님 마음이 답답합니다..
오늘따라 선생님 가슴이 텁텁합니다..
오늘따라 선생님 눈앞이 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