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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를 넘어

선물

1. 잔디 같은 녀석들.

 

1학년 녀석들과 함께 키우는 잔디머리 인형!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 위

컴퓨터 위 바로 위 작은 접시 위에 살포시 앉아 있습니다.

선물주기 좋아하는 선생님이

무엇을 줄까 1시간이나 고민하다 산 선물입니다.

꼬맹이들 선생님일 때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선물 주는 것이

다른 반과 비교되는 등등의 이유로

다른 선생님들 눈치 코치 많이도 받았었는데

그래서인지 잠시 주춤거리며

살까 말까 고민도 하였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또다시 저질러 버렸습니다.

뭐~ 또 뭐라고 하면 ‘ 잘못했습니다~’ 하지 뭐 하면서.

 

3일 째 되는 날!

드디어 잔디가 하나 둘 자라기 시작합니다.

작은 녀석들이 비집고 나오는 모양이 참 귀엽기도 합니다.

1학년 녀석들처럼

생긴 것도 가지각색이고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하나 하나 잘 자라도록 똑같이 물을 줍니다.

둘이 셋이 뒤엉키는 녀석들은

고리를 풀듯 살짝 풀어주며

제 모양 그대로 잘 자라도록

물과 사랑을 골고루 줍니다.

선생 마음이 이 같아야 된다 되새기면서.

 

2. 보물찾기

 

서둘러 달려온 곳은

오늘 2학년 아이들과 보물찾기를 할 장소입니다.

천천히 주차를 하는데

어디서 왔는지 몇몇 아이들이 자동차를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자동차 여기저기 붙은 그림들을 보는 모양입니다.

서너 명 쯤 되나 싶었는데

우루루 차에서 내리는 것이 열 명도 넘어 보입니다.

게 중에는 아는 녀석들도 몇 보입니다.

근처 구름 산 대안 학교에서 나들이를 온 모양입니다.

병아리마냥 이리 저리 몰려 뛰어 다니는 녀석들 뒤로

졸래졸래 따라가 봅니다.

볏을 세운 닭처럼

병아리를 몰고 가는 선생님들을 보며

한 시간 뒤 면 이 길 위에 똑같이 걸어갈

내 모습과 아이들을 그려봅니다.

 

가는 듯 하면 서고

서는 듯 하면 가는 녀석들 곁을

살그머니 지나치는데

대뜸 얼굴을 훔쳐보는 한 녀석이 있습니다.

 

“ 달봉이다! 얘들아~ 달봉이야~ ”

 

갑자기 얼굴이 붉어집니다.

알아보는 녀석들보다

누군가? 훔쳐보는 녀석들 때문에.

걸음을 재촉합니다.

선생님들 곁을 지나는데

한 녀석이 인솔 선생님에게 던지는 말이 들려옵니다.

 

“ 선생님! 달봉이에요! ”

 

“ 달봉이가 누군데? ”

 

녀석이 대답하는 소리를 듣지 않을 양으로

걸음을 더욱 재촉합니다.

 

“ 김창욱 선생님! ”

 

또박또박 말하는 이름이 뒤통수를 때립니다.

행여나 인솔하시는 선생님들에게 방해나 될까봐

엉덩이 깨로 잡은 손만 한 번 휘~ 흔들어줍니다.

 

아이들보다 먼저 도착한 곳에는

보기에도 몇 아름은 되 보이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무려 400살이나 된 느티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주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돌며

보물 숨길 장소를 훓어봅니다.

 

‘ 대충 저 정도면 되겠다. ’

 

느티나무로부터 한 발 두 발 걸음을 걷습니다.

서른 걸음 즈음

죽은 고양이 시체를 발견합니다.

등 꼴이 오싹하는 것도 잠시

서른 둘, 서른 셋 걸음을 걷습니다.

오십!

발밑에 가위표를 그리고

근처 부러진 가지를 주워 땅을 팝니다.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얕게 판 다음

준비해 온 보물을 내려놓습니다.

누런 봉투 겉을 하얀 비닐로 싼 세 개의 보물.

이것이 오늘의 보물입니다.

안에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적혀있는

보물이 들어있습니다.

그 위로 살포시 흙을 덮는데

느티나무에 도착한 먼저 그 아이들이

내 쪽을 보며 손을 흔듭니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지 고개 짓을 하기도 합니다.

 

“ 선생님! 뭐 했어요? ”

 

한 녀석이 묻습니다.

