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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선생님 화 났다!


샤워기에 눈꼽을 보냅니다.

밤새 열심히 자란 수염을 싹둑

엉엉 울며 흘러갑니다.

어푸..어푸 세수를 하며

머리 속에 큰 걸레를 그립니다.

걸레를 타고 한바퀴, 두바퀴..

몸 터도 타고 복도도 타고 사무실도 타고나면

하루 저녁 아이들이 찍어 놓고 간 발자욱들을

툭 툭 털어 냅니다.

"선생님 물 없어요"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물 타령하는 녀석들 생각하며

물통에 배부르게 물을 담습니다.

컵도 정성스레 닦아보고

흙 묻은 손 흐르는 물에 대충 씻고

쓰윽 문지르는 수건도 새 것으로 갈아 놓습니다.

밥통 다섯개를 꺼냅니다.

꽃다지반은 세그릇 반, 별꽃반, 나리꽃반은 네그릇 반,

질경이반, 민들레반은 다섯그릇 반.. 쌀을 담습니다.

북 북 문질러가며 쌀을 씻으면

냠 냠 아이들의 밥 먹는 소리가 들립니다.

푸욱 들어가 버린 쌀통을 보면

불룩 튀어 나온 아이들의 올챙이 배가 보입니다.

다섯 통의 밥통에 코드를 꼽고 나면

치이.... 밥이 된 것처럼 배 부릅니다.

고무호스를 뽑아들고 화장실 청소를 합니다.

여지없이 막혀있는 어른 변기통 !

누구 솜씨인데 둥 둥 떠 다니는 것이

아침인사를 얄궂게 합니다.

거나하게 한 판 씨름을 하고나면

시원스레 흐르는 물이 이마의 땀을 씻어 줍니다.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장대 비를 들고 나섭니다.

하루 중 가장 기분 좋은 시간입니다.

쓱 쓱 비 질하는 소리에 짹 짹 아침 새소리 흥겹습니다.

도장 찍어 놓은 듯 아이들 놀이 흔적이 군데 군데 재미있습니다.

열심히 쓸다보면 간 밤 누런 잠 때가 훌쩍 쓸려 갑니다.

장대비를 놓고 현관 계단에 앉습니다.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회관 앞 장승이 됩니다.

피식 피식 연신 웃는 망부석이 됩니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버스가 옵니다.

버스마져 재잘거립니다.

마술의 문이 열리면

이 세상에서 가장 조그마한 하늘들이 내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마음들이 내립니다.

엉덩이를 털며 일어서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옥길동 언덕에 올라서는 아침해가 환하게 걸립니다.

옥길동 언덕의 아침이 시작됩니다.

"안녕하세요"

전봇대 마냥 삐죽허니 서서 인사하면

아이들의 검은 머리만 보입니다.

쪼그려 앉습니다.

다리에 쥐가 나면 콧잔등에 침 두 방울 바릅니다.

"헤헤.. 아저찌"

"아저찌? 아저찌 아닌데? "

말 한 번 받아주면 연이어 메아리가 돕니다.

"아저찌래 아저찌.. 헤헤.. 아저찌..."

영문도 모르는 녀석

계단에서 철퍼덕 넘어지면서도 입에 다는 메아리..

아저찌..

"이놈들.. 아저찌 아니래두.. "

옥길동 언덕에 삐죽 빼죽 자란 들풀들 처럼

큰 녀석, 작은 녀석, 둥근 녀석, 가는 녀석

신발장에 아기 자기 신발 가지런히 모입니다.

" 선생님 오신다!! "

몸 터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둥그렇게 앉아 있습니다.

무릎과 무릎을 맞대고 하나의 마음을 만듭니다.

웃고 인사하고 장난하고 바라보고

제각기 다른 얼굴처럼 제각기 다른 모습입니다.

"자.. 느낌 나누기 시간!!"

노란 빛 명상 종을 들고 복도로 나섭니다.

가지런한 별꽃반, 둥그런 민들레반,

옹기종기 꽃다지반, 문을 꼬옥 닫은 나리꽃반

때에에에에엥....

때에에에에엥...

종 소리에 귀가 솔깃 두 손이 모아 집니다.

살글 살금 아이들 곁으로 앉습니다.

회관에 울려 퍼지는 마음의 소리..

마음을 타고 흘러 내리는 아이들의 숨 소리..

두 손을 배에다 얹고 볼록배, 오목배

천천히 천천히 볼록배, 오목배

작은 몸에 더 작은 숨

커다란 마음에 더 커다란 미소

...........

"선생님.. 누구세요?"

새로운 변화!!

오늘은 수원 ymca 선생님들이 견학을 오셨습니다.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작은 변화가 고른 숨을 방해합니다..

짐짓 어색해지는 표정입니다..

'이상하다....'

조금씩... 이상하게 조금씩..

좋지 못한 느낌입니다.

아이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산만해 보입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오늘따라 산만한 탓입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오늘따라 어색한 탓입니다.

선생님의 알록 달록 표정에

아이들의 눈동자 또르르 구릅니다.

선생님의 알쏭 달쏭 표정이

눈동자에 비칩니다.

...................

몸 놀이를 합니다.

...................

자연에는 답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에는 답이 없습니다.

답이 있다면 자연 그대로가 답입니다.

답이 있다면 아이들 그대로가 답입니다.

....................

잘못하였습니다.

잘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에 알쏭달쏭 표정에

의미없는 정답들이 생겨납니다.

마음이 이리 저리 부딪힙니다.

"얘들아, 선생님.. 화 났다!!"

"조용히 해! 선생님 화 났어.."

선생님의 얼굴에서

책을 읽듯 아이들이 말합니다.

아이들이 벌을 받습니다.

선생님이 벌을 줍니다.

아이들은 괜히 벌을 받고

선생님은 괜히 벌을 줍니다.

아이들은 머리에 손을 얹고

선생님은 머리에 돌을 얹고

아이들은 두 눈을 살며시 얹고

선생님은 마음에 큼지막한 돌을 얹고...

곰곰히 곰곰히 떠 다니는 마음을 바라봅니다.

선생님이 되려면 아직도 아직도 멀었습니다.

선생님이 되려면 아직도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잘못하였습니다.

잘못하였습니다.

오늘은 정말 잘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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