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그리고 여름휴가
휴가 첫째날..
아버지 사시는 집으로 갑니다.
버스로 5분.. 가까워서 자주 못 가는 집
아버지 사시는 집
어머니 목숨값 500만원과
이름만 번듯한 장남의 앞날 예견비 500만원으로 마련한 집
세가족.. 아버지, 세째 여동생, 네째 막내가 울타리를 만든 집
어머니 여의신 텅빈 마음에 어머니 흔적을 더듬는 아버지
꼼꼼한 가계부..아버지 등쌀에 덜렁 둘로 나뉘는 집
세째 여동생 독립기녕일..
말이 좋아 경각심.. 아버지 통장 빌리던 네째 막내
아버지 말씀 서러워 덜렁 셋으로 나뉘는 집
네째 막내 독립기념일..
네 가족이 네 집에서 네개의 텔레비젼 속에 무심할 수 있을까..
세째 여동생 독립하는 날에
눈물 밥 드시던 아버지, 슬픔 주 드시던 아버지
네째 막내 독립하는 날이 코앞인데
아버지 서러운 모습 담기싫어 안절부절 동동 뛰는 허울좋은 장남
어찌 말해야 하나.. 어찌 고해야 하나... 어찌 울어야 하나..
철없는 자식들.. 버릇없는 자식들..
동생들 나무라는 큰 놈의 눈에는
불효라는 큰 죄가 사무치듯 맺힙니다.
동생들 나무라지 말아라..
아버지 원망하지 말아라..
마음 속 어머니 토닥이는 손길에
눈물보 터뜨려 웃음보 만들어
아버지 홀로 계시는 집, 텅빈 집에 휴가 첫째날!
가루모래 가득한 이부자리
깔때기 그득한 재떨이
쓸고 쓸고 또 쓸어도
하늘에서 내리는지 땅에서 쏫는지
떨어지고 쏫아나는 모래알을 세고 또 셉니다.
텅 빈 밥통
엎어지고 쏟아지고 잡다한 양념통
때먼지 죄먼지 불효먼지 가득한 가스렌지
닦고 닦고 또 닦아 불효자가 효자되라고
무릎굻고 조아리고 허리숙여 걸레질
하루종일 쓸고 닦아도 지워지는 않는 불효..
어찌 말하나.. 어찌 말하나..
철업는 막내 동생 독립선언 어찌 말하나..
쓰레기 걷어내며 젖은 손을 훔치는데
사과비닐 손에 들고 아버지가 오십니다.
"아버지. .오셨어요? 먼지가 많아서 하루종일 청소했어요"
안방에 슬그머니 앉으십니다.
"아버지.. 깨끗하죠?"
"사과 좀 깎아라.."
"잠깐만요.. 접시 가져 올께요.."
아들녀석 사과깎는 칼질에 피식 웃는 아버지..
"아버지.. 드세요.."
"요놈.. 요렇게 길게 짤라라... 오늘 이빨을 새로해서..."
아래 위 하늘땅 별땅 아버지 받히던 요상한 틀니가 나옵니다.
"이빨.. 새로 하셨어요?"
"그래.. 그런데 적응이 안되서 입이 좀 아프다.. 그래서 연습할려고
사과 좀 사왔다.."
"연습이요? 히히.. 연습이라..."
"그래.. 그런데.. 8월 1일.. 가긴 가는거냐?"
하늘같은 아버지 하늘나는 비행기 하늘한번 구경시켜드리고자
자식녀석 세놈이 옹기종기 마련한 제주도 가족여행..
"8월 1,2,3일이랬지? 확실히 가는거지? 세째에게 물어봐라.."
"예약했어요.. 돈도 다 냈어요.. 확실히 가요.."
"그래? 내 그래서 소장한테 한 소리했다.. 8월 1,2,3일은 우리 가족여행 가는 날이니 휴가비 내노라고.. "
"아버지.. 직장에서 휴가비도 줘요?"
"네놈 직장은 휴가비도 없냐?"
"휴가가는 사람이 휴가비 내야지.. 직장이 왜 주나요?"
"에이구.. 저런 놈이 장남이라구.. "
"근데 소장이 휴가비 준데요?"
"주긴 개뿔이 줘? 그냥 해 본 소리지.. 가족여행 간다고 자랑할라구.."
뒤적 뒤적 핸드폰 모래 가득 핸드폰
돗보기 안경너머 작은 수첩 뒤적이시며
허겁지겁 전화를 거시는데..
"어... 막내냐? 나.. 오빠다.. 다른게 아니라.. 거참.. 이놈들이.. 아버지 비행기 좀 태워주겠다고해서 8월 1,2,3일 제주도 가족여행 가기로 했거든? 너도 시간되면 같이가자.. 어떠냐? 바쁘냐? 시간되면 같이가자.. 그래.. 그래.. 누구? 창욱이? 잠깐 기다려라.."
"고모세요?"
"그래.. 아버지.. 아이처럼 좋아하시는구나.. 참 잘했다.. 그래.. 너희들은 잘 지내지?"
"예..걱정마세요.. 잘 하긴요.. 죄송해요.. 고모.. 제가 아직 철이 없어서.."
아버지.. 전화를 끊자마자 마산고모, 부산고모.. 아는 사람..모르는 사람.. 수첩에 적힌 사람들 죄다 전화기에 담으십니다.
"아버지.. 누구랑 함께 가고 싶으세요?"
"함께가긴.. 바쁜데 함께 가겠냐? 그냥 자랑할려고 그러지.. 에헴.."
아버지 기분좋은 말씀에 빙그레 웃음이 열리지만
가슴은 왜 이리 찢어지게 쓰린가요?
마음은 왜 이리 송두리채 아픈가요?
동생들 나무라지 말아라..
아버지 원망하지 말아라..
시집, 장가 안 간 녀석들..
제 피붙이 생겨도 부모 귀한 줄 모르는 녀석들도 있는데
그래도 네 동생들은 노력은 하잖니? 착하잖니? 열심히 살잖니?
가슴 속 어머니.. 멍울진 말씀에
사각 사각 사과만 깎습니다.
"근데.. 넌 이시간까지 뭐하냐? 그 흔한 여자친구도 없냐?"
"여자친구요? 남사스럽게 나이가 몇인데 여자친구에요?"
"너도 나이 먹은건 아냐? 에구 저런게 장남이라구.."
돌아눕는 아버지 등짝에 따뜻한 웃음이 베어나옵니다.
아버지..주무십니다.
살그머니 일어나 가방을 멥니다.
공부하다 잠들면, 텔레비젼 보다 잠들면
텔레비젼 끄고 불 꺼 주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눈 부신 불을 제가 꺼드릴께요..
오늘 못한 청소 내일 하면 되지만
오늘 못한 빨래 내일 다시 하면 되지만
오늘 못한 효도는 내일되면 할 수 있을까..
오늘 지은 불효 내일되면 효가 될까..
아버지 편안 밤에 슬그머니 가방메고
옥길동 검은 언덕 오르는 큰 아들은
하루걸어 두 집 살림 손마디가 부르터도 좋으니
아버지 하얀 웃음 두 집만큼 더해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