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우리엄마)
아홉 번째 손님 들어 오세요
아홉 번째 손님은 얼굴이 하얀 삼십대 후반의 아줌마입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
괜찮아요. 말씀 해 보세요.
아이를 낳았어요. 남자아이를.. 낳은지 오늘로 98일 되었어요.
이번이 열 번째에요. 아이를 낳은 것이..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 낳는대로 100일이 되기전에 아기가 죽어요. 아홉 번째 아이까지.. 이제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어서.. 이 아이마져 죽게 할 수 없어서.. 제발 이 아이는 살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서.... 왔어요.
제가 어린 아이라 말씀 하시기 어려우시죠?
아니..그런 것 보다는...
아줌마 얼굴에 다 써 있는데 거짓말 하지 마세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오셨죠? 그래서 헛소문일지언정 속는셈 치고 오셨죠?
....
말 안 하셔도 되요. 다 알고 있으니까요.. 제 눈을 보세요. 저는 눈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본답니다. 직접 제가 들어 가기도 하죠. 제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될꺼에요.. 하지만 무서워하지는 마세요. 무섭다기 보다는 따뜻한 느낌일테니까요.
알았어요.
자..저를 보세요.
만득이는 아줌마의 눈을 통해 아줌마의 마음 길에 섰습니다.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나, 둘, 셋... 모두 아홉명.. 혹시 아줌마가 말하던 그 죽었다던 아이들이 아닐까?
너희들.. 여기서 뭐하니?
형을 기다리고 있어요.
형? 어떤 형?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형이요. 우리랑 놀아주러 올꺼에요.. 금방..
그래?
만득이는 길섶에 숨습니다. 알지 못하고 덤비면 당하기만 할 터.
형이다. 형!
아이들이 다가서는 큰 사람에게 안깁니다. 얼핏 봐도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
아이들과 함께 사라져 갑니다.
만득이는 다시금 아줌마의 눈 앞에 앉았습니다.
아줌마.. 내일 다시 오시겠어요?
네? 왜 내일...
아줌마의 마음속에 아홉명의 아이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이 아줌마가 말했던 죽었다던 아이들 같기도 해요. 하지만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하루라는 시간이 필요해요. 내일 오시겠어요? 단 안고 계신 아이도 꼭 함께 오셔야 합니다.
아..네..
손님을 맞으면 으레 하루를 건너가는 만득이. 밤 새 무엇인가 골몰하는 모습이.. 과연 그 아이들은 누구일까.. 그 커다란 형이라는 사람의 정체는...
다음날 아침.. 아줌마가 여전히 하얀 얼굴로 만득이 앞에 앉았습니다.
제 눈을 똑바로 보세요. 그리고 제 물음에 답하세요.
아줌마가 잃은 아이들이 모두 몇이라 하셨죠?
아홉명이요.
다시 물을께요. 아줌마가 잃은 아이들이 모두 몇이라 하셨죠?
.... 아홉명이요..
다시 물을께요. 마지막으로 묻는거에요. 아줌마가 잃은 아이들이 모두 몇이라 하셨죠?
............
열명이죠?
네...
첫 번째 아이는 언제 잃으셨어요?
........
대답하지 않으시면 제가 도와 드릴것이 없어요.
결혼하기 전에.... 스무살 때....
계속 해 보세요...
........
아직도 제가 어린 아이로 보이세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아시나요?.. 그래도 제가 아직 어린 아이로 보이세요?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만나는 것을 반대하셨죠. 하지만 반대하면 할수록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아이를 갖게 되셨군요. 그래서요?
그런데.. 부모님이 아시게 되었어요. 길이길이 날뛰셨죠. 당장 아이를 지우라 하셨죠. 제 몸 속에 살아있는 생명을 말이죠. 부모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갔어요. 울어도 소용없고.. 그냥 체념할 뿐이었어요.
그래서요?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어요. 수술을 하려고 누웠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해 할 수 없다고.. 수술할 것이 없다고.. 분명 있었는데.. 분명... 뱃 속에 살아있던 아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에요.. 아무런 까닭도 없이..
