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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한결같이, 몸 놀이 선생님 이야기

홍역앓이

며칠 동안의 홍역앓이 같은 몸 고생 마음 고생을 마치고 내일은 다시 출근하는 날이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중
내가 없으면 사라질 일들이 무엇인지 안다.
광명에서도 그랬고
안양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일의 한계도 분명히 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대부분은 교사의 헌신이 없으면
엄두를 내기도 어려운 일임도 분명히 안다.
내가 교사를 시작할 때는 그랬다.
모름지기 교사는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새로운 교사를 뽑을 때에 묻기도 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아이를 구하기 위해
네 목숨을 버릴 수 있냐는 황당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결코 말로 보여줄 행동이 아님에도
나는 나 자신에게도 묻고 또 물었다.
그런데 세대가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렇게 헌신하며 사는 것은
우리 세대에 족한 것 같다.
젊은 교사들에게 강요할 수도 강요되지도 않는 일이며
우리 세대가 젊은 교사들을 오히려 지켜줘야 할
일이기도 하다.

급여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는 연차 높은 교사나 간사가 되면
조금은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젊은 교사들의 급여를 높여주기 위해
오래된 교사들과의 급여 간격을 줄인다.
오래된 교사나 간사는 그 만큼의 소명 의식이 있어
이러한 것을 거리낌없이 받아 들였다.
이것이 젊은 교사들에게
소명의식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에 대한 불만은 없다.
진정 나는 삯꾼이 아니라 일꾼으로 사는 것이니.
하지만 교사의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헌신했던 것의 가치를 생각없이 되묻는 이들에 대해
아직까지 나는 관대하지 못한 것 같다.
이것이 결코 나 자신이나 자신을 헌신하며 살아가는
교사들에 대한 질책이 아님에도
아직까지 가슴에 상처가 되는 것은
아직도 진정한 교사가 되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한 생을 살면서 몸과 마음을 바쳐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소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한데
아직 덜 찬 교사이다 보니 여전히 가슴이 얇고 여리다.

다시금 새롭게 몸과 마음을 정돈하여
진정 부끄럽지 않은 교사로
배움을 계속 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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