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달봉샘의 성장통

편지 홍수


"자.. 질경이반... 내일부터 편지쓰기를 할꺼에요..

글씨를 잘 모르면 그림으로 그려와도 좋고

그래도 글씨를 쓰고 싶다면 엄마에게 도와 달라고 그러세요..

중요한 것은 선생님하고 얘기를 한다는 거에요..

편지를 써 올때마다 선생님이 답장을 써 줄텐데

무지 무지 예쁜 엽서에 예쁜 글씨로 써 줄꺼구..

그리구.. 선생님이 엽서위에다 번호를 써 줄꺼에요..

번호는 우리 친구들이 편지를 몇통이나 썼나 알아보기 위해서

쓰는것인데.. 편지를 10통째 쓰는 날에는 선생님이 선물을 하나씩

줄꺼에요..

우리 친구들이 다섯살이었을때 일곱살이었던 언니, 누나는 편지를

100통이나 써서 선생님이 선생님만한 인형을 선물로 주었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써 보세요."

"와-아.. 정말이요? 정말 키 만한 인형을 줘요?"

"음.. 무엇을 선물로 받을지는 100통이 되어 보면 알겠죠?"

"선생님.. 그럼, 한번에 많이 많이 써도 되요?"

"아니요? 그건 안되요.. 한번에 열통을 써 와도 선생님은

답장을 한장씩만 줄꺼니까요.. "

"자.. 그리고 선생님은 이 엽서에다 답장을 써 줄꺼에요"

"이야... 예쁘다.. "

"그리고, 열번째 선물은 이것을 주고 싶어요. 선생님이 선물로

받은 것인데 예쁜 어린이용 목도리에요.. 예쁘죠?"

"예.. 예뻐요"

편지 얘기에 시큰둥하던 녀석들이

선물 얘기에 두 눈이 왕방울 사탕이 됩니다.

하룻밤을 잤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배꼽에 모아지던 두손이 편지로 가득합니다.

"선생님.. 여기 편지요. 답장 주세요"

"에이.. 답장은 미리 만들어 놓는것이 아니야..

편지를 읽어 보고 생각을 적는거지.. 그러니까

답장은 내일 받을꺼야.."

"내일이요? 에이... 그럼 내일 꼭 줘요"

"알았어"

책상 가득 편지가 쌓입니다.

수북한 것이 편지이지만

수북한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들이 보입니다.

잠을 자기 위해 베개를 베고 누웠다가

편지를 쓰는 것을 잊었다고

베개머리를 엉엉 젖신 녀석도 그중 하나입니다.

편지 한쪽 귀퉁이에 예쁜 토끼그림이 있습니다.

"그 토끼 참 예쁘게 생겼네?"

다음날 모두들 토끼편지입니다.

엄마를 졸라 그린

편지지만한 왕토끼도 보입니다.

아침 차를 타면서 편지를 두고 왔다고

도저히 갈 수 없다고 칭얼대는 녀석도 그중 하나입니다.

가방에 똘똘 말아둔 종이뭉치를 휘익 던져주며

"답장 꼭 줘야 해요.. 알았죠"

도망가는 녀석도 그중 하나입니다...

녀석들의 편지로 체육실 도배를 하며

편지읽기에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녀석들...

친구들 편지를 들여다 보며

무엇이 좋은지 연신 키득키득 합니다.

경민이가 옆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경민아.. 너는 편지 없니?"

"제가 편지를 왜 써요?"

경민이는 말투가 투덜이 스머프같습니다.

"에이.. 선생님은 경민이 편지가 무지 받고 싶은데.."

"생각해 볼께요.."

다음날 하얀 봉투를 내밀며

아무렇지도 않은듯 말합니다.

"그냥 한번 써 봤어요"

돌아서는 경민이 녀석의 웃음띤 얼굴을 몰래 훔쳐 봅니다.

동환이가 신장이 좋지않아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검사도 하여야 하고

한달은 입원을 해야 한답니다.

친구들이 걱정입니다.

서로들 수군 거립니다.

"근데, 신장이 뭐냐?"

"피를 맑게 해 주는 거야"

"피? 난 코에서 피가 나는데.."

"선생님이 코피 흘리면 새로운 피가 생겨나서 피가 맑아진댔어"

"음.. 난 신장은 없고 심장은 있는데..."

무슨 대화인지 숙덕숙덕 합니다.

동환이를 위해 편지를 씁니다.

동환이를 위해 커다란 종이에 그림도 그립니다.

뜻대로 그려지지 않아 빨갛게 칠해 버리는 녀석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화를 냅니다.

"선생님.. 저 녀석이 이렇게 했어요"

"아니에요.. 이건 하트에요.. 사랑..하트요"

어찌보면 하트같기도 합니다.

친구들은 영 하트같지 않은가 봅니다.

연신 곁눈질로 뭐라고 트집을 잡습니다.

손에 손에 크레파스가 묻어 납니다.

아이들의 예쁜 손에 색색가지 크레파스가 칠해지듯

동환이에 대한 아이들의 사랑도 예쁜 크레파스 같습니다.

오늘도

녀석들의 인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선생님 답장 주세요"

요즘은 쏟아지는 편지 홍수에

사랑벼락을 맞는듯 행복합니다.

=> 질문" 일곱살 아이들이 편지쓰기를 하는 이유는?

글자가 아닌

글을 사랑하는 아이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르게 쓰여진 글자가 아닌

예쁜 마음이 담긴 글을 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삐뚤 삐뚤

철자법도 엉망이지만

졸린눈을 비벼가며 쓴 흔적이 많은 사랑의 편지입니다.

서로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듯

서로가 마음을 맞대고 편지를 쓸 수 있도록

우리네 어머님들..

우리네 아버님들..

우리네 아이들이 글자을 설령 못쓰더라도

우리네 아이들이 맞춤법이 많이 틀리더라도

예쁜 마음만을 읽어 주세요..

삐뚤어진 글씨마냥

발음대로 쓰여진 글자마냥

아이들의 마음밭은 기름지게 되는 거랍니다.

맞춤법을 위해 글을 쓰는 아이들이 되지 않도록 해 주세요..

생각을 맞춤법에 맞추는 아이들..

맞춤양복처럼 생각마져 맞추지 않도록 해 주세요..

천사들의 날개는 자유로움속에 커져 간답니다

'달봉샘의 성장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민이 이야기  (0) 2010.05.03
유치원 마지막 날에  (0) 2010.05.03
마술 놀이  (0) 2010.05.03
피구왕 통키  (0) 2010.05.03
12월 첫 번째 월요일  (0) 2010.05.03
희망이의 꿈  (0) 2010.05.03
그 해 겨울  (0) 2010.05.03
옥길동 선생님들의 저녁 식사  (0) 2010.05.03
질아성  (0) 2010.05.03
하늘 나라 장난꾸러기  (0) 2010.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