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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를 넘어

비가 온다.

배탈이 났다.

하루 종일 굶다가 저녁에 해물 찜을 배터지게 먹었더니

정말 배가 터지려는지 부글부글 난리가 났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부터 갔다.

아버지는 다리만 내어놓고 주무시고 계신다.

아무도 보지 않는 텔레비전만 혼자서 떠들고 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우울했다.

비 온다고 우울해질 나이는 아닌데...

풀씨 학교에 도착하니

허리보다 작은 녀석들이

반갑다고 웃음보를 터뜨린다.

이럴 때면 눈물이 핑 돈다.

반기는 녀석들을 가슴으로 안으며

홀아비 가슴으로 자식 키우는 아빠처럼

녀석들 웃음에 살짝 숨어도 본다.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를 켠다.

아이들이 하나 둘 기웃거리더니

슬금슬금 고양이마냥 문지방을 넘더니

폴짝 뛰어 무릎 위에 앉는다.

" 선생님, 일 해야 되는데? "

" 무슨 일? "

무슨 일이라...

갑자기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난감해진다.

" 나 오늘 손가락 다쳤어요. "

" 저런~ 아팠겠다. "

손가락 다친 녀석 뒤로

발가락 다친 녀석

팔뚝을 다친 녀석

다리를 다친 녀석

심지어 친구 때문에 가슴이 아픈 녀석까지

묵은 때 벗겨내듯

예전에 다쳤던 곳까지 드러내며

이구동성 아이들이 상처 찾기에 바쁘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하는 녀석 뒤로

슬그머니 다가가

볼에다 쪽~

뽀뽀를 하고 줄행랑을 놓는다.

돌아본 녀석이

통통한 볼 살을 만지작거리며

폴짝폴짝 뛰어 간다.

" 달봉이가 여기에 뽀뽀했다.! "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매일 매일 주인공임을 잊고 산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있어 절대 잊을 수 없다.

녀석들이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이런 녀석들이기에,

나는 하루라도 이 녀석들에게 소홀할 수 없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가 다 되어 간다.

이번 주만 책상에서 두 번을 졸았다.

공부하다 졸아 본 적은 많아도

일하다 졸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오늘은

오늘 할 일 내일 할 일

저만치 재껴두고

쓰고 싶은 글부터 썼다.

쓰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비가 온다.

빗방울 들이치는 소리가

아이들 소곤 데는 소리 같다.

오늘은

비 소리를 들으며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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