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선생님! 목소리가 왜 그래요? "
쇠를 갈아마신 듯한 선생님 쉰 목소리에
아이들이 하나같이 묻습니다.
" 궁금하니? "
" 네, 궁금해요 "
" 말해줄까? "
" 네, 말해줘요 "
" 목이 왜 쉬었냐면... "
" 선생님!!! "
엎드려 있던 한 녀석이 벌떡 일어나며 부릅니다.
" 아이구~ 깜짝이야. "
" 오늘 달봉이 이야기 하는 날이잖아요. 달봉이 이야기는 안 해줘요? "
" 이 얘기가 달봉이 얘기인데? "
" 정말요? 알았어요. 계속 하세요 "
다시금 배를 깔고 엎드리는 녀석.
" 그런데, 그렇게 들을꺼니? "
" 네! "
" 왜? "
" 이렇게 듣는게 더 재미있어요 "
" 그래? 알았어. 그럼, 계속 할께 "
2.
일요일입니다.
일요일에는 선생님이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일요일에는 아이들도 학교에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반찬을 먹는지 밥을 먹을지도 모르게
멍하니 밥을 먹는 선생님 귓 속으로
벼락같은 소리가 들어 옵니다.
" 선생님!!!!!!! "
달봉이의 큰 목소리가
선생님 두 눈을 풍선마냥 부풀립니다.
" 깜짝이야! 이놈아!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
' 아- 선생님. 왜 불러도 대답을 안 하시는거에요! "
" 뭐? 선생님을 불렀니? "
" 그럼요. 몇 번이나 불렀다구요~ "
" 그래? 미안해.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고... "
"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어야지 왜 딴 생각을 하고 그래요. "
" 아~ 미안하다니까... "
"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어야지요. 그래야 마음에 병이 안 생기는거에요 "
" !으~응? "
갑자기 선생님 두 눈이 반짝거립니다.
" 어? 선생님 왜 그래요? "
" 달봉아~ 감동했어. 달봉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줄 알지? "
3.
한 녀석이 묻습니다.
" 선생님! 감동이 뭐에요? "
" 감동? 음... 마음이 따뜻해 지는 걸 느끼는 거야.. 따뜻해지면서 저절로 기뻐지고...
그리고.. 마음에 커다란 하트가 마구 마구 생겨나는 느낌이지... "
" 아~ "
" 계속 얘기할까? "
" 예... 계속 해 줘요. "
4.
슬금슬금 선생님이 달봉이에게 다가갑니다.
" 선생님이 열 번도 넘게 얘기 해 줬잖아요. 선생님이 얘기 해 주...
어~ 어~ 선..선생님.. 왜...왜 그래요? 이상하게? "
" 달봉이 네가 너무 예뻐서 그런다. 그래서 뽀뽀해 주려구... "
" 아..안되요. 오지마요.. 오지마요..."
와락!
달봉이를 껴 안고 뽀뽀를 하는 선생님.
그런데...
느낌이 이상합니다.
달봉이 얼굴이 굉장히 커진 느낌..
눈을 떠 보니
눈 앞에는 달봉이 얼굴이 아닌 달봉이 엉덩이가 있습니다.
그 순간,
" 뽀~ 옹 "
" 아이구....냄새야~ "
" 그러게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
예뻐서 뽀뽀 하는 선생님 얼굴에
아 글쎄~ 엉덩이를 들이대고 방구를 뀌다니...
선생님 마음에 생겨났던 하트가
방구냄새에 바람빠지는 풍선처럼 점점 줄어들더니
폭~ 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 에이~ 괘씸한 녀석~"
" 그러니까 어서 밥 먹으세요.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기! "
" 알았다. 밥 먹을께"
선생님이 젓가락을 듭니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려다 말고
다시금 달봉이를 빤히 쳐다보는 선생님.
" 어? 선생님, 또 왜 그래요? 또 뽀뽀할려구 그래요? "
" 아니~ 그게 아니라.... "
콩나물을 잔뜩 입에 집어 넣은 달봉이가
우걱 우걱 콩나물을 씹으며 쳐다 봅니다.
" 할아버지가 말야... 선생님을... "
" 선생님을 뭘요? "
달봉이가 말할 때마다
입밖으로 콩 나물 머리가 나왔다 들어갔다 합니다.
" 선생님을 사랑하시는 것 같니? "
" ? "
"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할아버지가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
" 아빠는 아들을 다 사랑하는거 아니에요? "
달봉이 입에서 톡- 하고 콩나물이 튀어 나와
상 위에 떨어집니다.
" 할아버지는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 같애. "
"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
상 위에 떨어진 콩나물을 손으로 집어 먹으며 말하는 달봉이입니다.
" 아! 그럼...만득이한테 물어봐요.. "
" 만득이? "
" 내 친구 있잖아요. 마음에 숨어있는 도깨비를 쫓아주는 만득이! "
" 아~ 만득이!! "
5.
" 어! 선생님이 왠일이세요? "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주는 만득이입니다.
" 나도 왔다. 친구! "
" 어! 달봉이도 왔네? "
" 반갑다! 만득아! "
반가운 마음에 선생님은 만득이를 힘껏 껴 안습니다.
" 네... 반가워요. 선생님! "
6.
만득이네 방입니다.
" 할아버지가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구요?
아하~ 그래서 선생님 마음이 그랬구나... "
" 선생님 마음이 어땠는데? "
달봉이가 당나귀처럼 귀를 쫑긋 세우며 묻습니다.
" 선생님이 안아줬을 때 선생님 가슴이 느껴졌는데 가슴이 차가웠거든. "
" 어디- "
선생님 가슴에 달봉이가 손을 얹습니다.
