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발 하나 주세요!"
하루종일 굶은 옥길동 강아지 하늘이와
칭얼쟁이 고양이 찐득이와
옥길동 꼬멩이들의 마스코트 새끼 고양이 살금이를 위해
족발 하나에 참치 캔 하나 들고서
'에취!'
양손에 푸석 푸석 비닐 봉지 들고서
터벅 터벅 올라서는 옥길동 언덕에
'에취!, 에취!'
코멩멩이 소리에 재채기
비닐봉지가 덜렁 덜렁 재채기를 합니다.
선생님들과의 저녁 회식을 마치고 들어선 옥길동엔
반갑게 맞아주는 하늘이와 찐득이와 살금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아이들의 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새벽 바람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햇님을 꿀꺽 삼킨 듯이
활 활 타오르는 황금빛 구름을 바라보며
운동회 아침을 엽니다.
새벽 운동을 나온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하고
오늘 하루가 그려질 운동장을 한바퀴 돌아 봅니다.
아이들의 뜀박질이 살아나고
엄마, 아빠의 송알 송알 땀방울이 떨어져
웃음꽃 활짝 피어 오를 넓고 넓은 운동장에 발을 딛습니다.
운동회 아침은 분주합니다.
만국기를 다는 선생님들
플랭카드를 다는 선생님들
퍽퍽한 흙 땅에 자리점을 붙이느라
오십미터나 되는 자를 들고 백 미터를 뛰는 선생님들
선생님들의 운동회는 준비에서부터 달리기입니다.
처음으로 하는 야외 운동회라
멋들어진 시작을 위해 박터뜨리기를 준비합니다.
눈에도 붙여 보고 얼굴에도 붙여 보고
개회를 알리는 박을 위해
나무타는 다람쥐도 되고
대롱 대롱 거미도 되고
흔들 흔들 그네도 됩니다.
"선생님.. 박 달다가 박이 떨어졌어요."
"다시 달아 보세요. 떨어 진데는 붙이구.."
개회 박이 문제입니다.
다섯 살 때부터 다닌 큰 형님들이 개회 박을 터뜨리면
멋들어진 운동회 플랭카드가 쏟아지도록 고민 고민 만든 박인데
시작부터 영~ 안절 부절입니다.
이리 쿵 저리 쿵 아침부터 혹사 당하던 박은
시작을 알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영락없이 두 동강이 나 버립니다.
플랭카드는 말려 떨어질 줄 모르고
시작부터 박은 선생님의 애물단지가 되어 버립니다.
운동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커다란 운동장에
땅콩만한 녀석들이
한 평씩의 땅을 딛고
발돋음을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커다란 운동장을 빽빽하게 채우면서
선생님의 가슴에도 신바람이 붑니다.
누가 이 녀석들을 땅에 붙은 사람이라 했던가
누가 이 녀석들을 작고 작은 사람이라 했던가
누가 뭐래도 오늘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바로 이 녀석들입니다.
다섯 살 녀석들의 금색 수술 체조는
황금빛 행복을 쏟아 냅니다.
여섯 살 녀석들의 뚱보 아저씨 체조는
빨갛게 달아오른 볼과 노랗게 예쁜 웃음이
말 그대로 어울림입니다.
일곱 살 녀석들의 스스로 만든 공체조, 리본체조, 훌라후프 체조
하나 하나 살아있는 녀석들이
말 그대로 운동회입니다.
따가운 가을 햇볕이
아이들의 얼굴에 걸립니다.
운동회 놀이가 시작됩니다.
다섯 살, 여섯 살 녀석들의 장애물 경기
일곱 살 녀석들의 피구와 축구
엄마, 아빠들의 줄다리기
아이들의 줄다리기
손바닥이 빨간 장갑으로 기선을 제압하려던
좋은 아버지 모임의 줄다리기
알록 달록 터널을 통과하고 조그만 산을 넘고
손으로 던지고 발로 차고
당기고 당기고 있는 힘껏 당기고
좋은 아버지 좋은 맘으로
승부에서도 질 수 밖에 없는 좋은 미덕으로
꿀맛같은 도시락을 열게 합니다.
