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머리가 너무 아픈 날이다.
뒷 목이 뻣뻣해지고 열도 올라 수업 끝나자 마자 병원에 들러 주사 맞고 약 먹고 조퇴해서 집에 왔다. 이른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오늘을 정리하고자 몇 자 적어 본다.
오후에 일곱 살 아이들 몸 놀이가 있었다. 몸 놀이실에 들어서는 녀석들을 보니 오늘 녀석들이 좀 심상치 않다. 주말을 지내고 온 월요일은 늘 아이들 기운이 밖으로 뻗치고 융화가 잘 안되지만 오늘은 평상시보다 더 치닫는 것이 아이들과의 기운 충돌이 예상되기까지 한다.
아이들과 기운이 융화되지 못하고 충돌하면 대체적으로 교사는 몇 배의 기운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이들 기운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늘 월요일에는 이러한 기운 배급을 위한 조절을 해 두는데 오늘은 그 기운이 벌써 바닥을 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기운이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는데도 기운이 누그러들기는 커녕 계속 치솟기만 한다.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을 딱 두 명, 나머지 아이들은 선생님이 바라보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지어 선생님에게 심한 장난까지 걸어 온다. 선생님 마음 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어느덧 30분이 지났다. 무엇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한 녀석씩 가만히 불러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교실로 올라가라고 말해 준다. 처음에는 자기만 올라가라고 하는 줄 알고
" 싫어 " 소리를 연발한다. 하지만 자기만이 아니라 한 녀석씩 계속 불러 올라가라고 하니 그제야 아이들도 다른 기운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열매 반을 올려 보내고 나무 반도 올려 보낸다. 몸 놀이를 안 하고 올라 가라고 하니 아이들이 오히려 뿔이 나고 성을 낸다. 가면서 이내 성난 소리도 내뱉고 간다.
" 달봉이 미워! "
" 달봉샘 바보 멍충이! "
그런 데 딱 두 녀석이 안 가고 계속 앉아 있다. 계속 선생님만 바라보고 있던 녀석들이다.
" 나는 몸 놀이할 준비 했는데 왜 올라가야 돼! "
울 먹인다. 녀석을 가만히 앉아 준다.
" 선생님도 알아. 그래서 너한테 고마워. 지금까지 잘 기다려 줘서. 친구들도 그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교실에 가서 그 이야기를 꼭 나눠 봐. "
모든 아이들이 올라간 텅 빈 몸 놀이실에 한 5분 정도 앉아 있었을까? 아이들이 갑자기 우르르 다시 들어 온다. 그리고는 " 선생님, 죄송합니다! " 하더니 이내 길게 둘러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담임 선생님과 살짝 이야기가 있었나 보다. 그러다니 다시 몸 놀이실 매트 위에 가지런히 앉는다. 마치 전혀 다른 아이들이 된 것처럼. 작은 의자를 가운데에 놓고 앉아 아이들을 바라 본다.
이제는 모든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오늘은 패트병 놀이를 하려고 했어. 뗏목을 만들기 전에 저 많은 패트병으로 너희들과 같이 놀고 싶어서. 다섯 살 동생들하고도 놀았고 여섯 살 동생들하고도 놀았어. 오늘은 너희들과 같이 놀려고 기다렸는데 그래서 더 많은 놀이도 가지고 왔는데 너희들이 기다려 주지 않았어. 너희들을 기다리는데 삼십 분이 지났고 이제는 몸 놀이 끝날 시간이 10분 밖에 남지 않았어. 그래서 오늘 몸 놀이는 기다리는 시간으로 지나가는구나. 하지만 몸 놀이는 못했지만 달봉샘한테 바보, 멍청이라고 한 친구도 있었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배운 것은 있는 것 같애. 그것이 무엇일까? 배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 그것을 말 해 볼 친구 있니? "
아이들이 저마다 손을 든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해 일곱 살 다운 말을 한다.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 오늘은 달봉샘과 안아주기를 하지 않고 두 친구와 안아 주기를 할 거야. 너희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앉아 주기를 달봉샘과 함께 계속 기다려 주던 친구들이야."
몸 놀이 시간이 다 지나서 체조 하나 못하고 아이들이 다시 교실로 올라 간다. 마지막으로 두 친구와 가슴과 가슴으로 안으면서 귀에 살짜기 말을 건넨다.
" 고마워. 친구들이 준비될 때까지 화내지 않고 기다려 줘서. "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아이들과 이런 기운 충돌이 생긴다.
선생님도 사람인 이상 이러한 충돌을 늘 슬기롭게 넘기지는 못한다. 특히 기운이 오늘처럼 바닥이 난 상태에서는 어떻게든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려고만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얼굴에는 잔뜩 화를 머금고 입으로는 통제를 하는 말들을 쏟아 낸다. 사실 이러한 방법은 아이들과의 기운 융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기운을 꺾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때에 따라 선생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말이다. 여덟 살도 안 된 아이들이 이해하면 얼마나 이해를 하겠는가. 그냥 무섭게 하니까 주눅 들어 말을 듣는 것이지. 나는 선생님이기 이전에 어른이기에 아이들보다 힘이 세고 목소리도 큰 강자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것을 무기로 삼고 싶지는 않다. 사실 이보다 더 간편하고 수월한 방법은 없지만 이것에 길들여지면 더 이상 다른 방법은 고민하지 않게 된다.
오늘 원장님이 장난스런 말로 " 드디어 달봉샘이 화내는 것을 봤어! " 하며 즐거워(?) 하셨다. 과연 아이들은 내가 화를 낸 것으로 생각할까? 나는 아이들이 절대 내가 화를 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때에 따라서는 화를 낼 수도 있지만, 소리를 지른 것도 큰 소리를 낸 것도 얼음짱 같은 얼굴을 한 것도 아니고 다른게 있었다면 평상시보다는 말이 없고 힘이 없었다는 것 정도? 하지만 내가 그렇게 믿는데는 한 녀석의 다음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 달봉샘 왜 그래? 아파? "
" 달봉샘~ 나는 달봉샘이 너무 좋아. 아프지 마~ "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 중에 인라인 스케이트 이야기도 있는데, 이것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몸이 좀 좋아진 이후에 다시 옮겨 보기로 한다.
글을 쓰고 나니 좀 정리가 되고 머리도 조금 편안해 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잠을 좀 자야겠다.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번쩍 들어 올려 내 품에 꽉 껴안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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