" 안 차가운데? "
" 그건 손으로 느끼는게 아냐. 마음으로 느끼는 거지. "
" 치~ 그런게 어딨어. "
" 선생님! 제가 선생님 눈 속으로 들어 가 봐도 될까요? "
" 뭐~ 눈 속으로 들어간다구? "
달봉이가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말합니다.
" 달봉아! 눈은 마음의 창문이야. 그래서 마음으로 갈려면 눈으로 들어가야 해. "
" 눈으로 어떻게 들어가? 에이~ 거짓말~ "
달봉이가 콧구멍을 씰룩거리며 웃습니다.
" 그래. 만득아! 그렇게 해도 돼. "
선생님이 고개를 끄떡입니다.
" 그럼.. 잠깐만 눈을 크게 뜨고 계세요~ "
눈깜짝할 사이에 만득이 모습이 사라집니다.
7.
선생님 눈 속으로 들어간 만득이는
눈 길을 따라 한참을 걷습니다.
" 어~ 마음이 어디갔지? "
마음이 있어야 되는 자리에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 어? 이건... "
만득이가 내려다 본 곳에는
작은 발자욱이 하나, 둘, 셋...
마음이 걸어간 발자욱입니다.
" 발자욱을 따라가 봐야겠다."
발자욱을 따라갑니다.
한참을 걷습니다.
발자욱을 따라 걷던 만득이가 걸음을 멈춥니다.
더이상 발자욱이 찍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발자욱이 어디갔지? "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처럼
아래, 위로 흔들거리는 커다란 문이 눈 앞에 서 있습니다.
" 아!!! "
8.
" 만득이가 어디로 갔지? "
온 방 안을 돌아다니며 만득이를 찾고 있는 달봉이입니다.
" 어디로 숨었지? "
그 순간!
뾰~ 옹!
마술처럼 눈 앞에 나타나는 만득이.
" 어! 만득아!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타난거야? "
달봉이가 희안하다는 듯이 만득이를 쳐다봅니다.
" 선생님! 큰일났어요! "
" 왜? "
" 선생님 마음이 몸 속에 없어요. "
" 뭐? "
달봉이도 선생님도 깜짝 놀랍니다.
"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간 것 같아요. "
"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내가 불러도 못 들으신다 했지~ "
" 마음이 어디로 갔는지 만득이 너는 아니? "
" 네... 발자욱이 끝나는 곳에 시간의 문이 있었어요.
그 시간의 문은 과거로 돌아가는 문이거든요. "
" 과거... "
" 선생님...저랑 같이 가요. 마음을 찾으러... "
" 어떻게? "
" 저랑 같이 선생님 눈 속으로 들어가면 되요... "
달봉이 얼굴이 갑자기 씰룩샐룩 하더니,
" 우헤헤헤헤... 정말 웃긴다. 자기가 자기 눈 속으로 어떻게 들어가냐? "
" 아니야. 갈 수 있어. 이 알약만 먹으면. "
만득이가 호주머니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보여줍니다.
하얗고 조그마한 알약 하나.
" 에이~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정말 말도 안돼. "
달봉이가 말하는 사이
선생님이 알약을 꿀꺽 삼킵니다.
9.
" 여기가 시간의 문이에요! "
놀랍게도 선생님과 만득이는
시간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 어떻게 해야 하니? "
" 저랑 같이 이 문으로 들어가면 되요. 그럼 마음이 간 곳으로 갈 수 있어요. "
" 그래. 가 보자. 내 마음을 찾으러... "
만득이의 손을 꼬옥 잡는 선생님.
물결처럼 출렁이는 문 속으로
물결처럼 흔들리며 사라지는 만득이와 선생님입니다.
10.
" 아! 여기는... 내가 일곱 살 때 살던 집이야! "
만득이와 선생님이 서 있는 곳은
선생님이 일곱 살 때 살았던 부산에 있는
작은 수퍼마켙 앞입니다.
11.
" 선생님! 정말 부산에서 살았어요? "
" 그럼~ 정말이고 말고..."
" 야! 말하지마! 그럼, 얘기를 못 듣잖아~ "
" 알았어. 계속할께. 친구한테 화 내지마~ "
12.
수퍼마켙은 온갖가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물건들 가운데,
둥그런 기둥 위로 나무 막대기가 잔뜩 꽂혀있는 커다란 그릇이 하나 있습니다.
13.
" 그게 뭐에요? 선생님? "
" 야! 말하지 말라니까! "
"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야지. 친구한테 화내지마~ "
14.
둥그런 기둥은 연탄불로 활활 타오르는 화로였고
나무 막대기가 잔뜩 꽂혀있는 그릇은,
어묵이 잔뜩 꽂혀있는 커다란 어묵 그릇이었습니다.
어묵도 손님들에게 파는 물건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꼬마 녀석 하나가 커다란 어묵 그릇 밑에 앉아 있습니다.
반짝반짝하는 작은 구슬들을 손에 들고서.
" 아! 안돼. 하지마! 하지마! "
선생님이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 선생님! 왜 그러세요? "
" 만득아! 저 꼬마...저기서 놀지 못하게 해야 해. 어서! "
" 왜요? "
어쩔줄 몰라하는 선생님이 만득이 손을 잡고 말합니다.
" 저 꼬마가.. . 선생님이란 말야! "
" 예? "
꼬마가 구슬 하나를 떨어뜨립니다.
바닥에 떨어진 구슬은 톡- 톡- 두 번을 튀어 오르더니,
떼구르~ 굴러 화로 밑으로 쏘옥 들어갑니다.
" 아~! 안돼!!!!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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