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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를 넘어

크리스마스 선물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

오늘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길을 걷다 문득

홀로 외로이 서 있는 산타클로스를 만납니다.

 

“ 이거 얼마죠? ”

 

“ 7,000원입니다. ”

 

스위치를 켜니 케롤이 울려 퍼집니다.

 

“ 하나 주세요 ”

 

자동차에 시동을 겁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마술 콘서트를 보러 가기로 한 날입니다.

2학년 한범이, 소연이

4학년 재엽이

6학년 준엽이

네 명의 아이들과 연세대학교로 향합니다.

네 명 모두 일곱 살 때 질경이 반이었던 녀석들입니다.

질경이 반 선생님이었던 선생님이

질경이 반이었던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대강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손에 손을 꼭 잡은 연인들이 많습니다.

맞잡은 손을 통해 서로의 사랑이 넘쳐납니다.

허전한 손을 아이들 어깨에 올리며 살포시 웃어봅니다.

아이들 웃음 속에 행복한 선생님의 얼굴이 그려집니다.

 

마술 콘서트는 화려한 조명과 눈부신 불꽃으로 시작됩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꿈같은 마술이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앞에 살아있는 꿈이 되어 펼쳐집니다.

아이들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모르고

반짝이는 두 눈은 살아있는 꿈을 쫓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 마음도 참 좋습니다.

 

크리스마스에 결혼하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한 여자를 위해 하늘의 해가 되고 구름이 되고

별이 되고 바다가 되어

그 녀 앞에 마술처럼 나타났습니다.

그 녀의 눈에서는 사랑의 눈물이 흐르고

그 남자는 그 눈물을 가슴으로 받아줍니다.

관객들은 감동의 박수를 보내고

아이들은 아름다운 사랑에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습니다.

연인들은 맞잡은 두 손을 꼭 쥐고

아이들과 함께 온 부부는

오래된 기억의 흔적을 뒤적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왜 이리 낯익은 것일까요?

마치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무심코 꺼내 펼쳐든 책이

오래 전 읽었던 책인 것처럼.

 

콘서트 장 앞에서

젋은 마술사 한 사람이 마술도구를 팔고 있습니다.

혓바닥처럼 축 늘어진 희고 긴 밧줄 하나를 들고서

차가워진 두 손을 달구듯 비벼주면

한겨울 고드름처럼 허공에 곧추 섭니다.

손가락을 튕겨 ‘딱’ 하고 신호를 보내니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다시금 축 늘어지는 밧줄.

 

“ 얼마에요? ”

 

“ 만 원입니다. ”

 

“ 사 줄까? ”

 

“ 너무 비싸잖아요~ ”

 

하면서도 아이들 걸음은 뒷걸음입니다.

 

“ 다섯 개 주세요 ”

 

아이들 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선생님이 사 주는 것도 신기한데

다섯 개나 사는 것이 더욱 신기한 가 봅니다.

 

“ 히히~ 재밌다. 선생님은 왜 안 하세요? ”

 

“ 나중에~ ”

 

“ 유치원 아이들한테 보여 줄 꺼죠? ”

 

“ 그래~ ”

 

지금은 유치원 선생님이 아니지만

선생님 곁에는 늘 어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압니다.

 

“ 우리 뭐 먹으러 갈까? ”

 

“ 라면이요~ ”

 

“ 난 짬뽕~ ”“ 난 피자~ ”

 

“ 난 아무거나~ ”

 

선생님이 생각하는 근사한 식사는

아이들 입을 통해 친숙한 식사로 둔갑합니다.

 

신촌에서 유명하다는 라면집을 찾습니다.

라면으로 특허까지 냈다는 집입니다.

집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라면도

수십 가지 재료에다 수십 가지 이름을 입히니

훌륭한 메뉴가 됩니다.

배불리 라면을 먹은 선생님과 어린 제자들은

발 디딜 틈도 없는 신촌거리를 벗어나

광명으로 향합니다.

마지막 여정을 위해.

 

보드게임을 하기 위해 보드게임장을 찾습니다.

그런데 눈 씻고 찾아봐도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예전에 졸업생들과 함께 갔던 곳은

오래전 문을 닫았는지 흉물스런 간판만 덩그러니 걸려있습니다.

결국 걸음에 지친 우리들은

한 겨울 시원한 요구르트 빙수를 먹었습니다.

한 겨울에 빙수라니...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과의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늘 모자라고 아쉽습니다.