점심시간입니다.
입 안에 침이라곤 온데 간데 없습니다.
마른 사막같은 입 안에 콸 콸 물을 쏟아 부으며
오후의 운동회를 준비합니다.
"선생님, 식사 하세요"
"아.. 나는 운동회 때 점심 안 먹어요"
"힘든데 먹어야죠?"
"괜찮아요"
"신경 쓰여서 그래요? 선생님. .예민하신가 봐"
'예민? 후후.. 밥 안 먹어도 배부른걸...
운동회 만큼 신나고 행복한 하루가 없기에
아침 내내 두 세 그릇 뚝딱 밥 먹은 듯
이렇듯 즐거움으로 배부른데.. 들어갈 데가 있어야 밥을 먹지..
밥 들어갈 때 있으면 아이들 웃음꽃 하나 더 심을래..'
태권도 시범단 녀석들의 시범을 준비합니다.
태권무도 준비하고 송판 격파를 준비합니다.
아무리 해도 격파가 되지 않는 세 녀석을 위해
남몰래 송판에 금을 그어 놓습니다.
손만 톡 갖다 대어도 격파가 되도록...
한 번도 제 힘으로 격파를 해 보지 못한 녀석이
오늘도 그러하리 자신없게 내려 치는데
웬걸? 팍! 하고 부서지는 송판에 두 눈이 휘둥그레 집니다.
'아니? 내가 격파를 했네?'
스스로 놀라는 모습에 가슴 뒤로 쿡 쿡 웃음보가 터집니다.
부부가 함께 하는 한 마음 줄넘기
데굴 데굴 온 가족이 함께 구르는 큰 공 굴리기
과자도 따 먹고 밀가루 얼굴에 사탕도 씹어 먹고
초등학교 운동회를 연상시키는 아이들의 오십미터 달리기
그리고, 엎치락 뒷치락 손아귀에 땀 차는 이어 달리기까지
어제 일, 내일 일 송두리째 벗어 두고
오늘을 살고 있는 한 마음 한 가족
선생님들의 회식자리에선 또 다른 운동회가 시작됩니다.
" 내년에는 이렇게 하는게 어때요?"
" 와우. 그거 재미있겠는데요?"
강아지, 고양이에게 밥을 줍니다.
"너희들은 오늘 뭐했니?"
고양이 목 끈을 잡고 줄다리기도 해 보고
복도를 뛰어 다니며 달리기도 해 보면서
조용한 옥길동의 밤에도
작은 운동회를 열어 봅니다.
10월의 가을은 운동회가 있어 좋습니다.
[운동회 에피소드]
1. 태권무.. 까 먹다!!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아이들보다 더 좋아하던 태권무를 하다가
단상 대신 사용하던 엎어놓은 옷장에서
발을 헛딛어 떨어지고 나더니
살금 살금 얼음 위를 걷듯이
살 살 태권무를 하다가
급기야 태권무를 까 먹고
머리속이 하얗게 아무생각도 없이
7년동안 해 오던 태권무를 몽땅 잃어버린 그 순간..
선생님은 기가막혀 웃을 수 밖에 없었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
"까 먹은게 더 재미있었어요"
덩달아 까먹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Y 역사상 처음으로 중간에서 체조를 마감하는
웃지못할 헤프닝이 벌어졌지요..
운동회가 끝나고 옥길동의 잔잔한 어둠가운데
다시금 태권무를 해 보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내가 왜 그랬을까?'
알 수 없는 물음표가 선명할 수 밖에..
2. 태권도 싸나이 한 동수!
YMCA를 사랑하고
옥길동을 사랑하고
아기스포츠단을 사랑하고
태권도를 사랑하고
축구를 사랑하고
다섯 살 때부터 YMCA 밖에 몰랐던 한 동수!
캠프를 끝으로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가깝고도 먼 평촌으로 이사를 갔는데..
