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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조금은 달라집니다.

살아가는 모양이...

침묵과 마주앉아 들여다 보던 하루를

뜻없는 소음으로 시끄러운 피씨방에 앉아

손가락으로 톡 톡 건드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같습니다.

하루가 감사한 모양이...

컴퓨터로 글을 쓰면 참 좋은 점 하나는

한 시간동안 열심히 글을 써도

손가락 하나 잘못 놀리면 뿅하고 사라져 버린다는 것!

오늘도 그런 이유로 다시금 써 내려가는 하루지만

같은 일을 두 번 써도 여전히 행복하다는 것!

기계를 다루는 손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행복을 담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선생님! 정말 재미있었죠?"

"그래. 정말 정말 재미있다"

아이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오는 길입니다.

인형극을 보았습니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한 시간동안이나 입을 벌리고 있었어도

입 아픈 줄 몰랐습니다.

먹을 것을 먹는양 입을 벌린 채.

그러나 배가 불러 나왔습니다.

꺽- 하고 트름을 하면

와르를 재미가 쏟아질 듯 배가 부릅니다.

"이제 뭐 해요?"

"점심 먹어야지. 엄마가 싸 주신 맛있는 도시락!"

오늘은 주걱도 필요없고

반찬을 받기위해 줄을 서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은 도시락을 싸 오는 날!

청소 모둠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앉은 자리, 먹은 자리 손바닥으로 한 번 훓으면

반질반질 깨끗해 집니다.

도깨비가 뚝딱하듯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고

"선생님! 나가서 놀께요"

외투를 입고 나섭니다.

"질경이반 모여라!"

놀고 있던 녀석들이 쳐다 봅니다.

"왜요? 뭐하게요?"

"청소하자!"

"청소 다 했잖아요"

"너희들이 노는 곳은 모두가 교실이잖아.

여기도 너희들 교실이야. 오늘은 바깥교실을 청소한다"

"에이... 오늘은 청소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주빈이는 가서 쓰레기 봉투 가져오고

다른 친구들은 쓰레기를 주워오자"

놀이가 부족했는지

돌멩이 신발을 신은것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녀석들입니다.

"뭐하냐. 이녀석들아! 허리굽혀 손으로 줍자!"

하늘보고 땅보고 눈치보고 슬슬

발로만 톡톡 얄궂은 비닐봉지만 건드리는 녀석 둘.

"창근이하고 인규는 이리와라!"

"왜요?"

"너희들은 쓰레기 봉투 좀 잡고 있어라.

친구들이 쓰레기를 잘 넣을 수 있게"

"에이..손 더러워지잖아요"

"더러워지나 안 더러워지나 어디보자"

친구들이 넣는 쓰레기가 손에 닿을까 멀치감치

오리처럼 볼록 엉덩이를 내민 꼴이

영 하기싫은 모양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뒤로뒤로 가던 녀석들

급기야 부욱- 쓰레기 봉투를 찢고 맙니다.

"이런. 봉투를 붙여야 하겠네"

덕지덕지 봉투를 여밉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더러운 일을 해야겠다"

"더러운 일이요?"

"그래. 더러운 일"

"그게 어떤 일인데요"

"저기 있는 고양이 똥통을 치우는 일"

차곡차곡 한 달 남짓 고양이가 모아놓은 고양이 똥.

"냄새나는 똥을 치우라구요?"

"자! 선생님하고 같이 하자"

역시나 엉덩이를 뒤로 빼고 손가락으로 달랑달랑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 똥통이 퍽-하고 떨어집니다.

똥 묻은 흙에서 흙묻은 똥에서

묵은 똥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 오릅니다.

"용문아! 뒷편에 가서 삽 좀 가져와라"

쏟아진 똥을 치웁니다.

쓰레기를 피하려다 봉투를 찢고

똥을 피하려다 똥을 쏟고

일을 안 하려다 일을 만드는 녀석들.

"이번에는 저기 있는 토끼똥을 치우자"

"또 똥을 치워요?"

"그래, 네 녀석들이 열심히 치울 때까지."

"너무 더럽잖아요"

"더러운지 안 더러운지는 치우고 나서 보자.

자! 열심히 치우자!"

한 녀석이 더 달라붙었습니다.

기창이, 인규, 창근이.

영차 영차 하지만 천천히.

이번에는 찢지 말아야지.

이번에는 쏟지 말아야지.

"잘 했다. 이제 들어가자. 들어가서 깨끗하게 손 씻자"

아이들과 동그랗게 앉습니다.

"선생님 손을 봐라. 손이 더럽니? 깨끗하니?"

"깨끗해요"

"고양이 똥을 치우고 토끼 똥을 치운 손인데

깨끗하니?"

"깨끗하게 씻었잖아요"

"그래, 맞아.

손은 아무리 더러운 것을 만졌어도

씻으면 다시 깨끗해진다. 옷도 마찬가지지.

그런데, 아무리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리고 씻으려 해도 씻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게 뭘까?"

"? "

"그건 바로 깨끗하지 않은 마음이야.

마음은 물로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너희들이 오늘 청소한 것은 더러운 쓰레기고

냄새나는 똥이야.

하지만 잘 치우면 깨끗한 것이기도 해.

너희들 손을 잘 봐.

손은 깨끗하기도 하고 더럽기도 해.

내 손이 내 옷이 더러워지더라도

뮬로 씻으면 다시 깨끗해질 수 있어.

씻으면 깨끗해지는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청소할 때 꾀를 부린 녀석들은

대신 마음이 더러워질 수 있어.

청소할 수 없는 마음이 말야.

청소는 마음도 깨끗하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돼.

알겠니?"

"네!"

졸업하기 3일 전.

우리네 아이들이 유아시절을 졸업하고

어린이가 되기 3일 전.

좋은 것은 친구 먼저 생각하고

좋지 못한 것은 나부터 먼저 생각하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매일 매일 나누었던 나눔의 의미마져

졸업하지 않도록

일곱살 선생님과 일곱살 아이들이 마음을 청소한 날!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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