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풀씨를 넘어

봄 볕 아래


한 주일이 후딱

또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습니다.

아이들 선생님을 하다보면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안 좋은 게 있습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기다리는 선생님 마음이 재촉해서 그런지

달봉이 타령하는 아이들 입담에 쫓겨 그러는지

시간은 제트기를 타고 달려갑니다.

스물여덟까지는 참 더디 갔었는데

서른여덟까지는 하룻밤의 꿈만 같습니다.

그렇게 달려온 시간이 책장 가득 일기로 묶여 있습니다.

 

오늘은 1학년 녀석들을 만나는 날

5분 일찍 나선 길에

5분 일찍 봄볕을 만납니다.

핸드폰이 울립니다.

대훈이가 친구들과 놀이에 풍덩~

계속 놀고 싶어 오늘은 안 온다 합니다.

지훈이도 대훈이랑 놀이에 풍덩~

대훈이 따라 오늘은 안 온다 합니다.

정연이는 뭘 잘못했는지

엄마한테 혼나느라고

오늘은 못 온다 합니다.

여덟 명 밖에 안 되는 1학년 녀석들인데

여덟 중에 셋이 빠진다고 합니다.

사랑니를 뽑고 하루 동안 앓고 난 아침

허전한 마음에 입맛을 다시던 그런 기분입니다.

 

“ 얘들아! 오늘 우리 놀러갈까? ”

 

봄볕이 가슴에 들어 바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 네! 좋아요. 풀씨학교 가요~ ”

 

일곱 살 적 놀이 끈을 아직도 질끈 잡고 있는 녀석들.

꼬맹이 적 학교가 가고 싶은 모양입니다.

 

“ 난 풀씨학교 가기 싫어요~ ”

 

풀씨 학교를 다니지 않은 정우가 통~ 튑니다.

 

“ 풀씨 학교가면 재미있는 거 많아! ”

 

친구들이 정우에게 바람을 잡습니다.

정우 눈빛이 순간 반짝합니다.

 

“ 그래? 그럼 가자~ 풀씨학교! ”

 

차에서 내리자마자 선생님 자동차로 옮겨 탑니다.

 

‘ 이래도 되나? ’

 

볕 좋은 날

아이들을 교실에 묶어 두는 것만큼

나쁜 수업은 없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 이래야 되지~ ’

 

라는 마음으로 바뀝니다.

 

“ 박제훈 선생님 차는 재미없어~ ”

 

똑 소리장이 애림이가 차 평을 합니다.

 

“ 선생님 차는? ”

 

“ 재밌어요! ”

 

재미없다고 했으면

차를 통째로 뒤집어서

장난감 물통에 풍덩 빠뜨렸을 지도 모릅니다.

 

환한 대낮인데도

차 안 천장에는 형광 별들이 수두룩하고

손잡이란 손잡이에는

누르면 소리 나는 삑삑이 인형들이 달려있고

천장 한 가운데에는 아이들 방 천장에나 걸려 있을 법한

멜로디 모빌 인형이 대롱 달려 있습니다.

그 뿐인가

운전대 앞에는 시끄러운 수다쟁이 레비게이션이 달려있고

태양열로 춤을 추는 대머리 인형도 있고

운전대 오른 편 창 앞에는

일곱 마리의 눈 큰 흔들이 인형과

밤이면 삐리리~ 불빛을 발하는

마술램프도 달려 있습니다.

빈 공간만 있으면 만화를 그려 대서

자동차 안팎으로 달봉이 그림 천지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다 라기 보다는 정신이 없습니다.

사실 정신없는 것은

운전하는 선생님도 아이들도 아닙니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몇 몇 어른들 얘기입니다.

 

“ 우와~ 바람 너무 시원하다! ”

 

아이들이 신바람이 났습니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봄바람처럼.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합니다.

오늘 안 온 녀석들 생각에.

 

‘ 녀석들도 함께 가면 좋을텐데... ’

 

생각이 꼬리를 무니

갑자기 어쩌다 교실 수업만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풀씨학교에 있을 때도

허구헌날 해바라기만 하던 선생님이었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지난 1년 동안

어른들하고 모임만 너무 많이 한 탓인 것 같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머무니

더더욱 이 볕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 이야호~ 태풍이다! 태풍에 팬티까지 홀라당~ ”

 

“ 우헤헤헤헤~ ”

 

달봉이 목소리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터져납니다.

 

오늘 하루 신나게 놀았습니다.

모래가 뿌려진 새로 만든 운동장도 가보고

형아들이 호그와트라고 부르는 그물 놀이터에서도 놀고

선생님 차 안에서 몰래 꺼낸 장난감으로 흙 놀이도 하고

야구 방망이와 테니스 공으로 던져, 쳐 야구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습니다.

 

“ 선생님, 배고파요~ 먹을 거 없어요? ”

 

정우가 혀를 길게 내밀고

간식타령을 합니다.

 

“ 선생님도 배고프다. 우리 다음에 올 때는 꼭 간식 가지고 오자~ ”

 

봄볕에 이끌려 달려간 하루!

이렇듯 긴 하루들이 모이고 모여

제트기를 탄 시간들이 된

서른여덟 늙은 청춘입니다.

 

'풀씨를 넘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만의 명상법  (0) 2010.05.05
곰순이  (0) 2010.05.05
한바탕 싸우기  (0) 2010.05.05
스승과 제자  (0) 2010.05.05
선물  (0) 2010.05.05
몸을 누이다.  (0) 2010.05.05
나 좀 봐 주세요.  (0) 2010.05.05
기쁨 그리고 슬픔  (0) 2010.05.05
그림이 있는 풍경  (0) 2010.05.05
크리스마스 선물  (0) 201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