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태권 v를 완성했습니다.
짬을 이용하여 일주일 간 만든 태권 v
최초 머리가 만들어졌을 때 머리칼이 쭈삣 서더니
몸통이며 다리며 마치 미리 준비한 듯
준비물이 척척 손에 붙는 것이
어릴 적에 작은 본드를 발라가며 만들던 플라스틱 로봇이 생각납니다.
역시 로봇은 동심의 유기체인지
로봇 주위로 아이들이 옹기종기 장사진을 이룹니다.
아이들이 로봇이 움직이느냐고 묻습니다.
움직인다고 답합니다.
어떻게 움직이느냐고 묻습니다.
움직이고 싶다고 하면
선생님이 움직여 준다고 답합니다.
혼자서는 못 움직이느냐고 묻습니다.
선생님이 도와주기 때문에 혼자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답합니다.
리모컨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리모컨을 만들면 리모컨도 누르고 선생님이 또 움직여줘야 하기 때문에
더 복잡하다고 답합니다.
정말 혼자서는 못 움직이느냐고 묻습니다.
마치 혼자서도 움직인다고 말해 달라 애원하는 눈초리로.
할 수 없이 밤이 되면 혼자서 움직인다고 답합니다.
밤이 되면 와 봐야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문이 잠겨서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답을 하려다가
갑자기 태권v 다리가 휘청하는 바람에 입을 다뭅니다.
태권v는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로봇입니다.
정의가 아니면 절대 싸우지 않습니다.
또한 태권v는 강철로봇입니다.
웬만한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만든 태권v는 정의를 위해 싸우지도 강철로봇도 아닙니다.
싸우기는커녕 허수아비마냥 서 있기만 할 뿐 아니라
길이가 서로 다른 다리 탓에 한 쪽 벽에 의지해야만 비로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얼굴은 페인트 통이고 머리는 주워 온 작업용 모자이며
몸통은 등받이 없는 네모 의자에 팔 다리는 온통 페트병입니다.
움직이지도 혼자서 서 있지도 못하는 폐품투성이 로봇이지만
이마에는 삐뚤빼뚤 YMCA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분명 YMCA 로봇입니다.
그런데 참 요상합니다.
이 녀석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꼭 내 꼴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니.
→ 오랜만에 희망이의 일기장을 펼쳐듭니다.
‘사백 일흔 번째’ 에서 일기가 멈춰 선 지 벌써 2년 째 접어들었습니다.
그래도 요 놈의 일기를 쓸 때에는
뒤돌아보면 살아온 날들이 징검다리마냥 띄엄띄엄 놓여 있기라도 했는데
흔적을 잃은 지 2년이나 흐른 지금은
가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시작합니다.
예전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지금
먹은 나이만큼 만나는 아이들도 다양한 지금
그 아이들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잘 정돈된 서랍장마냥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