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 아이들?
아이들이 술을 마신다?
햇님 가는 시간에는 아이들을 만나고
달님 가는 시간에는 아버지를 만납니다.
하루가 한 세상인 하루살이처럼
밤이 되어 어른이 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거울이 될 아버지들을 만났습니다.
"밖에서 만나니 분위기가 색 다르네요"
색다른 분위기에서 술자리가 시작됩니다.
"추억 만들기 진행하시느라 힘드셨지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아이구, 제가 뭐 힘든게 있나요? 선생님이 더 수고하셨지요"
오고가는 술잔 속에 숨은 이야기들이 건네집니다.
"기차여행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담배를 못피는 것이었죠"
"그래도 저는 숨어서 술 한 잔 했는데..."
"술을 드셨다구요?"
"예, 아이들 자는 틈에 다른 아버지랑 몰래..."
"음, 그러셨군요"
"홀짝 홀짝 술 마시며 이야기했죠. 학생 때 수학여행가는 기분이더라구요"
"오호, 안 되겠군요. 다음부터는 아이들에게 단단히 일러야겠네요.
아빠들 술 드시면 당장 알려 달라구요."
"저는 다른건 다 참겠는데, 정동진에서 조개구이 포장마차 앞을 지날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거 참, 소주 생각이 간절해져서..."
"우리 아이들, 참 대견했어요. 비 오는 길을 계속 걷는데, 싫다 소리 한 번 안하고.."
"아마 엄마, 아빠랑만 같이 간 여행이면 그렇게 걷지 못했을꺼에요"
"맞아요. 아마 그랬을꺼에요"
"아니, 그런데... 선생님 술 좀 드세요"
"아..예..저는 내일 수업이 있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
아빠들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수염 난 엄마처럼 아빠들도 아이들 이야기가 안주입니다.
누가 좋은 아버지 모임 아니랄까봐!
"그러나 저러나 선생님 12월에 아빠랑 캠프 가야죠?"
"가야죠!"
"그럼, 어서 결정해야죠. 어디로 갈 것인지..."
"예,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는 좀 힘들 것 같네요.."
"아, 그러면 다음 모임 날짜 잡죠..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나죠"
한 달에 두 번 모이기도 힘들어 하시던 아버지들이
매주 한 번씩 모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희안한 일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친구 만나기도 힘든데, 이렇게 아버지들을 자주
만나니 너무 편하고 좋네요."
"예, 저도 그래요"
"그럼, 우리 이제 술자리 자주 갖는 건가요?"
"아뇨? 술 자리는 일년에 한 두 번 있으면 많이 있는 것일걸요?"
"우리 선생님, 너무 FM인 것 같다!"
스스로 FM이 되시는 아버님들.
아버님들이 진짜 FM 아빠들입니다.
두꺼운 손 마주잡고
두 눈 질끈 감고 묵상문을 읽고
아이들을 위한 약속도 또랑또랑 읽고
어색한 목소리 굵은 목소리로
아이들 부르는 노래도 부르면서
우리네 아버지들은 그렇게 달려 오셨습니다.
좋은 아빠가 아니라면서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면서
좋은 아빠들은 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술 대신 땀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기, 주인 아줌마! 우리 사진 좀 찍어 주세요"
"예, 알았어요. 그럼 다같이 치즈 하세요!"
"와-이!"
누가 YMCA 아빠들 아니랄까봐
누가 좋은 아빠들 아니랄까봐
누가 커다란 아이들 아니랄까봐
아빠들은 아이들처럼 똑 같은 모양입니다.
옥길동 언덕을 오릅니다.
자정이 지났습니다.
별 총총 박힌 하늘이 유난히 가까워 보입니다.
아빠 별, 엄마 별, 아이 별
수두룩 박힌 하늘입니다.
그런 하늘아래 살고 있음이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