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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를 넘어

나 좀 봐 주세요.

벚꽃이 흐무러지게 피었습니다.

송이송이 꽃송이들이 푸진 것이

봄을 느끼기에 넉넉할 지경입니다.

 

한 편으로는 걱정입니다.

이 좋은 날에

아이들을 붙들어 둘 것이.

성질 좋은 녀석들도

거스러질 것이 뻔합니다.

그렇다고 허구헌날 나들이만 다닐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역시나 아이들은 정직하였습니다.

교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여기저기 헤뜨러지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녀석들이 만지는 것 족족

너즈러집니다.

모자를 잃어버린 매직펜들이

고드러지는 모양을 봅니다.

 

선생님 마음에서

두둑두둑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볕 좋은 날에

단단히 볕을 막아 선 교실에서

옹기종기 녀석들을 앉혀놓고

엄마 같은 잔소리를 합니다.

 

함께 쓰는 물건을 함부로 해서 되겠냐

말하는 만큼 다른 사람 말도 들어야 하지 않겠냐

 

말하는 사람도 재미없는 잔소리들을

쏟아놓고 나니

한 녀석이 대뜸 일어나 말합니다.

 

“ 선생님! 창문 좀 열어요! ”

 

창문 밖에서 우두커니 서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 봄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휭~ 스쳐갑니다.

 

“ 수요일에는 약속 꼭 지킬꺼지? ”

 

“ 네! ”

 

입으로는 아이들에게 말하면서

돌아선 마음으로는 선생이라는 내게 말합니다.

 

‘ 으이그~ 선생이라는 녀석이 아이들보다 못해서야~ “

 

병아리마냥 뒤뚱 걷는

앙증맞은 엉덩이들을 쳐다보며

수요일에는 꼭

흐드러진 봄을 만나러가자

마음 다짐을 해 봅니다.

 

※ 국어사전을 뒤적이다 늘어지는 말들이 좋아 적어보았습니다.

 

거스러지다: 성질이 온순하지 못하고 거칠어지다.

흐드러지다: 매우 흐뭇하거나 푸지다.

헤뜨러지다: 쌓이거나 모인 물건이 흩어지다.

깨뜨러지다: 깨지다.

자지러지다: 아주 몹시 놀라 몸이 주춤하면서 움츠려들다

흐무러지다: 잘 익어서 무르녹다

너즈러지다: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흩어지다.

고드러지다: 마르거나 굳어서 빳빳하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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