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상담을 마치고
쉼 없이 몰아 쉰 하루를 내려놓고 잠시 쉬는 시간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일곱 살 때 똥 친구 중 하나로 불리던 녀석
이제는 열한 살 초등 4학년이 된 녀석의 엄마에게서 온 문자.
녀석이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시계를 보니 저녁 9시가 다 되어간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아침에 가방을 메고 집을 나가면
해가 지고 한참이나 지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온다는 녀석.
한참이나 되었단다. 이런지.
엄마가 붙들어 앉혀놓고 얘기를 해도 그 때 뿐.
학교 갔다 오면 줄줄이 있는 학원 모조리 빼 먹고
친구랑 놀다가 피씨 방에 갔다 어물쩡 어물쩡 거리다가
늦은 밤이 되면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도 모르게 돌아다니다가
걱정되어 나가보면 어스럼 복도에 혼자 서 있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되고 있기도 하단다.
엄마, 아빠는 일 하느라 바빠 아이는 학원에 학원 뺑뺑이 돌기를 몇 년,
녀석도 요령이 붙었는지 학원가다 빼 먹고 빼 먹은 김에 또 빼 먹고.
나중에는 아빠가 직접 데려다 주고 데려오기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데려오고 데려주기를 하기도 했다는데
그것도 그 때뿐,
하루라도 빼 먹으면 학원을 빼 먹고 이리저리 사라진단다.
아빠는 바쁘다는 핑계로 사흘이 멀다 하고 집에 잘 들어오지 않고
엄마도 바빠 낮에는 아이들 챙길 여유가 없다보니
녀석은 엄마, 아빠가 있어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동생 저금통을 털어 피씨 방에 가기도 하고
돈 없는 날에는 우두커니 서서 구경만 하고 온다 하는데
눈물 반 설움 반 엄마 속도 시커멓고
늦은 밤 만난 녀석 그렇게 건강하던 녀석이
삐쩍 마른 것이 보기에도 안쓰럽고 힘들다.
늦은 시간까지 밥도 먹지 않고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행여나 나쁜 형들 만나지는 않을지 엄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녀석은 학원 좀 그만 가고 친구들하고 마음껏 놀고 싶단다.
학원가도 아빠가 데려다 주고 데리러 왔으면 좋겠고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회사 다니고 쉬는 날에는 자기랑 놀아줬으면 좋겠다 한다.
녀석을 차에 태워 늦은 밤 옥길동에 가니
일곱 살 적 그 때가 행복하고 좋았다 하고
자기는 게임해도 행복한 줄 모르겠다 한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 하니 스노우 보드 선수나 프로게임머가 되고 싶단다.
프로게임머는 하루종일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절로 되냐 하니
그건 또 아니란다.
녀석 얼굴은 일곱 살 적 그 얼굴 그대로인데
그 눈빛 그대로인데
녀석이 움질일 때마다 거친 숨결이 얼핏얼핏 나타나는 것이
선생님 마음도 참 아프기만 하다.
일요일 날 뭐하니
아무것도 안 해요.
그럼 선생님이랑 놀러가자.
둘이서요?
아니? 너랑 한 명 더 있잖아. 똥 친구!
어디 갈 건데요?
네가 가고 싶은 곳.
정말요?
대신, 내일부터 토요일까지 해지면 집에 들어가라. 약속 지켜야 간다.
알았어요. 약속할께요.
집에 가자, 시간이 많이 늦었다.
10시 반에 자야 되는데 선생님 때문에 12시에 자게 됐잖아요. 키도 못 크게.
선생님이 키워줄게. 오늘 못 잔 만큼.
녀석을 아파트에 내려주는데
늦은 시간에는 엘리베이트가 무서워 못 타겠다 한다.
무서움도 많은 녀석이 늦은 시간까지 뭐하고 돌아다녔을까?
약속 꼭 지켜라. 알았지?
네~
돌아서 뛰어가는 녀석 뒷모습을 보며
녀석에게 장난삼아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난 네 녀석이 어른 되서 뭐가 되나 계속 볼 꺼다.
선생님, 그때까지 살 수 있어요?
그 정도는 끄떡없다.
녀석이 뭐가 되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옆에서 계속 지켜볼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