과연 까닭이 없었을까요? 과연 이유가 없었을까요? 부모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까닭이었죠. .가장 큰 이유였겠죠..
그..그게 무슨 말이죠? 그럼. .그 아이가 스스로 사라졌단 말인가요?
사라진 것이 아니죠. 자리를 옮겼을 뿐이죠. .수술할 수 없는 곳으로..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곳으로..
아니.. 그럼... 어디로...
바로 아줌마 마음속이죠.. 그 속에서 그 아이는 살아 있었던 것이죠. 벌써 어른이 다 되었거든요.
아.... 그.. 그 말은...
믿으실 수 없으시겠죠.. 그래서 보여 드리죠.. 제가 모르는 한가지를 위해서도 그 아이를 커내 와야 합니다.
아줌마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습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당신의 아이일 뿐이에요.
만득이는 아줌마와 함께 옆방으로 갑니다. 굉장히 넓은 방.. 어림잡아도 50평은 훨씬 넘어 보이는..
자.. 저기 가운데 방석에 앉으세요.
아줌마가 방석에 앉는 것을 보고 만득이는 미리 준비한 밧줄을 꺼냅니다. 아줌마의 주변으로 밧줄을 둘러 칩니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이 사방 팔방으로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거미줄을 만듭니다. 그리고선 호주머니에서 조그만 플라스틱 병 하나를 꺼냅니다. 밧줄 한 족에 한 방울을 떨어 뜨리자 사방 팔방으로 쳐진 밧줄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듯 울부짖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뱀을 보듯이.
자 되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아이가 찾아올 것이에요.. 스무살이 훨씬 넘은 당신의 아이가..
오늘로서 열 번째 아이를 낳은지 99일.. 이번에는 절대로 아이를 빼앗기지 않겠다 품에 꼬옥 껴 안는 아줌마의 팔은 무서움에 심하게 떨리고 있습니다.
밧줄이 흔들립니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듯이.. 거무틱틱한 형체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검은 얼굴의 한 사내가 나타납니다.
아이를 주세요!
안돼.. 이 아이만큼은 줄 수 없어.
엄마.. 아이를 어서 주세요.
엄마? 엄마라니?
저를 모르시겠죠.. 저는 그때 엄마가 죽이려고 했던 바로 그 아이.. 엄마가 아이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제가 데려갈꺼에요.
아니야.. 아니야.. 나는 아이를 절대 죽이지 않아..
거짓말하지 마세요.. 엄마는 분명 아이를 죽일꺼에요.. 주세요. .어서.. 아이를...
아니야.. 아니야.. 절대.. 아이는.. 절대.. 줄 수 없어...
제발 아이를 주세요.. 제발..
사내는 점 점 가까이 다가갑니다. 사내가 다가갈수록 밧줄은 더욱 팽팽히 조여집니다. 밧줄이 사내의 온 몸을 죄여도 사내는 물러설 줄 모릅니다.
어서.. 어서.. 아이를 주세요.. 어서...
커다란 아이는 결국 쓰러지고 맙니다. 쓰러져서도 손을 내밀며 아이를 애타게 부릅니다.
아줌마는 품에 안은 아이를 내려놓고 커다란 아이에게 달려갑니다. 온 몸을 휘감고 있는 밧줄을 풀고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해..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나는 너를.. 절대로..
아줌마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커다란 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릅니다..
엄마.. 우리 엄마가 나를 안아 주셨군요.. 제가.. 제가..엄마품을 얼마나 그리워 했는지 아세요?
미안해... 미안해...
아줌마의 흐느끼는 어깨 사이로 희미해져 가는 커다란 아이의 모습.. 아줌마의 품에는 결국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됐어요. 이제...
이제.. 다시는 아이가 죽지 않을꺼에요.. 아줌마의 첫 번째 아이는 이제 아줌마의 가슴 속에서 떠났습니다. 아줌마의 아홉명의 아이들을 데리고서...
아줌마는 고개 숙여 울기만 합니다.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어떠한 생명이든지.. 이 세상 어느누구라도 세상을 함부로 할 자격은 없습니다. 잊지마세요.. 그리고.. 그 아이.. 소중하게 키우세요...
만득이 아홉 번째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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