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겆이를 합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아버지께서는 화분에 흙을 붓고 계십니다.
월세살이 남의 집 앞에는 리어커가 두 대
며칠 전부터 푼 돈이라도 벌어야지 하시며
시작하신 고물줍는 일입니다.
" 냉면 하나 해 줄까 "
" 아버지는 식사 하셨어요? "
" 나는 뭐... 생각없다. "
" 아버지 안 드시면 무슨 재미로 먹어요? "
" 같이 먹으면 되지. 해 줄까? "
" 네~ "
아버지 음식 솜씨는 일품입니다.
어머니 살아 생전 어머니 솜씨였다 생각했던 음식 맛
알고보니 아버지 손 맛이 많습니다.
뭘 먹기에 부담스런 시간이지만
혼자서는 잘 드시지 않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더부룩하더라도 함께 먹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금새 뚝딱 냉면 두 그릇이 만들어집니다.
예순 셋 되신 아버지 냉면 그릇에는 계란이 하나
서른 여섯 먹은 아들 냉면 그릇에는 계란이 셋
" 제 껀 왜 계란이 세 개나 되요? "
" 너 어제 삶아 논 계란 다 먹었지? "
" 어떻게 알았어요? "
아버지는 아들이 잘 먹는다 싶으면 잊지 않고 챙겨주십니다.
" 그래도 세 개는 너무 많다! "
" 먹어라. 계란 많이 먹는다고 나쁘냐! "
" 먹으면 되잖아요 "
삶은 오징어를 잘 먹는다고
보름동안 매일 오징어를 삶아 주시고
바나나를 좋아한다고
한 달 내내 바나나만 사오시던 아버지.
2년 전 막내 동생은
아버지께서 수박을 두 달동안 계속 사오셔서
동그란 것만 보면 수박 생각이 났다 합니다.
자식 사랑이 가득한 아버지와
질리도록 먹고도 아버지 생각에 오늘도 먹는
미련퉁이 아들 들입니다.
서른 여섯이나 먹은 아들을 챙겨 주시는 아버지 덕에
서른 여섯 먹은 아들은 행복합니다.
서른 여섯 먹은 아들은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 아버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
" 뭔데 "
" 도대체 토끼는 왜 키우시는 거에요? "
언제부터인가 좁은 현관문 옆을 차지한 토끼 장.
벽에 걸린 서랍장이 토끼 장이 되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줄줄이 화분에는 상추며 고추며
심지어 야산 진달레까지 화분에 심겨져 있습니다.
" 심심해서 키운다. 심심해서. "
" 심심해서요? "
" 얼마나 심심하면 요만한 꼬맹이라도
하나 주워서 키웠으면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오늘은 산에 가서 감나무를 하나 캐 왔다.
그 감나무 잎파리 늘어가는 것 볼려구... "
서른 여섯 먹은 아들이 말을 잇지 못합니다.
" 에이~ 어디 가서 애나 하나 주워와야 되겠다 "
“ 난 심심하다. 심심해서 토끼 키운다. 왜! "
" 알았어요. 어디가서 꼬맹이 하나 주워다 드릴께요 "
아버지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말은 가볍게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겁습니다.
풍족하게 살던 어린시절 뒤로
전세 집 한 번 살아보지 못한 아버지이십니다.
아들 둘, 딸 둘을 키우시며
자식들에게 아버지 대접 한 번 받아 보시지 못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매일 같이 늦게 오는 아들을 위해
빨래도 해 주시고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끼니를 챙겨주시려는 마음.
서른 여섯 먹은 아들은 헤아리기에도 힘이 듭니다.
설겆이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먹은 냉면 그릇 두 개.
" 아버지! 다른 일 생기셔도 고물 줍는 일 계속 하실꺼에요? "
" 다른 일 생기면 안 해야지~ "
아버지 일자리를 한 번 알아봐야겠습니다.
복지관에서는 예순 아래 되신 분만 일이 있다 하고
공공근로는 예순 다섯 위 로 되신 분만 할 수 있다 합니다.
애매하게 걸린 나이
우리 아버지 나이, 예순 셋!
전세 집을 한 번 알아봐야겠습니다.
오늘 내일 미루던 일이 벌써 몇 달 째 접어듭니다.
이틀 전 어버이 날에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 용돈을 드리며
쑥덕 쑥덕 자식들이 입을 맞춥니다.
한 달에 얼마씩 돈을 모아 드리자고.
그래도 일을 안 하실 아버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월세 값은 손수 내시려는 마음을 덜어 드리기 위해.
더부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천정 한 번 바라봅니다.
' 그나저나 ... 아이는 어디서 주워오나~ '
'달봉샘의 성장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일 (0) | 2010.05.05 |
---|---|
꼬마야 꼬마야 (0) | 2010.05.05 |
누이 좋고 매부 좋고 (0) | 2010.05.05 |
그냥 하는 일 (0) | 2010.05.05 |
기 싸움 (0) | 2010.05.05 |
내가 되고 싶은 것 (0) | 2010.05.05 |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0) | 2010.05.05 |
습관 (0) | 2010.05.05 |
하늘에서 똑 떨어진 다섯 살 녀석들 (0) | 2010.05.05 |
선생 노릇 (0) | 2010.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