 

“ 으~응! 이따가 아이들하고 와서 보물찾기 할 꺼 거든. 그래서 보물 숨겼다. ”

 

“ 보물? ”

 

“ 나중에 또 만나자! ”

 

“ 안녕히 가세요! ”

 

“ 그래~ ”

 

한 시간 후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 전 장소에 다시 도착합니다.

아까 녀석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놀다 간 모양입니다.

 

“ 이제 보물 찾으면 되요? ”

 

“ 아니? 먼저 세 모둠으로 나눠야 돼! ”

 

“ 왜요? ”

 

“ 오늘 보물찾기는 모둠별 보물찾기거든~ ”

 

“ 에이~ 그냥 하지~ ”

 

“ 그리고 모둠별로 먼저 과제를 풀어야 돼. 그래야만 보물이 있는 곳의 힌트를 준다. ”

 

“ 과제가 뭐에요? ”

 

“ 보물을 찾기 전 해결해야 될 재미있는 문제! 다섯 가지! ”

 

“ 다섯 가지요? 어서 주세요! ”

 

“ 자~ 모둠 별로 첫 번째 과제 받으러 오세요~ ”

 

첫 번째 과제는 모둠 친구들 이름을 각자 외워 각자 와서 말하기!

 

과제를 받자마자 아이들이 득달같이 달려옵니다.

 

“ 저요! 저요! 저부터 할게요! ”

 

“ 모둠끼리 같이 와라. 그래야 할 수 있다. ”

 

네 명이 한 모둠이 된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한 명씩 이름을 말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간단히들 통과합니다.

 

“ 자~ 첫 번째 과제를 푼 모둠은 두 번째 과제를 받으시오~ ”

 

두 번째 과제는 친구들 나이를 모두 합한 숫자 말하기!

역시 쉬운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합창하듯 달려와 말합니다.

 

세 번째 과제는 모둠별로 노래를 선정해서 선생님 앞에서 노래 부르기!

단 끝까지 못 부르면 다른 노래로 다시 준비하기!

 

이번에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모둠 별로 쑥떡쑥떡 키득거리더니

첫 번째 모둠이 달려옵니다.

 

“ 노래 할게요. ”

 

“ 그래? 시~ 작! ”

 

“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

 

“ 땡! 다시, 다른 노래로 준비해 와! 끝까지 잘 불러야지~ ”

 

“ 야! 너 왜 노래 안 부르냐! ”

 

“ 노래를 모르는데 어떻게 부르냐! ”

 

“ 근데 왜 부르자고 했어! 알지도 못하면서! ”

 

“ 니가 하자고 했지 내가 하자고 했냐! ”

 

자기네들끼리 티격태격합니다.

 

“ 싸우다가는 다른 모둠보다 늦을텐데? ”

 

선생님 말에 아이들이 우루루 한 쪽으로 몰려갑니다.

 

다른 모둠이 옵니다.

 

“ 선생님! 할게요 ”

 

“ 그래! 시~ 작! ”

 

“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 으쓱 으쓱 잘한다! ”

 

“ 딩동댕! ”

“ 자! 이제 네 번째 문제! ”

 

네 번째 문제는 다섯 가지 퀴즈 풀이입니다.

문제를 듣고 답을 하는데 모둠에서 누구든지 답을 해도 됩니다.

그런데 꼭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방방 뜁니다.

다른 모둠이 하는 것을 보고 답을 알려준 녀석이

자기 모둠 친구들로부터 싫은 말을 듣습니다.

 

“ 내가 뭐 알고 그랬냐! 저절로 나오는 걸 어떻게 해! ”

 

누가 알려줬든 서로 서로 알려준 녀석들이

다섯 번째 문제에 접어듭니다.

다섯 번째 문제는 목표 정하기!

 

“ 무슨 목표요? ”

 

“ 1년 동안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내가 지킬 목표! ”

 

“ 뭐하지? ”

 

일곱 살 녀석들이라면

한참을 설명했을지도 모를 말인데

2학년 녀석들이라 금방 알아듣습니다.

그래도 꽤 어려운 문제일 것이라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아이들은 쉽게 정해서 달려옵니다.

