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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한결같이, 몸 놀이 선생님 이야기

아빠와 함께 하는 몸 놀이 3

내 아이가 충분히 재미있게 놀고 있나요?

먼저 '논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본다. '논다'라는 말은 놀이를 하거나 하여 즐겁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논다'라는 말에는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다, 게으름을 피우다'라는 뜻도 있다. 이 말은 노는 것이 일이 아닌 어른이 일은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만 있을 경우에 자주 쓰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경우에는 노는 것이 바로 일이다. 아니 일일 뿐만 아니라 성장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생활의 필수 과정이다. 어른에게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으로 보이는 '논다'라는 것이 왜 아이들에게는 이처럼 중요한 것일까? 지금부터 그 이유를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자.

아이들에게 있어 성장의 과정이란 배움의 과정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배움은 다양한 경험들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몸의 움직임을 통한 체험으로 채워 나간다. 뛰고 넘어지고 구르고 기어오르고 치솟고 기고 매달리고 때리고 던지고 부수고 만들고 뛰어넘고 뛰어 내릴 수 있는 몸의 여러 가지 움직임들이 묶여 경험이 되고 배움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몸의 움직임들은 노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 노는 과정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즐거움과 편안함 그리고 자발성이다.

잠깐 이 대목에서 놀이에 대해서도 한 번 짚어보자. 놀이는 즐겁게 놀기 위해 자발적으로 행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그러므로 잘 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노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노는 과정에는 놀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이들과 놀이의 관계의 중요성을 주장한 어떤 학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가운데 놀이가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준다하였으며 놀이에서는 움직임 자체가 바로 목표라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놀이에 대한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는데 이때 보여주는 집중력과 인내는 이후 학습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도 하였다. 이와 같이 어린 시절 충분히 노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과정이며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 놀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나 교사의 보호를 받는다. 이러한 보호는 스스로 가치관을 정립 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보호를 말한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어떠한가? 아이들은 노는 일에 있어서도 어른의 보호를 받는다. '놀기'는 문법상의 의미로 동사이며, 스스로 하는 자동사이기에 스스로 하지 못하는 놀이는 놀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스스로 하는 놀이에 대한 보호는 보호가 아닌 간섭이지 않을까?

이러한 간섭은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롭게 놀도록 절대 내버려두지 않는다. 다른 부모들이 안 그렇고 그 부모의 아이들이 안 그렇기에 나도 내 아이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 왠지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마음대로 놀도록 내버려만 두면 큰일 날 것만 같고 그래서 뭐라도 가르치고 시키고 통제하려 한다. 세 살, 네 살 심지어는 간난 아이 때부터 시간표를 만들어주고 엄마의 시간표에 따라 척척 움직인다.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시간에 부모 마음에 들게 놀아야 한다. 더욱이 핵가족화로 형제, 자매도 없는 아이들이 많아 이러한 통제는 더욱 집중되기 일쑤다. 그 뿐인가 맞벌이하는 부부의 자녀들은 온종일 시간표에 갇혀 살아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이들은 자연스레 통제에 익숙해지고 만들어진 놀이, 정형화된 놀잇감으로 혼자서 또는 시간표 속에서 놀게 되어 스스로 노는 법을 서서히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에 노는 것에 꼭 필요한 자발성과 재미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마치 어린이 나라에 어린이가 사라진 것처럼.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는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고,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 아이는 충분히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적당한 때가 있기 나름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지금은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재미있게 놀아야 할 때이다.

 

아이의 놀다와 아빠의 놀아주다는 하늘과 땅 차이

앞에서 놀다라는 말에는 스스로 하는 자발성과 즐거움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놀아주다라는 말에는 어떤가? 나 자신 스스로에 의한 자발성이라기보다는 아이들에 의한 자발성이고 나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므로 노는 것과 다르게 놀아주는 것에는 명백한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나 스스로 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노는 것은 하루 종일 놀 수 있어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한 두 시간만 놀아도 기진맥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들이 아이들과 놀기 위해서는 놀아주는 것이 아닌 아이들과 스스로 노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온전히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의 온전한 놀이를 통해 아빠들도 충분한 쉼을 얻을 수도 있다.

여기서 아빠들 중에는 ' 말도 안돼! '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아빠인 내게 쉼이 된단 말인가 하고. 하지만 분명 아빠들에게도 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쉼이 되어야만도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과의 놀이가 계속 지속될 수 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