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글을 언제 알려줘야 할까? 이 물음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합니다. 준비물을 챙기고 숙제를 하기 위해 알림장을 적습니다. 여덟 살이 되기 전에 한글은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한글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시작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한글을 알고 싶어 하는 때가 가장 적당한 때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아이들은 학교생활을 어렵게 하지 않기 위해 미리 한글을 배웁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어릴 때 한글에 보이는 첫 반응을 부모님들이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글자 하나를 물으면 둘을 가르쳐 주려 합니다. 하나를 알면 둘을 알려고 하는 것이 바로 호기심인데 부모들은 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마저 가르쳐주려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나마 알고 싶었던 하나마저 몸서리 처지게 만들고 맙니다.
배움은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먼저 임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있지도 않았던 괴로움을 먼저 안겨줍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배우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할 마음이 생길 턱이 없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면 모든 단추가 제 짝을 잃습니다. 공부는 과연 재미없는 것일까요? 하고 반문해 봅니다. 공부를 재미있게 하지 않는(또는 재미있게 하려고 해도 되지도 않는) 다수의 사람들로 인해 공부는 아이들에게 있어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아기스포츠단 아이들과 한글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요?
첫째, 아이들이 서로 다르듯 아이들을 만나는 방법도 서로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맞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내 아이에게만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아이를 보편적인 아이로 만들려 하기 보다는 내 아이의 특성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 아이가 천편일률적으로 교육하는 일제가 남겨놓은 군대식 교육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내 아이를 보다 잘 알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정의 살림을 맡고 있는 엄마가 일관적인 교육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규칙적인 반복 학습에 있습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을 하거나 심지어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에도 규칙적인 반복 운동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엇을 하든 규칙적으로 계속 이어 나간다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정의 살림을 맡고 있는 엄마가 매일 규칙적으로 내 아이를 일관되게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날그날의 감정이 다르고 무엇보다 내 아이에 대한 욕심이 선생님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째, 엄마들도 해 보지 않은 교육에 있어서는 예전 엄마가 어렸을 때의 배움의 과정을 답습하거나 현재 나와 있는 보편적인 방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한글과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반응에 엄마들은 흥미진진해 하며 엄마들에게조차 아이들의 반응에 따른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때의 엄마들은 그 어느 훌륭한 선생님보다도 더 훌륭한 내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선택하여 한글과의 만남을 주선합니다. 아이들은 더욱 신바람이 나며 엄마들은 더욱 흥분하게 됩니다. 심지어 내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하는 꿈까지 꾸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과정은 참으로 막막해집니다. 더 이상 내 아이의 특성을 살려주는 방법은 없는 듯 하고 고민하고 노력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학습법을 활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이때부터 아이들은 호기심이 아닌 단지 해야만 하는 학습의 희생양으로 전략하고 맙니다. 이후부터는 내다보지 않아도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알면서도 이 방법밖에 없음을 엄마들은 위안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공부를 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서로 다른 방법을 아이들이 스스로 찾을 수 있을 때까지만 부모가 도와줄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의 내일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네째, 아이들은 호기심의 충족이나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엄마와의 시간 또는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더욱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마의 사랑을 계속 확인 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습성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엄마들은 아이들의 반응에 자기식의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한글 배움을 통해 단지 동생이나 집안 일로 인해 빼앗겼던 엄마와의 시간을 되찾은 것에 대한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희열을 지속시키기 위해 엄마와의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배움의 희열은 바로 이러한 과정의 자연스런 다음 단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엄마들은 아이들에 대한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서둘러 일을 망치기보다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내 아이에게만 집중하면 됩니다. 넉넉한 것에 익숙해지면 부족한 것에 대한 자기 노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한글 배움에 있어서도 충분을 넘어선 도움은 결국 아이들을 스스로 할 줄 모르는 아이로 만들고 맙니다. 부족함이 있을 때 스스로 갈구함이 생깁니다. 배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부족함이 있어야 충족을 위해 자기 노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 째,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합니다.
배움은 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배움은 아이가 평생 자기 삶을 스스로 일구어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가장 자기 주도적인 행위입니다. 학교 과정을 위해 배움에 대한 삶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해 주세요.
실제로 2년 동안 ‘아이사랑’이라는 엄마 모임을 진행하면서 한글 배움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6세 아이들과 7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엄마가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학습지를 가지고 하던 엄마만의 방법으로 하던 방법은 크게 제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가르치지 않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직접 글과 그림 편지 쓰기를 통해 아이들과 한글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엄마들이 아이들과 한글을 만난 방법은 한글을 배우기 위한 소통이었고 선생님은 소통을 위한 한글 배움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타난 결과는 시작 전에 예상했던 것처럼 소통을 위한 한글 배움을 한 아이들이 한글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를 나타냈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한글 배움에 대한 과정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근거가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아이들이 배움을 바라보는 시작은 될 수 있을지언정 배움에 대한 자기 주도성을 가지기에는 단지 한 번의 경험일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배우던 배움에 대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익숙해지고 난 다음의 과정입니다. 익숙하지 않는 것, 자연스럽지 않은 것, 처음 접하는 것들이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배움의 끝이 되는 배움은 아이들의 삶에 어떠한 파장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못하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얻는 것은 성취감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즐기고 느끼고 나누며 새로운 배움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은 자기 충만감입니다. 성취감은 자신감을 높여 주고 자기 충만감은 자존감을 세워줍니다. 자신감이 매일 필요한 만큼 채워줘야 하는 비타민이라면 자존감은 건강한 삶을 만들어 주는 기초 체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익히 아시겠지만 유아 시기는 아이들의 그릇에 이것, 저것 경험을 위한 다양한 과일을 담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들의 그릇 그 자체를 만들어 가는 시기입니다. 한 그루 두 그루 나무를 심기 전에 어떤 나무를 심어도 잘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건강하게 만드는 시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배움에 너무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을 말하기 전에 이것, 저것 몸에 좋다는 것만 밥상에 차려 놓아 아이들이 밥 먹는 것 자체를 싫어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아기스포츠단에서 보여줬던 그 웃음과 그 몸짓을 지켜갈 수 있도록 아이들의 지킴이가 되어 주세요. 공부(배움)는 재미없는 것, 공부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가슴 아픈 삶을 살지 않도록 해 주세요.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한글을 떼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에 가서도 배움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움 그리고 나눔과 베품을 이어갈 수 있는 아기스포츠단 어린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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