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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유리 구슬 1.


" 선생님! 이거 친구들 보여 주려고 가지고 왔어요! "

구슬이 잔뜩 든 주머니를 내밉니다.

먹을 것을 한 입에 양껏 담은 개구리 입처럼

울퉁불퉁 둥근 구슬이 터질듯이 담겨 있습니다.

" 우~와! 구슬이 굉장히 많구나 "

" 예~ 제가 다 모은거에요 "

" 그래~ 알았어. "

노란 의자에 앉습니다.

" 여기요 " " 여기요 "

선생님 무릎에 잔뜩 쌓이는 물건들.

모두들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집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입니다.

친구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녀석들.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이지만

자신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들.

아마도 친구들 앞에서 보여지고 싶고

친구들 앞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소중한 마음일 것입니다.

" 어~ 이건... 천사의 눈물이네? "

유리 구슬 중에서 아래는 넙적하고 위는 둥그스름한 구슬

마치 눈물 방울이 얼어 구슬이 된 듯한 모양.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이름은 '천사의 눈물' 입니다.

" 나도 천사의 눈물 있어요 "

" 그렇구나! 참 소중한 것인데, 잘 보관해야겠지? "

" 음.. 이건.. 뭘까? 요상하게 생겼네? 어디서 온 녀석이지? "

" 제 보물이에요 "

자세히 보니, 손톱깎기에서 빠진 나사같습니다.

손톱깎기가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고정시켜 주는 나사.

반짝 반짝 빛이 나는 것이 나사도 보물이 되는 순간입니다.

길에서 주은 돌멩이

새로 산 옷에서 나온 고정 핀

희안하게 생긴 외국 동전

엄마의 부서진 머리 핀

할머니의 오래된 비녀

무엇이든 마음을 주면 보물이 되나 봅니다.

" 다른 사람들에게는 쓸모도 없고 좋아보이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물건이니까

나를 아끼듯이 소중하게 간직하세요. "

" 네~ "

아이들이 서로의 보물을 보여주고

서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다툼도 생깁니다.

눈처럼 하얀 구슬 하나가 다툼을 불러 옵니다.

세 녀석이 다툽니다.

서로 자기 구슬이라고 우깁니다.

세 녀석과 함께 이야기를 합니다.

" 선생님! 이거 내껀데 얘가 자기꺼래요 "

" 아니에요! 내꺼에요. "

" 내가 집에서 가져왔단 말이에요 "

울상이 된 녀석, 화가 난 녀석, 눈물을 흘리는 녀석.

" 하얀 구슬이 천사의 눈물처럼 눈물을 만들었네~

한꺼번에 얘기하면 누구의 얘기도 들을 수 없으니까

차근 차근 한 명씩 얘기하자. 누구부터 얘기할래? "

" 저요! "

" 그래, 너부터 얘기해 봐. "

" 이거요. 우리 삼촌이 사 준 구슬이에요. 제가 집에서 가져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교실에서 잃어 버렸어요. "

" 그래? 이 구슬이 맞단 말이지? "

" 예 "

" 네 구슬이란 것을 어떻게 알아? "

" 하야니까요 "

" 이 세상에 하얀 구슬이 이거 하나 밖에 없을까? "

" 아니요. 많아요. "

" 그럼, 이 구슬이 네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네~ "

" 아니에요. 내꺼 맞아요. "

" 그래. 알았다. 다음 친구 얘기를 들어 보자. "

다음 녀석이 말합니다.

" 이건 제가 집에서 가지고 온 건데, 복도에서 없어졌어요. "

" 아~하, 너는 복도에서 잃어 버렸구나? "

" 네 "

" 이 구슬이 네 구슬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 "

" 하얀 색이니까요 "

" 이 세상에 하얀 색 구슬이 이것 밖에 없을까? "

" ................ "

" 많아요! "

좀 전에 대답한 녀석이 얼른 끼어 듭니다.

" 지금은 네가 얘기할 차례가 아냐! 친구 얘기를 듣는 시간이거든. "

" 네~ "

" 많아요 "

" 그래! 맞아. 이 세상에 하얀 구슬은 참 많아. "

세 번째 녀석이 말합니다.

" 제가 이 구슬을 버스에서 주웠어요. "

" 버스에서 주웠어? "

" 네 "

" 버스에서 주웠으면 누군가가 잃어버린 구슬이네? "

" 몰라요 "

" 버스에서 주웠으면 네 구슬이 되는거야? "

" 네 "

" 왜? "

" 버린 구슬이잖아요. "

" 아니야! 잃어 버린거야! "

" 잠깐만! 친구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지. 이 친구는 다른 친구가 버린 것으로 알고

주웠기 때문에 자기 구슬이라고 애기하는 거야. 만약에 정말 버린 구슬이라면

이 친구 구슬이 될 수도 있지. "

세 녀석을 바라봅니다.

" 구슬은 하나인데, 자기 구슬이라고 하는 사람은 세 명이네~

그렇다고 구슬에 이름이 써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슬을 사이좋게 세 개로 쪼갤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

" 저는 또 하나 있으니까 친구 주세요. "

한 녀석이 양보를 합니다.

" 그래? "

" 저도 안 할래요. 저도 구슬 많으니까. "

또 한 녀석이 양보를 합니다.

" 그럼, 이 구슬을 이 친구 줘도 된단 말이지? "

" 네" " 네 "

" 그래! 그럼, 이 구슬은 이제부터 이 친구 구슬이야. "

버스에서 주웠다는 녀석이 구슬을 가져갑니다.

구슬에는 분명 이름이 써 있지 않습니다.

어떠한 흔적을 남기기에 너무나도 투명합니다.

단지, 내 손에 있을 때에만 내 구슬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한 투명한 구슬 속에 세 녀석의 얼굴이 비춰집니다.

어쩌면 세 녀석 모두 그 구슬의 주인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그 구슬이 누구의 구슬이었던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구슬을 통해 구슬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배우게 되니까요.

아무리 예쁜 구슬이라도

내 안에 담긴 마음보다 빛을 더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건이 많아지면서 괜한 다툼도 생깁니다.

물건이 없으면 생기지 않을 다툼일 수도 있습니다.

다툼을 피해 길을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가지고 오는 물건인 것처럼

아이들 스스로 다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요령있는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요령있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빠지기 쉬운 다툼을 잘도 피해가는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살아가면서 쉽게 빠지게 되는 다툼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마라톤이 아니기에

누가 먼저 결승점에 도달하는가 보다는

순간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만이

또 다시 오늘이 되는 내일이 행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유리 구슬에 대한 이야기...

구슬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선생님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 일이 생겼는데...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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