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결같은 진우~ 선생님하고 상담할까요? "
" 네~ "
교실 바닥에 이불 한 장을 깔고
한결같은 진우와 나란히 앉습니다.
모락모락 더운 기운 가득한 물 잔을 건네줍니다.
" 천천히 마셔요. 뜨거우니까~ "
" 네~ "
" 진우가 딱지치기 잘~ 한다고 친구들이 그러던데요? "
피식 웃는 녀석.
" 최지호 보다는 못해요. "
물 잔만 쳐다보던 녀석이 무엇인가 생각난 듯 선생님을 쳐다봅니다.
" 여섯 살들한테는 다 따 버려요. 초강력 딱지 같은 걸로 다 따 버려요. "
" 초강력 딱지가 뭐에요? "
" 너무 납작한 거에요."
" 그렇구나~ "
물 잔에 입을 대 보는 진우입니다.
" 진우는 누구랑 친해요? "
" 생각 해 보구요. "
한참동안 물 컵만 바라보더니,
" 질경이 반에서요?..... 모르겠어요. "
선생님도 천장을 바라보며 옛 생각을 합니다.
" 지금은 중국에 있는 마음친구 준영이랑 한결같은 진우랑 함께 떡볶기 먹던 생각.. 지금도 나요~ "
" 있잖아요. 준영이는요 입이 제일 어려웠는데요 전 입이 제일 쉬웠어요. "
으잉? 이게 무슨 말일까?
" 그게 무슨 말이에요? "
" 티라노 조립품이요~ "
" 아~ "
마음친구 준영이가 중국 가기 전에
같은 동네 사는 한결같은 진우랑 마음친구 준영이랑 선생님이랑
다른 아이들 몰래 만나 떡볶기 먹고
공룡 알에 든 티라노 조립품 살짝 건네주던 기억이 납니다.
" 다른 친구들한테는 얘기 안 했지요? "
" 네~ "
신이 났는지 한결같은 진우가
묻지 않아도 계속 말하기 시작합니다.
" 저는요 미로보다는요 퍼즐이 더 재밌어요... 가까운데 마트도 있고 머리 깎는데도 있어요. 바로 건너편. "
선생님이 잠시 딴전을 피우는 척 합니다.
" 어? 파리가 아직도 있네? "
" 우리는요 파리는 못 잡아요. 잡을려고 하면 못 잡아요. 모기는 잡겠는데 파리는 못 잡겠어요. 실베짱이 같은 건 잡아요. "
" 실베짱이가 뭐에요? "
" 곤충이름이에요.... 거의 다 먹겠어요... 선생님.. 다 먹었어요... "
빈 잔을 건네는 한결같은 진우입니다.
" 그래요? 다음에 또 얘기해요. "
" 네~ "
신이 나서 뛰어가는 녀석을 봅니다.
어른들과의 대화를 통해
저렇듯 항상 신바람이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 선생님의 바램 하나가 생기는 순간입니다.
" 어휴~ 뜨거워서 못 마시겠다. 땀이 나는데요. 잠 잘 때 땀나요. 놀 때마다 소름이 나네? "
" 소름이 뭔 데요? "
그림동화 영인이와 상담을 하는 중입니다.
" 떨리는 거요. "
" 소름이 왜 나요? "
" 몰라요. 나 다음 김준형 해 주세요. "
" 왜요? "
" 먹을 때마다 코로 들어가요~ "
" 뭐 가요? "
" 물이요~ "
" 그래요? 흐흐흐 "
" 한 방울 먹기 힘들다 "
" 영인이가 가장 친한 친구가 이야기 준형이에요? "
" 박건욱.... 하고 준형이... 먹기가 무서워요 "
" 호호 불면서 마셔요~ "
그림동화 영인이가 물 컵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더니 가만히 물 컵 앞으로 얼굴을 대 봅니다.
" 가까이서 보면 늑대얼굴 같아요. "
" 뭐 가요? "
" 물이요~ "
" 이야기 준형이는 뭐가 좋아요? "
" 몰라요. "
" 생명 건욱이는 뭐가 좋아요? "
" 곤충 좋아해서 좋아요. 나도 사실은 곤충 좋아하거든요.... 입술이 말랐다. "
혼자서도 중얼중얼 잘도 말하는 녀석입니다.
" 호호 불면서 마셔요. "
" 한 방울 또 먹었다. 히히... 두 방울 째! "
" 준형이와 건욱이 말고 친한 친구는 없어요? "
" 있어요. 김동영.... "
영인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영인이가 텔레비전을 많이 봐서
걱정이라던 영인이 어머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 요즘에도 텔레비전 많이 봐요? "
" 어제 안 봤어요. "
" 컴퓨터는? "
" 일요일, 토요일만 하는데.. "
캬~ 캬~ 소리를 내며 물을 마시기 시작하는 영인이.
