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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함께 키우기

관계 조율하기


두 녀석이 다툽니다. 만난 지 한 학기나 지난 녀석들인데도 녀석들 마음속에 상대 친구에 대한 못마땅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입만 열었다 하면 서로 마음에 상처 내는 말만 합니다.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생님은 열심히 궁리를 합니다. 들으면서 계속 적당한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정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결코 정답은 생각 속에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입을 통해 서로에게 상처를 냈듯이 말과 거기에 적절한 행동을 보태 서로에게 다시 건네줘서 상처에 약을 바르듯 서로 어루만져 줘야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상처는 나기 쉬워도 아물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한 번에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계를 조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렁설렁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상처 난 곳이 곪기 시작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서로는 서로에게 거울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를 통해 자신을 본다는 말입니다. 말은 참 멋진데 실제 그 거울은 보려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요술거울이라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굴절된 자신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메아리처럼 내 목소리가 상대를 통해 다시 내게 돌아옵니다. 그 소리가 듣기 싫다면 내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그것이 메아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정말 깨달음이 있어야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지만 멋진 일을 해 내기 위해서는 참 많은 괴로움과 아픔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하려는 것은 이러한 괴로움과 아픔을 함께 경험하고 함께 넘어 서로가 깨닫는 일입니다. 선생님도 깨닫지 못했기에 그래서 더욱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 일입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아이들 이야기를 이야기 그대로 들어주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 마음속에 불만이 응어리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구인가 불만을 들어주고 함께 동감해주는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이야기를 해야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한 번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두 번, 세 번 들어줘야 합니다. 듣는 연습은 선생님에게도 매번 필요한 연습이기에 선생님도 기꺼이 맘을 내어 들어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듣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 언제까지 이렇게 들어주기만 할 거야... 이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지 몰라... 이 녀석에게 계속 불만만 쌓이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등등... 그래도 선생님은 계속 들어줍니다. 어떠한 방법을 직접 제시해 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은 체 아이들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기다리고 상대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볼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한 번이라도 얽히고설킨 관계매듭을 스스로 푼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두 번째, 세 번째 상황에서는 좀 더 쉽게 좀 더 기꺼이 관계매듭 속으로 스스로 다가감을 믿기 때문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참 희한합니다. 엉킨 것 같은데 잡아당기면 스르르 풀리기도 하고 풀린 줄 알고 보면 또 다시 한 곳이 엉켜 있습니다. 얽히고설키면서 풀어지는 과정을 계속 되풀이 하는 것 같습니다.

한 녀석씩 붙들고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두 녀석을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말로는 쉽게 해결이 됩니다. 하지만 말이 행동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한 번, 두 번의 행동들이 습관처럼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노력하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막상 노력에 들어간 아이들은 서로를 지켜보기만 합니다. 역시 잘 되지 않습니다.

한 녀석이 다가와 말합니다. 친구 녀석이 다른 친구에게 자기와 놀지 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둘의 관계에서 셋의 관계로 확대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봅니다.

“ 쟤가 별로 노력을 안 해요. ” “ 너도 그렇잖아 ”

“ 나랑 놀지 말라고 했잖아 ” “ 얘도 너 싫어 해. ”

칼로 무 자르듯 시원하게 해결되면 좋으련만 시원한 맛은커녕 더욱 어정쩡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둘의 관계가 전체의 관계에 이릅니다. 아이들이 둘 사이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합니다. 누가 더 잘못 했네~ 둘 다 잘못이네~ 친구들의 말에 두 녀석이 변명을 합니다. 한 녀석은 친구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모습이고 또 한 녀석은 친구들도 적대시하는 모습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는지도 참 중요합니다. 거칠게 표현하는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인정받기 힘듭니다. 결국 두 녀석 중 한 녀석은 오히려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더 잃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판정이 한 쪽으로 기웁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덜 받게 된 아이는 모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결국 미움은 모든 친구들에게 향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선생님으로서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거친 표현으로 오히려 인정을 잃은 녀석도 아쉽고 친구의 거친 말 뒤에 숨은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이들도 아쉽습니다. 선생님은 누구의 편도 아니지만 전체를 대변하기도 하고 약자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들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낍니다. 행동에 따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표현이 거친 녀석이 거친 표현으로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계속 잃지 않도록 친구가 지적하기 이전에 선생님이 선수를 칩니다. 그러면서 표현이 거친 녀석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살피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두 녀석이 둘 사이의 관계를 확대하지 않도록 아이들 간의 관계 나눔도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마음이 불편하여 피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불편하지 않으려면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자기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기 노력이 생길 수 있도록 선생님은 옆에서 도와줘야 할 몫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만 항상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항상 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이들이 떠나가기도 하고 스스로 물러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조율함에 있어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현재의 아이 모습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까닭 없는 결과가 없듯이 현재의 아이 모습이 있게 된 배경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이러한 배경을 군더더기 없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의 아이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이의 배경을 알기 위한 과정은 주로 학부모 상담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학부모 상담을 통해 아이가 자라온 과정을 알게 되고 또 그 과정 속에서 아이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함께 되짚어 봅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선생님은 학부모를 보다 잘 알게 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지만 부모로부터 좋은 것만을 배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모들도 아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항상 되돌아 봐야만 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제가 오늘보다 좋은 이유는 오늘에 살기 때문이고 희망찬 내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행복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