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옥길동에 손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무슨 일로..."
"밖이 너무 추워서요. 손만 좀 녹이고 갈께요."
"아, 예...그러세요"
"좀 나으신가요?"
"예, 훨씬 따뜻하네요"
"차 한잔 드릴까요?"
"예, 주시면 감사히 마실께요."
"어떤 차로..."
"따뜻하면 다 좋아요"
"아, 예..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
"녹차에요"
"예, 정말 고마워요"
"여기는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곳인데, 어떻게..."
"아, 예.. 길을 읽었어요. 걷다보니.. 길이 있는 줄 알고.."
"아, 예.."
"여긴 유치원인가 봐요?"
"예, 유치원이에요"
"의자도 조그맣고 책상도 조그맣고.. 참 귀엽네요"
"귀여운 아이들이 사는 곳이니까요"
"좀 둘러봐도 될까요?"
"예, 그러세요"
"여긴 굉장히 넓네요? 체육실인가 봐요?"
"예, 아이들이 몸놀이 하는 곳이에요."
"그런데, 벽에 왠 편지들이 이렇게 많이 붙어 있어요?"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이에요.
아이들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에게 쓴 편지도 많지요"
"예.. 편지를 보니 더 따뜻해 지는 것 같아요"
"여긴.. 유치원 교실인가 봐요?"
"예, 아이들의 손 때가 가득한 곳이지요"
"어머, 이건 누가 만든 거에요? 아이들이 직접 만든거에요?"
"예, 아이들이 밖에서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만든 거에요.
뭐 같으세요?"
"음.. 사슴? 아닌가?"
"잘 보세요. 잘 보시면 알 수 있어요"
"아! 곤충이네요? 그렇죠?"
"예, 메뚜기하고 여치를 만든 거에요. 아이들이 직접.."
"어쩜, 정말 살아있는 작품이네요.."
"선생님 방? 여긴 뭐하는 곳인가요?"
"아, 예..제가 사는 방이에요"
"아니, 그럼 여기서 사세요?"
"예..여기서 산지 3년째입니다."
"그럼..유치원 선생님?"
"예"
"남자분이 유치원 선생님을 하시네요."
"예,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낯선 일도 아니에요"
"혼자 사시면 부모님은 안 계신가 보죠?"
"아니요. 가까운 거리에 살고 계세요. 자주 찾아 뵙지는 못하지만.."
"그럼, 아직 결혼을 안 하셨겠네요?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예..."
"그렇군요..."
"차 잘 마셨어요"
"가시게요?"
"예, 이제 가 봐야죠.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아참, 여기 버스 정류장이 어디에요?"
"이 밑으로 쭉 내려 가시면 만나는 차도에 버스가 서기는 하는데...
집이 어디세요?"
"아, 그래요?. 그럼 거기서 버스를 타면 되겠네요"
"어디로 가시는데요?"
"좀 멀어요. 그럼 가 볼께요. 잘 쉬고 가요"
"예, 그럼 안녕히 가세요"
현관문을 잠그고 돌아섭니다.
손님이 두고 간 모자가 보입니다.
모자를 집어 들고 현관문을 엽니다.
쌩- 하고 겨울 바람 들이칩니다.
손에 들었던 모자를 떨어 뜨립니다.
소리없는 낙엽 한 장
바람에 사뿐 나릅니다.
손님이 다녀 가셨습니다.
낙엽 한 장 남겨 놓고
옥길동 회관을 한 바퀴 돌아
겨울 바람에 실려 가셨습니다.
다음 손님을 기다립니다.
새벽 녘 문 두드리는 소리에
부스스 눈 비비고 일어나
고개만 빼꼼 내밀고 쳐다보는 현관에
옥길동 하얀 세상
아침보다 밝은 세상
하얀 눈을 소복히 맞고 찾아오실
다음 손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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