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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선생님이 무서워요!


현관문에 노란의자 꺼내놓고 앉습니다.

어제는 6개

오늘은 12개

딱 두배입니다.

후다닥 뛰다가 꽈땅하고 넘어진 작은 무릎

빨간약 척 척 발라줄 때

몰려드는 아이들 얼굴처럼

빨간 장미 고개 내민 것이 12개입니다.

웅성 웅성 아이들이 옵니다.

옥길동 작은 회관 신발장이 들썩입니다.

한 녀석이 후다닥 들어갑니다.

선생님 옆 머리에 눈동자를 달아놓고

먼지도 가라앉지 않은 신발을 던져 놓고 가는 녀석..

눈이 커다란 녀석

양 머리를 옆으로 곱게 묶은 귀여운 녀석

선생님의 눈에는 한숨 달린 눈물이 고입니다.

"선생님이 무섭대요!"

"누가요?"

한 녀석을 봅니다.

선생님을 바라보는 눈이 흔들립니다.

고개를 흔들어대는 것이 영락없이 싫은 모양입니다.

눈물이 펑 펑 쏟아지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왜요?"

"몰라요..그냥 무섭대요. 질경이반에 가기 싫데요. 어쩌죠?"

"글쎄요... 오늘은 그럼 민들레반에만 있으라고 하세요"

선생님 돌아서는 모습에 눈동자가 따라 옵니다.

"왜 그럴까?"

다음날에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안 왔어요?"

"네"

"왜요?"

"선생님이 무서워서 오기 싫데요"

"그래요?....."

"선생님..혹시.. 수업시간에 무슨 일...있었어요?"

"아니요? 그런 일이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얘들아, 선생님 좀 도와줄래?"

"뭔데요?"

"민들레반 0 0 가 선생님이 너무 무섭대.. 그래서 오기 싫대"

"선생님이 무섭대요?"

"그래"

"맞아... 선생님이 무서울 때도 있어"

"아니야..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그러시는 거야.."

"나는 좋기만 한데.."

"그래서 너희들이 도와줬으면 좋겠어.."

"어떻게요?"

"너희들이 0 0 에게 잘 말해 줄래?

선생님의 마음을 말야..너희들은 잘 알잖아.."

"알았어요.. 만나면 얘기 할께요"

"그래.. 꼭 해줘.. 부탁한다..."

국민학교 2학년 때인가..

아버지께서 바카스를 2병 사 오셨습니다.

한 명은 할머니 드리고, 한 병은 내가 먹으라고..

한 명을 후루룩 마시고 할머니께 박카스 한 병을 내밉니다.

할머니 생각없으시다고 '네가 먹어라'하십니다.

한 손에 빈 병들고 후루룩 한 병을 마시는데

아버지 바라보십니다.

"그거.. 할머니 드리라고 했잖아.."

"할머니가 나보고 먹으래"

"그래? 너 이리 좀 와 봐라.."

아버지 무릎에 엎드립니다.

천천히 엉덩이를 툭 툭 치시더니

천천히 엉덩이가 아파옵니다.

아버지 얼굴을 올려다 봅니다.

화가 얼굴에 가득합니다.

놀라 아버지 무릎에서 일어섭니다.

아버지 따라 일어섭니다.

신발도 신지 않고 어머니 계신 가게까지 뜀박질을 합니다.

아버지 한 손에 커다란 걸레자루 쥐시고 쫓아 오십니다.

커다란 호랑이가 달려오듯이 무서움에 다리가 오그라듭니다.

어머니 무릎에 숨습니다.

아버지 가게로 들어섭니다.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걸레자루를 내려 놓으시고

어디론가 가십니다.

20년도 넘은 이야기

영화처럼 돌아갑니다.

무서운 아버지를 떠올리면

맨발로 뛰어가던 멀고먼 오르막길

숨이 턱에서 가슴으로 몰아치던 그 때가

두 눈에.. 한 눈에 그려집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상처였습니다.

상처..

나도 모르게

작은 아이 가슴에

커다란 두 눈에

어린 시절 무서웠던 기억을 심은 것은 아닌가...

달님 얼굴에 달아놓고

베갯머리 커다랗게 포개놓고

며칠동안 선생님 가슴을 송두리채 뒤흔들며

오늘도 그 녀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무슨 이유일까? 내가 무슨 잘못을.. 어린 가슴에.."

어머니로 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민들레반 선생님.. "네" "네"

"선생님.. 이제 조금 실마리를 잡은 것 같네요"

"무슨... 실마리?"

"선생님.. 전에 목이 아파 하룻동안 말씀을 못하신 적이 있으시잖아요"

"있죠.."

"그때 태권도 하는 아이들 중 여자 아이들 모두가 울었지요?"

"아니요? 그런 적 없는데요? 아.. 한 녀석이 울었어요"

"그 운 녀석이 하는 이야기를 이 녀석이 들었대요.. 그 날 이후부터

하루 하루 선생님이 무섭다고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이제는

아예.."

"그래요?"

그 때 운 녀석은 빙글빙글 도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달리기 하며 도는 놀이가 너무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녀석

지금은 선생님 꼬리를 따라 다니는 병아리가 되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웃음을 달고 다니는데..

왜.. 다른 녀석이...

병원을 왔다 갔다... 칼날같이 선 편도선에 말을 못하던 기억..

7세반 아이들 수업에는 수화에 그림에 손짓 발짓..

태권도 시간에는 그도 통하지 않아 겨우 겨우 목소리를 내던 기억..

목을 타고 넘던 침을 삼킬때마다

온 몸을 울리는 통증에

얼굴이 찡그려지던 바로 그 때에

아이들은 무서움을 느꼈는가 봅니다.

아.........

선생님 얼굴을 바라보는 녀석들

편히 의자에 앉아 자유놀이를 주면 그만인것을..

끝끝내 수업을 하고자 목소리를 낸 것이

이 녀석에게는 무서움이 되다니..

"선생님은 가만히 있으면 무서운 얼굴이에요"

지나가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아픈 가슴을 도려냅니다.

"선생님이 해결하셔야지요..."

"그래야지요.. 그래야지요..."

늦은 시간 가만히 앉아 거울을 봅니다.

130명중의 한 명.. 단 한 명이 나를 너무나도 무서워한다..

에이..겨우 한명인데?

머리를 쥐어 박습니다. 겨우 한 명이라니..

세상과도 같은 한 명입니다.

한 명이 전부입니다.

처음 YMCA를 찾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얼굴이 무섭게 생겼는데도 아이들이 좋아할까요?"

그때 했던 말들이 방안을 가득 메웁니다.

'얼굴이 문제가 아니야..

선생님은 얼굴로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않아.."

얼굴이 문제가 아닙니다.

얼굴이라면 가면이라도 쓰고 볼 테지만

보여지지 않는 마음에는 무엇을 씌워야 할까..

작은 방 천정에 한 숨이 덕지 덕지 붙습니다.

'내가 문제라면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도 바로 나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달기까지는

아직도 멀고 먼 길을 걸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미안하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준 아픔.. 선생님이 안아줄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머리맡에 벗어 둔 유리알 안경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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