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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를 넘어

일요일 오후


느즈막히 일어났다.

오늘은 일요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남들은 한 겨울에도 찬 물로 샤워를 한다 하지만

난 한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찬 물로 샤워 하는 게 더 좋다 하지만

난 뜨거운 물로 샤워 하는 게 더 좋다.

찬물로 샤워하면 온 몸이 근질거리는 이유도 있다.

 

사서 한 번도 빨지 않은 운동화를 빤다.

아버지께서 잘못 알고 신고 나가신 이후로

신발이 엉망이 되었다.

그만큼 아버지 발이 고생을 한다는 증거다.

 

한 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는 방 문 앞에 신발을 널고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어린이 날 행사하느라 가지고 온 자전거를 타고

햇볕 속을 달린다.

지난 비에 채 마르지 않았던 자전거가

햇볕과 바람에 말끔해진다.

가다 보니 실내 체육관이다.

힘차게 밟던 패달을 멈추고

빙그르 원을 돌 듯 패달을 밟는다.

볕 좋은 날에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이 많다.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배 나온 아빠.

아들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엄마.

손자와 손을 잡고 걷는 할아버지.

돗자리 위에서 다리 모아 책을 읽는 이모.

가족이란 보기에도 참 좋다.

지난 비에 고개 내민 햇볕처럼.

 

그늘진 벤치에 앉는다.

몽실몽실 흰 구름이 파란 하늘과 참 잘 어울리는 하늘이다.

바람에 밀려 조금씩 실려 가는 구름 알갱이들이

허공에 붕붕 떠다닌다.

아님 꽃가루들이 날아 몽실 구름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고개 젖혀 올려다보는

하늘과 나 사이에

초록 잎들이 싱그럽다.

 

햇볕 아래 한참을 서성인다.

혼자 노는 것은

늘 재미없다.

늘 혼자 노는 나로서는 더더욱.

꼬르륵~

뱃고동 소리가 난다.

지글지글 맛있는 냄새가 난다.

‘ 밥 먹어야겠다! ’

 

사무실로 향한다.

할일 없는 노총각이

일요일이면 찾는 놀이터다.

오늘은

무슨 음식을 할까.

요즘 들어 음식 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다른 건 다해도 음식 하는 건 배우지 않겠다던

무식한 고집이 생각난다.

청소, 빨래, 설거지, 아이 키우기

어느 것 하나 싫은 구석 없이

다 하고 싶었지만

음식 하는 건 정말 싫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왠지 음식마저 하면 평생 혼자 살 것 같은

불길함을 느껴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왜 하냐구?

지금은 평생 혼자 살아도

뭐... 상관없다.

 

후라이팬에 유정란 세 개를 털어 넣고

따스한 햇볕 한 줌, 바람 한 조각 비벼서

간장에 살살 불길 달래가며

김치를 썰어 넣는다.

오늘은 맛있는 김치 볶음밥.

나를 위해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눈 감고 혼자 묵상하고 숟가락을 든다.

 

“ 감사히 먹겠습니다! ”

 

집에 갈 때

카네이션이나 한 아름 사가야겠다.

오늘은 참 볕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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