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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젊은 날의 초상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한 벌 밖에 없는 양복을 입고

검은 넥타이를 맵니다.

일산병원 장례식장

큰 고모와 눈이 마주치자

설움에 붇받쳐 통곡을 하시는 고모님

사촌동생의 영정을 앞에 두고

큰 절을 합니다.

"염려 마세요. 고모. 장례 일은 제가 알아서 할테니.."

10년 전 고모부를 병으로 여의시고

하늘같은 두 아들 열심히 키워 보시겠다고

시장판에서 막노동판에서 땀으로 세월을 보내신 고모이신데

야속하기만한 세월은 아직도 많은 상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 살박이 녀석이 들어 옵니다.

사촌동생의 아들입니다.

뒤로 배 부른 부인이 들어 옵니다.

사촌 동생의 아내입니다.

임신 8개월

세 살박이 녀석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남겨놓고

사촌 녀석은 그렇게 떠나고 말았습니다.

영정을 보고 아빠에게 배꼽 인사를 하는 녀석

향을 올리고 술을 따르고 배꼽 인사를 하는 녀석

작은 고모.. 작은 녀석 시중을 들며

연신 눈물을 훔쳐 내십니다.

"사과.. 아빠 사과.."

"그래.. 아빠 사과다.. 아빠 드시라고.."

"꽃.. 예쁜 꽃.."

"그래.. 아빠 얼굴 예쁘게 보이라고.. 아빠 꽃이다.."

조그만 녀석 재롱에 연신 눈물이 흐르시는 고모

"왜 울어?"

"응.. 그냥 눈물이 나네.. 자꾸.. 눈물이.."

배부른 아내..

영정을 어루만지며 혼잣말을 합니다.

"자기야.. 많이 먹어.. 그렇게 먹고 싶어 한던 밥이야.."

저녁 11시

경찰서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검사로부터 승인이 떨어져서 입관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살은 검사로 부터의 확인절차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을 확인합니다.

문상객이라곤 조촐한 가족들이 전부인 까닭에

이틀장을 치루기로 합니다.

부산사는 큰 집 사촌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합니다.

장례절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자살이라 하더라도 아이를 생각해서

납골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하지만 유언도 있고 부모보다 먼저 간 자식이기에

뿌리는게 좋지 않겠냐고..

부산사는 큰 집 사촌은 아이를 생각해서

반드시 납골을 해야한다 합니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몇 해 후에 교통사고로 어머니까지 여인 사연이 있기에

큰 집 사촌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저립니다.

하지만 장래가 창창한 배부른 아내를 생각하고 처가도 생각하여

태어난 부산 바다에 뿌리기로 결정을 합니다.

새벽이 찾아 옵니다.

새벽 바람을 맞으며 사촌녀석들과 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래도 해는 떠오르네.. "

"그렇지.. 해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항상 떠오르지..

살아있는 사람들에겐 항상 희망이 필요하니까.."

큰 집 사촌녀석이 담뱃불에 불을 붙이며 말합니다.

"너하고 나는 가까우면서도 참으로 먼 사이인 것 같다"

"가까운 것은 몸이고 먼 것은 마음이었으니까 그렇지.."

"그럴까?"

입관을 끝내고 장례절차를 점검하고

잠시 눈을 붙입니다.

큰 집 사촌녀석의 절규하는 울음소리와

큰 고모의 흐느끼는 소리

죽은 녀석의 하나밖에 없는 형의 목 메이는 소리가

귓 전을 어지럽힙니다.

영구차에 오릅니다.

친구들과 처가댁 처남들이 관을 들고서

영정을 앞에 들고서

벽제로 향합니다.

오전 일을 마치고 오신 아버지께서

고모들과 둘러 앉아 넋두리를 하십니다.

"그래도 창욱이가 있어 다행이네예.

척 척 알아서 처리해서 마음이 놓이지예."

"암.. 그래도 우리 큰 아들이 제일 믿음직스럽지..

난 이렇게 살아도 자식 새끼들이 잘 자라서 행복해"

초점없이 바라보는 창에 눈물이 맺힙니다.

아버지의 행복하다는 말이 왜 이리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자식이랍시고 고개들 수 없는 자신이

참으로 초라해 집니다.

자식은 언제나 죄인인가 봅니다.

번호표를 들고서 대기실에서 기다립니다.

'사람은 죽어서도 이렇게 줄을 서야 하는구나'

아무리 잡아두려 해도 시간은 흐릅니다.

무표정한 사람들과 흐느끼는 사람들과

가슴을 녹이는 애절한 울음들이 뒤섞여

시간은 그렇게 흘러만 갑니다.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영영 떠나갑니다.

커다란 철문이 닫히고 희미한 조명불이 켜지고

소리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후에

하얀 먼지마냥 사라져 버린 육신위로

조그만 상자 속에

육백 그램밖에 되지 않는 무게로

마지막 흔적을 남깁니다.

작은 상자에 얼굴을 문지르고 가슴에 품고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동생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아들 녀석 참 이쁘게 생겼데요.

그 조그만 녀석이 희망이 되어 줄 것입니다. 열심히 사세요."

어쩌면 남이 될지도 모를 가족들과 인사하고

작은 상자로 떠나 보내는 마음 붙잡지 못해 눈시울을 적시면서

어렵고 어려운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무겁습니다.

고모들과 마주앉아 아버지와 마주앉아

사촌녀석과 마주 앉아 저녁식사를 합니다.

술 잔이 오고 가면서

큰 고모의 참았던 설울이 물 밀 듯이 살아납니다.

돌이켜 헤아리면 무엇하리오

돌이켜 씹어보면 무엇하리오

큰 아들 녀석과 단 둘이 되어 버린 큰 고모의 작은 어깨를 안으며

이제는 좋은 일로 만나자고 몇 번이고 인사합니다.

"연락하자. 자주.. 그리고 어머니 잘 모셔라.. 네가 그녀석 몫까지 해야 한다."

"예.."

어렵고도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다시금 일상으로 되돌아 가야 할 시간입니다.

이제는 다시금 희망으로 시작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에겐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삶 속에 영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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