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중에 전화가 왔습니다.
왠만한 전화같으면 힐끔 무시해 버리는데..
아버지입니다.
"예.. 아버지"
"집에 좀 와라"
"지금 회의 중인데요"
"집에 좀 와라"
"오늘 못 가는데요?"
"집에 좀 와라"
"10시 넘어서야 갈 수 있어요"
"어서 와라"
"알았어요. 늦게라도 갈께요"
막무가내 아버지.
회의가 끝나자 마자 캠프 준비를 하는 선생님들께
미안한 마음 한켠 접어주고 나섭니다.
"저 왔어요. 아버지"
"택배 왔는데.. 좀 봐라"
"고모가 보내셨네요"
김치, 면도기, 면도날, 양말, 건강보조식품, 칫솔, 김치..
전쟁용 구호물자도 아닌데 생활용품이 잔뜩
"추석이라 보내셨나 봐요"
"거..금액이 얼만가 봐라"
"금액은 봐서 뭐해요?"
"얼만가 봐라.."
"4만 8천 7백 50원 이네요"
"택배비도 안 나오겠네.."
"에이.. 택배비가 더 싸죠"
좋으시면서도 좋으신 척 안하시는 아버지.
"면도기.. 너 써라. 나는 뽑을 털도 없다"
"아버지 쓰세요. 아버지는 맨날 일회용 쓰시면서.."
"그럼. .칫솔 너 써라.. 난 이빨이 없으니 필요없다"
"두 개만 가져갈께요"
"다 가져가라.. 난 이빨이 없다니까.."
틀니를 닦으시는 아버지
돋보기 안경너머 할아버지 되셨습니다.
"국수 먹고 가라"
"금방 가야하는데요"
"먹기만 하면 된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국수.
하얀 국수위로 듬성듬성 오뎅이 실리고
육수에 아버지 늙으신 오랜 사랑이 모락 모락
우악스럽게 김을 부수시는데
"김을 왜 그렇게 많이넣어요?"
"이렇게 넣어야 맛있다. 먹다보면 없다"
"이그.. 맛있는 간장이 다 엎어졌네.. 좀 닦아라"
국수 두 그릇을 앞에두고 국수를 위해 어지럽혀진 흔적들을 봅니다.
치우면서 먹고 닦으면서 먹고 김치를 썰면서 먹고
아버지도 분주하고 덩달아 분주합니다.
"다 먹었으면 가라"
"설겆이는 하고 갈께요"
"그냥 가라"
"걸겆이는 할 시간 있어요"
"그냥 가래두"
"설겆이는 한데두요"
아버지랑 싫지 않은 실랑이
아들과의 실랑이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네 엄마한테는 언제 간다고?"
"이번 주 일요일이에요"
"나는 못간다.. 새로 간 일터라 못 빠져나온다"
"저희끼리 갈께요."
"할머니한테는..."
"추석 전날 제가 갔다 올께요. 걱정 마세요"
"추석 전날이면 나도 갈 수 있다"
"그럼.. 저랑 같이 가요.. 잊어 먹지 마세요"
달그락 달그락 그릇 닿는 소리에
아버지 달력 세는 소리 묻힙니다.
" 저 갈께요. 아버지. .일요일 어머니께 다녀와서 들를께요"
"그래..가라"
서두르는 발걸음에
뱃 속에서 부르튼 국수가 기지개를 켭니다.
'아.. 배부르다'
아버지 서툰 음식에 눈물이 묻히고
아버지 진한 사랑에 배가 부르고
아버지 작은 웃음에 가슴이 터지도록 배가 부릅니다.
발길에 묻어나는 담배연기처럼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피어 오릅니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시는 아버지
어머니 몫까지 함께 늙어 가시는 아버지
온 세상 자식들의 불효모아 한 몸에 걸친 마음처럼
천근 만근 아버지의 사랑에 할 말을 잃습니다.
아버지
오래 오래 사세요
못난 자식 효도할 때까지
오래 오래 지켜보시며
오래 오래 서운하시더라도
오래 오래 기다리시더라도
이 못난 자식 비로서 떳떳해질 때까지
오래 오래 사세요.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누가 뭐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