 

“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

 

“ 친구 많이 사귀기! ”

 

“ 욕하지 않기! ”

 

이해는 일곱 살보다 빠른데

대답은 일곱 살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 좋다! 그럼~ 보물이 적혀있는 곳 힌트가 적힌 마지막 종이를 주겠다! ”

 

“ 전에는 보물지도를 준다고 했잖아요! ”

 

“ 비가 올 것 같아서 그림 대신 글로 준비했다. ”

 

종이를 받은 아이들이 머리를 모아 글을 읽더니

이내 느티나무 주위를 서성입니다.

 

“ 옆으로 오십 걸음이에요? 앞으로 오십 걸음이에요? ”

 

“ 힌트는 종이에서 찾아라! 선생님은 안 가르쳐준다. ”

 

“ 치! 치사해! ”

 

아이들이 숲 속을 헤맵니다.

나무를 뒤지기도 하고

발로 땅을 헤집기도 합니다.

잠시 후,

 

“ 으아~~~~~~~아! ”

 

수아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겅충 걸음으로 뛰어 다니는 재현이도 보입니다.

지호가 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들고 옵니다.

거뭇한 것이 가까이 올수록 선명해지는데

자세히 보니 개구리입니다.

 

“ 선생님! 개구리에요! ”

 

“ 개구리가 보물 아닌데? ”

 

“ 알아요! 그냥 보여줄려고 가져왔어요. ”

 

“ 놔 줘라! 개구리도 놀랐겠다. ”

 

보물을 찾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재현이가 뛰어와 말합니다.

 

“ 선생님! 간식 먹어도 되요? ”

 

“ 그래! 간식 먹자. 얘들아~ 간식 먹으면서 찾자~ ”

 

“ 싫어요! 찾고 먹을래요! ”

 

“ 선생님! 보물이 뭐에요? ”

 

“ 비밀이다! ”

 

“ 보물이 몇 개 에요? ”

 

“ 한 명에 하나 씩 다 있는데 한꺼번에 있다. ”

 

간식을 먹는 녀석들은 간식을 먹고

보물을 찾는 녀석들은 보물을 찾습니다.

간식을 찾던 녀석들이 다시 보물을 찾고

보물을 찾던 녀석들이 간식을 먹으러 옵니다.

선생님 보기에 보물 숨겨진 주위를 계속 찾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잘 찾지 못합니다.

발만 한 번 더 쓱~ 문지르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두 시간 째 지나자

선생님이 모른 척 보물 숨겨진 장소로 가 봅니다.

아이들 발자국이 수북이 찍힌 위로 발을 쓱 문질러봅니다.

 

‘ 분명~ 이곳인데? ’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 이상하다? ’

 

보물이 없습니다.

분명히 이 곳이었는데!

순간, 아까 보물 숨기러 왔을 때

쳐다보던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 그 녀석들이 가져갔나? ’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설령 그렇다 쳐도

가져가 봤다 녀석들에게는 별 쓸모도 없는

종이 뭉치일 뿐인데...

 

두 시간 이상 보물을 찾고 있는 녀석들에게

무엇이라 말을 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대로 말합니다.

보물 숨길 때 본 아이들이 있었는데

혹시 그 녀석들이 가져갔을 수도 있다고.

한 번 그 아이들에게 확인해 봐야겠다고.

아이들이 당장 전화해 보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전화할 수 있어도

그 아이들은 전화 받을 수 없다 말합니다.

아이들이 다시 왜냐고 묻습니다.

 

“ 그 아이들은 핸드폰이 없잖아! ”

 

“ 그렇구나! ”

 

비가 조금씩 내리기 사작합니다.

 

“ 선생님! 재미있는 얘기 해 줘요! ”

 

비가 오면 항상 이어하는

재미있으면서 약간은 무서운 귀신 이야기.

선생님이 붕어빵마냥 그 자리에서 구워 만드는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두 무릎과 두 귀를 쫑긋 세워 이야기를 잘도 듣습니다.

아이들과 돌아오는 길에서

일곱 살 아이들과 꾸었던 꿈을

2학년 녀석들과 다시 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보물 숨길 때 보았던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가져 간 적 없다 합니다.

녀석들이 거짓말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거참~ 신기한 노릇입니다.

 

보물이 정말 어디로 갔을까요?

 

골몰히 생각하다

말도 안 되는 생각에 피식 웃어봅니다.

 

‘ 어쩌면 보물은 아이들 손을 거치지 않고

아이들 마음속으로 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

 

녀석들과 함께 한 하루를 돌이켜 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말이 되는 하루 같으니까요.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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