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 옥길동 언덕을 오릅니다.
옥길동 언덕에는 가로등이 없습니다.
서너 발자욱을 걷다가 뒤를 돌아 봅니다.
가로등 불빛 밑으로 조그마한 세상들이 보입니다.
이 밤을 끈질기게 잡고 있는
네모난 불빛들도 보입니다.
가로등 불빛이 보여 주는 세상은
그 작은 세상은
밝고 어둡지 않지만
몇발자국 가지 못해
다시 시들어 버리는 철 지난 꽃과, 꽃과 같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손가락으로 살짝 가리워지는
조그만 달 하나..
손가락보다도 작은 달이지만
옥길동 저 언덕 너머
겨울바람에 기침하는
작은 들꽃 하나 달빛에 물듭니다.
커졌다 작아졌다
달그림자 놀이
혼자서 하는 놀이입니다.
고무줄처럼 들쑥날쑥
쑥쑥 자라다가도
뾰로롱 작아져 버리는
달그림자 놀이입니다.
옥길동 회관입니다.
하늘이가 요란하게 짖어 댑니다.
바다도 덩달아 겅중겅중 뛰어 오릅니다.
회관문을 엽니다.
서늘한 복도에서 시큼한 냄새가 납니다.
"저녁에 누가 해묵은 김치를 먹었나?"
콧구멍이 실룩실룩
콧끝이 약간 시립니다.
몇발자국 가지 못해 온 몸이 꽁꽁 얼어 버립니다.
토끼장에..
작은 토끼장에..
꼬마가 죽어 있습니다.
토토녀석이
펄쩍펄쩍 뛰는 바람에
꼬마가 토토발에 몇번이고 채입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온 몸을 펴고 소리없이 누워있는
꼬마처럼..
의자를 가져 다가 앉습니다.
입을 토끼장 너머로 내밀고
꼬마는 그렇게 죽어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죽었을까?
아니야.. 배가 고파서 죽은것은 아닐텐데..
토토녀석이 꼬마녀석 밥을 자꾸 빼앗아 먹지만
그래도 토토녀석 몰래 살짝이 먹을 것을 주곤 했는데.
토토에게 묻습니다.
"꼬마가 왜 죽었니?"
"배가 고파서 죽었니?"
"토토 네가 괴롭혔니?"
놀란 토끼눈을 하고
토토녀석 겅중겅중 뛰기만 합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이미 딱딱해져 버린 꼬마의 다리를 잡고
토끼장에서 꼬마를 보냅니다.
할아버지 십자매 샘이가 있었습니다.
몸을 새장에 매달고 샘이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하얀이 토끼도 있었습니다.
한여름에 더위 속에 죽었습니다.
동물들을 사랑하지만
많은 동물들이 죽었습니다.
꼬마도 죽었습니다.
흰눈이 펑펑 오던날
'토끼의 결혼식' 동화책을 함께 읽고
하얀눈이 펑펑 오면은
눈구경을 하자던 꼬마가
매서운 바람만이 찾아드는
'부... 부... '무서운 바람만이 찾아드는
아무것도 없는 검은 밤에
꼬마는 죽었습니다.
꼬마야... 꼬마야..
꼬마에게 아무말도 할 수 없습니다.
꼬마야.. 꼬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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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
분식집을 찾아..
양배추를 얻기 위해 라면을 먹으며
당근 4개를 사기 위해 라면을 먹으며
그렇게 그렇게 신나게 달려 온 옥길동에
꼬마는 꼬마는 아무말도 없습니다.
꼬마야.. 꼬마야..
꼬마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꼬마는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