가족 운동회를 맞아
멀고먼 평촌에서
태권도 띠 동여메고
친구들의 뜨거운 환송에 힘입으며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 등장하였습니다.
동수를 위해 선뜩 축구 자리를 내 준 지민이와
멋들어진 폼으로 부숴지던 송판과
동수가 보여준 뜨거운 사랑은
동수를 사랑하는 친구들의 가슴 따뜻한 사랑은
운동회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중
가장 으뜸일 것입니다.
3. 승민아! 물통은 왜 들고 뛰니?
어린이 50미터 달리기..
국민학교 시절 손목에 찍어 주던
달리기 등 수 표시를 기억하며
어린이 50미터 달리기를 만들었습니다.
일곱살 녀석들의 바람을 가르는 모습과
여섯살 녀석들의 흔들 흔들 달리기가 있은 후
다섯살 녀석들의 올망졸망 달리기..
앗! 그런데 마치 마라톤을 하듯이
물통을 들고 뛰는 녀석이 있는데
다름아닌 꽂다지반 승민이..
승민이는 왜 물통을 들고 달리기를 해야만 했을까..
그만큼 소중한 물통이었을까..
나중에 한 번 조심스레 물어 봐야 하겠습니다.
4. 조끼 입어라!!
점심시간.. 태권도 시범을 준비하는데
선생님들이 부릅니다.
"왜요?"
"선생님.. 총무님이 YMCA 조끼 입으래요"
"아니. 갑자기 왜 조끼를?"
"선생님만 조끼 안 입었다고.."
총무님.. 손을 흔들며 알아서 결정하라는 눈짓..
선생님들 쿡 쿡 웃음을 참아가며 던지는 말이
내심 이상합니다.
YMCA 조끼 입기를
치과 가기보다 더 싫어하는 나이기에
잠시동안 망설임에 망설임..
"나..조끼 입으면 체조 못해요."
"왜 못해?"
"너무 작단 말야.. 커다란 엉덩이도 다 들어나고.."
"그래도 일단 입어 봐.."
"싫어! 다른 건 다해도 그건 못해!!"
조끼 입기 싫어 도망갔습니다.
총무님..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어도
조끼 만은 입을 수 없습니다.
조끼를 입으란 말씀.. 거둬 주세요!! 녜?
5. 숨은 일꾼들에게 감사!!
개회식 박 터뜨리기 때
박이 부숴지며 엉킨 플랭카드를
빨간 체육복에 열심히도 펼 쳐 주신
생활협동조합 박재훈 간사님.. 감사합니다.
운동회 마지막 박터뜨리기를 위해
길다란 장대 두개 커다란 용달차에 덜렁 싣고
튼튼하게 박을 연결해 주신
볍씨학교 윤석재 선생님.. 감사합니다.
공 굴리기 커다란 바람 공
열심으로 바람을 빼 주시고
총을 쏘고 깃발을 휘날리며
열심히 도와주신 김기원 간사님.. 감사합니다.
운동회 아침 시작 전에
아침인사를 거들며 안내문을 나누어 주신
볍씨학교 강옥희 간사님.. 감사합니다.
도시락을 싸다 말고
부랴부랴 운동회 짐부터 실어다 주신
이영이 총무님.. 감사합니다.
쉬는 날이라 쉬엄 쉬엄 놀러왔다
얼떨결에 행사용 선생님으로 둔갑한
상담실 신리라 선생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열심히 줄넘기 연습을 하여
학부모님들께 드리려고 준비한 선물을
보기좋게 나꿔 채 가신
보기좋은 부부, 줄넘기 부부
볍씨학교 함영미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드시라고 예쁜 손 고막손으로
도시락 건네준 질경이반 정민아.. 고맙다!!
YMCA는 한 가족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재미있고 신나는 운동회였습니다.
운동회!! ..한 학기에 한 번씩 하면 어떨까?
우리 선생님들의 아우성이 저만치서 들리는 듯 합니다.
모두 모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광명 YMCA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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