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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삶과 죽음


새벽 3시

병원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어깨에 묻은 빗물을 털며 자리에 앉습니다.

사촌녀석이 천안에 있는 병원에 있습니다.

중환자실...

제초제를 마셨습니다. 자살하려고.

올해 나이 서른.

배부른 아내와 아들이 있는 녀석

무엇이 젊은 나이에 생명을 포기하게 했을까...

위생 가운을 입고 면회를 합니다.

약물에 고무튜브에 의지한 사람들이

힘없이 누워있습니다.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연신 무엇인가를 뱉어내는 녀석..

"나 기억하니?"

"네"

"........"

"......"

입술이 하얗게 뒤집어 지고

거뮈틱틱한 수염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살아야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지..."

"........."

"용기를 내라.. 넌 죽기에 너무 젊다"

"........"

그 녀석의 형과 마주 앉았습니다.

"왜 그랬데냐?"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그런 것 같아요."

"자기 성질?"

"예..좀 별나잖아요.. 저 놈.. 게다가 돈 문제도 여자 문제도 있고.."

"........"

"오늘, 내일이 고비래요.."

"고비라면..."

"의사는 가망이 없데요.."

"고비라는 말은..."

"죽는다는 말이죠..."

"아......."

".............."

침묵이 흐릅니다.

"넌.. 어찌사냐?"

"그냥 그냥 살아요.. 저도 좋지 못해요.. 부부사이가.. 이혼할지도..."

"이혼? 왜?"

"제가 맞춰줄 수가 없어요.. 지금도.. 여기에도 안 왔잖아요... "

"어머니.. 잘 모셔라.. 살아계신 부모님 가슴에 생 못 박지말고.."

"....네...."

금방 죽으려고 마신 약이 며칠을 끈질기게 살게 하는구나...

삶에 대한 애착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치떨게 만들려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젊음...

죽음은 선택이 아닐찐데..

죽음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것인데

왜 기다릴 줄 모르고..

삶에 대한 끊없는 욕심이

삶에 대한 애착마져 빼앗아 가 버리고..

욕심을 버리는 것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

결국엔 기다리게 되는 것을

결국엔 어찌못해 두려움에 무서움에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을..

" 큰 고모.. 힘 내세요."

"그래.. 웃으며 부산 내려 갔으면 좋겠다"

부산 사시는 큰 고모

오래전에 암으로 고모부를 여의시고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세월

건장한 사내도 하기힘든 중노동도 마다않고

지금은 공사판에서 못 빼는 일을 하시는 고모..

큰 아들, 둘째 아들 장가 보내시고

연신 행복해 하시던 고모..

보호자 대기실에 웅크리고 잠드신 고모의 모습을 보며

삶의 무게를 느낍니다.

"좋은 일로 만나야 할텐데.. "

"그러게요.."

"넌.. 어찌사냐? 행복하냐?"

"예... 행복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막내고모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결혼해야지?"

"예..해야지요.."

"결혼할 사람은 있니?"

"아니요.. 아직..."

"네가 결혼해야 네 아버지도 편히 지내실텐데.."

"................"

"봉급은 많이 올랐니?"

"예.. 살만큼.."

"혼자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결혼하면 또 그게 아니다.."

"그런가요?"

젊은 생명의 가까운 죽음앞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죽음 앞에 침묵하듯

우리의 처절한 삶 앞에서도 침묵이 필요하지 않을까...

삶은 연습이 아닐찐데...

죽음 또한 연습이 아닐찐데...

살아있는 매 순간 생생하게 느껴야 할 것인데..

우리의 삶에 포함된 죽음까지도..

삶과 죽음은 결코 둘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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