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캐러 갑니다.
호미랑 낫이랑 삽이랑 들고서
양말통에 바지단을 먹이고
빈 수레 요란하게 짤랑대며 갑니다.
오늘은 고구마를 캐러 갑니다.
고구마 줄기를 뜯는 녀석
호미로 콕콕 찧는 녀석
키 만한 삽으로 엉거주춤 춤을 추는 녀석
벌레들고 사방팔방 뛰는 녀석
한 손으로 두 손으로 열심히 땅만 파는 녀석
머리 아파 쉬는 녀석
갑자기 배 아픈 녀석
목마르다 하늘 보는 녀석
쉬마렵다 오줌 누는 녀석
친구따라 마냥 뛰는 녀석
그 녀석보고 씽긋 웃는 녀석
고구마 고개 내민 밭에
왁자지껄 아이들, 고구마를 캡니다.
"선생님, 이것 좀 뽑아주세요"
파고 파고 또 파서
하늘 향해 우뚝 쏫은 고구마 산을 만들어 놓고
힘이 모자라 선생님에게 손을 내밉니다.
"이것 쯤이야!"
한 손으로 힘껏 뽑으니 중간에서 달랑 떨어지는 고구마.
"뭐에요? 끊어졌잖아요. 그렇게 하면 어떻해요?"
"어? 미안하다. 고구마가 생각보다 안 튼튼하네?"
고구마 줄기를 걷어냅니다.
낫으로 베어 한 손에 두 손에 잔뜩 들고
아이들 얼굴위로 휘익 지나갑니다.
"우와- 힘 쎄다! 나도 하게 해 줘요!"
여섯 살 나리꽃반 녀석들입니다.
으쓱- 아이들 앞에서 힘 자랑하는 선생님
아기 새 밥 달라 쫑알대듯
"나두 줘요. 나두 줘요. 나두 줘요"
이 녀석, 저녀석 집어주고 집어주고 또 집어줘도
어느새 달려 온 녀석들로 숨 쉴 틈이 없습니다.
"아이구, 힘들어라.. 선생님 좀 쉬자"
"나두 줘요, 나두 줘요, 나두 줘요"
"조금만 쉬자. 선생님 알통이 깨질려고 한다"
"알통이 깨져요?"
"볼래?"
팔을 걷어 붙이고 볼록 나온 알통을 보입니다.
손가락으로 통- 튕기며 쨍기랑- 합니다.
"봤지? 깨졌잖아. 저기가서 붙이고 올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우리 반 녀석들에게 달려갑니다.
"도와줘요, 질경이반!"
"선생님, 왜 그래요?"
"제네들이 선생님 알통 깨지게 자꾸 일 시켜"
"너희들..가서 고구마 줄기나 뽑아!"
형이랍시고 떡 하니 앞을 막고 얘기하는 폼이
정말 형입니다.
씨익 웃으며 "고맙다!"
손으로 호미로 삽으로
내 손으로 내 힘으로
콧물, 눈물, 땀물, 빗물 묻혀가며 키운 고구마
오늘은 보물을 캐는 날입니다.
눈 부시도록 환한 웃음 터져나는
고구마는 결실을 가르쳐 주는 보물입니다.
"선생님, 몇시에요?"
"선생님, 배고파요"
뚝딱 뚝딱 밥 먹을 시간입니다.
"자! 이제 내려가자"
호미 소리 딸랑이던 빈 수레에
울퉁불퉁 고구마가 잔뜩입니다.
영차! 영차! 영차!
열심히 들고 나르는 아이들
"선생님은 왜 안 들어요?"
"선생님은 응원하잖아! 영차, 영차"
"에이, 힘드니까 들어요. 힘 쎄 잖아요"
"알았다. 이놈들아, 성내지 마라!"
거북이 걸음입니다.
"에구, 힘들다!"
"어? 선생님. 이상한 고구마가 하나 있어요"
"뭐지?"
"이 고구마 이상한데요? 이거 가짜 고구마 아니에요?"
"가짜 고구마?"
자세히 보니, 무입니다.
"무우잖아!"
"무우가 왜 여기에 들어있지?"
"재미있으라구. 재미있네. 고구마 통에 무 하나 있으니.."
"히히히, 헤헤헤"
시커먼 손
흙투성이 바지
손톱에 가득한 때
머리 꼭데기까지 내려앉은 흙덩이
꿀맛같은 점심입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울퉁불퉁 고구마 속에 하얀 무 하나
고만고만 아이들 속에 키 큰 선생님 하나
선생님은 가끔씩 가짜라도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진짜든 가짜든 아이는 아이니까!
오늘은 신나게 고구마를 캤습니다.
사방천지 아이들 뿐이었습니다.
전부가 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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