아이들을 하나 둘 씩 집 앞에 내려주며

우리들 마음에 또 하나의 기억을 남깁니다.

 

홀로 남은 선생님

차 안을 물들이는 은은한 케롤에 살포시 젖는데

핸드폰이 진동합니다.

어제 저녁 생협 어머님들께 보낸 크리스마스 예약 문자에 대한 답문이

마술 콘서트 장을 나서는 아이들 입방아마냥 쏟아집니다.

 

옥길동으로 향합니다.

집으로 들어서기 전 늘 들리는 곳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곳

마음이 늘 머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소리 없이 머리 위로 스미는 하얀 눈처럼

행복한 문자들이 가슴 속으로 스밉니다.

크게 쉼 호흡하고 라이트를 다시 켜는 순간

뒤편 볍씨 학교 창으로 불빛이 새어나옵니다.

 

“ 이 시간에 누가 학교에? ”

 

슬그머니 다가가 콘테이너 속을 들여다봅니다.

놀랍게도 볍씨 큰 아이들이 담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 어? 김창욱 선생님이다~ ”

 

아이들이 선생님을 발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 놀랐잖아요~ 그런데, 여긴 왠일이세요? ”

 

“ 그러는 너희들은 왠일이냐? ”

 

“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내려구요~ 아참, 선생님~ 비디오 좀 고쳐주세요. ”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섭니다.

콘테이너를 개조해 교실로 만든 학교,

바닥은 전기 판넬을 깔아 따뜻한데

발바닥을 제외하곤 한겨울입니다.

 

“ 안 춥냐? ”

 

“ 괜찮아요. 이불 덮고 있으면... ”

 

비디오 플레이어가 두 대나 있지만

제대로 되는 것은 한 대도 없습니다.

 

“ 이거 안 되겠는데? ”

 

“ 우리 그냥 보지 말자. ”

 

“ 안돼~ 내가 빌렸단 말야. 돈 아깝게. 빌린 건 봐야지~ ”

 

아이들을 둘러봅니다.

10년 전 스물일곱 나이에 처음 만난 일곱 살 꼬마였던

다희가 보입니다.

이제는 어엿한 청소년이 된 다희,

어린 적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녀석들.

선생님보다 키가 큰 녀석이 더 많습니다.

 

“ 너희들~ 배는 고프지 않니? ”

 

“ 컵라면이요~ 컵라면이 먹고 싶어요~ ”

 

“ 선생님 따라 두 명만 가자. ”

 

“ 어디가게요? ”

 

“ 통닭 사 줄게~ ”

 

“ 정말요~ 이야~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

 

아이들 환호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집니다.

녀석들 일곱 살 적에도 들은 적 있는 목소리들...

 

“ 저도 갈께요~ ”

 

세 녀석을 태우고 사무실로 향합니다.

사무실에 들러 비디오 플레이어를 챙깁니다.

숨이 가빠집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

6층까지 한 걸음으로 오르내렸더니...

 

‘ 녀석들이 큰 만큼 선생님은 그만큼 늙은 거니까... ’

 

마음 한 켠이 울렁입니다.

나이는 10년 세월을 더 먹었어도

마음이 마음을 낳아 마음은 더욱 넓어진 듯 합니다.

 

“ 통닭 여섯 마리만 주세요 ”

 

“ 헉~ 우리 선생님 갑부네~ ”

 

한 순간에 십 만원이 나가며 지갑이 헐거워집니다.

 

‘ 괜찮아~ 이녀석들아~ ’

 

자식 생각하는 부모 마음이

제자 생각하는 선생 마음과 같지 않을까?후후~

 

비디오를 설치해 주고

따끈따끈한 닭다리 하나를 손에 들고 학교를 나섭니다.

 

“ 잠깐만 선생님 좀 따라 올래? ”

 

한 녀석을 데리고 차로 향합니다.

트렁크에 넣어두었던 산타 할아버지를 꺼냅니다.

 

“ 너희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 메리 크리스마스~ ”

 

“ 선생님~ 고맙습니다. ”

 

“ 그래~ 그럼 문단속 잘 하고... ”

 

“ 네~ 안녕히 가세요. ”

 

선생님 마음이 참으로 따뜻해집니다.

어릴 적에는 눈에 보이는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지만

이렇듯 어른이 되고 나서는 내 마음에 산타 할아버지를 품고 삽니다.

 

선생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내일을 향해 자라는 바로 이 아이들입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자정을 알리는 라디오 소리를 듣습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은 선생님 마음이 참 좋습니다.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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