" 그냥 대충대충 먹어 보니까 따뜻하다~ 아빠랑 잘 수도 있고 아빠가 데려다 줄 수도 있어요 "
" 그게 무슨 말이에요? "
" 차 타는데 까지요~ 아빠 회사랑 길이 똑같아요. "
" 응~ 그렇구나~ "
" 풀씨 학교 오는 거 재미있어요? "
" 네~ "
" 뭐 가요? "
" 친구들이랑 노는 거. "
" 선생님이 볼 때는 하나도 재미없어 보이던데... "
눈을 찡긋하며 웃어주는 영인이 입니다.
" 친구들하고 뭐하고 노는 게 재밌어요? "
" 나무 블럭."
" 만들기? "
물을 마시는 중이라 고개만 끄떡끄떡 합니다.
" 거의 다 먹었다. 이제 점점 차가워진다.... 다 먹었어요. "
웃을 때면 초승달이 두 개 뜨는 영인이.
귀여운 표정으로 컵을 건네줍니다.
몇 시나 되었나 시계를 보니
한 녀석 정도는 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무슨 얘기 할 까요? "
물 컵을 듣고 웃기만 하는 녀석.
친구사랑 가현이 입니다.
" 어떤 얘기? "
" 가현이가 하고 싶은 얘기하면 되요 "
" 오늘 다 못하면 어떻게 해요? "
" 물 다 마실 때까지만 할 꺼에요. 그리고 다 못하면 나중에 또 하면 되요. "
" 선생님이 물어 봐요 "
" 알았어요..음... 아빠 많이 보고 싶죠? "
가현이 아빠는 지방 출장 중이십니다.
" 네.. 지방 갔다 왔는데 또 갔어요. 방에 불빛 나는 거 달고 싶은데요... 겨울에 온다고 했어요... 아빠가 쌀을 베란다에 엎었어요. "
" 왜요? "
" 화나서요... 교회에서요... "
그 다음 얘기는 하도 길어
중간생략 합니다.
" 주영이랑 효민이랑 노는 게 제일 재밌어요. "
" 저번에 아빠 생신 날 축하 잘 했어요? "
지방 출장 가신 아빠 놀래 켜 준다고
가현이 네 가족이 깜짝 방문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궁금하여 물어 봅니다.
" 그 때 아빠가 눈이 잘 안 보였어요 그래서 눈에 얼음 마사지했어요.... 뭘 쓰는 거에요? "
선생님 하는 모양을 유심히 살피는 가현이 입니다.
" 응? 가현이 하는 얘기 잊어버리지 않을려고 적는 거에요. "
" 여기서는 친구사랑 가현이인데요 집에서는 가족 사랑 가현이에요. "
" 그렇구나... 아참, 볍씨 학교 가기로 했어요? "
고개만 끄떡이는 녀석입니다.
그러다 문득,
" 7학년 살림반 문에다 쏙 넣었어요 "
" 뭐를요? "
" 저번에 선생님 보여준 종이요. "
아~ 입학원서~
" 북이랑 꽹과리랑 좋아서요. 엄마 나 볍씨 학교 다닐께요 했어요. 그리고, 효민이하고 주영이하고 도원이하고 책방에서 아까 싸웠어요... 효민이하고 주영이가 문을 잠궈 가지고 도원이하고 못 들어오게 해서요. 효민이는 문 열어줬는데 주영이는 왜 열었어? 했어요. "
" 그렇구나~ "
" 그리고요 나는요 있잖아요 그거 풀씨 학교가 오후까지 끝나잖아요. 그래서요 나는 3시까지 끝나는 거 싫어요. 집에서 놀고 싶어요... "
쿨 컵을 내려놓더니만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가현이 입니다.
" 그리고 도원이랑 나랑 좀 친하긴 친한데요 아빠랑 캠프 갈 때도 친했잖아요.... 그치만 백민재랑 승하랑 도원이랑 주영이랑 노는 게 더 재밌어요...."
" 가현이는 애기 하는 걸 참 좋아보나 보네요? "
" 네~ 오늘 치과 가기 싫다~ "
" 치과 가는 날이에요? "
입을 쩍 벌리더니 치료한 이를 보여줍니다.
" 엄마가 화내요. 양치질 좀 잘하라고... 선생님은 우리한테 눈감으세요 할 때 왜 눈 안 감아요? "
" 응? 응~ 눈 뜬 친구 있나 보려구요 "
" 그런데, 전에 숨쉬기 할 때는 눈감아도 다 보인다면서요... "
잌.. 할 말이 없어집니다.
" 알았어요. 선생님도 꼭 눈 감을께요... "
" 선생님~ 이제 밥 먹어요~ 다 먹었어요"
" 네~ 밥 먹어요. 자~ 밥 먹을 준비~ "
오늘도 일곱 살 아이들과 상담을 하였습니다.
하다보니 상담을 하는지 상담을 받는지
아리송해집니다.
아이들 말은 기분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욱 솔직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한 두 녀석과 꼬맹이 상담을 하다보니
목 빼고 상담시간을 기다리는 녀석도 생깁니다.
선생님이 건네주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입맛을 다시는 녀석도 있습니다.
녀석들 하는 모양을 보면
절로 행복해지기 일쑤입니다.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