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안에서 하는 놀이.
오랜 만에 쉬는 일요일!
현이 아빠는 금요일부터 이번 일요일을 기다렸다. 한 달 만에 드디어 실컷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니까. 토요일 저녁에는 현이를 일찍 재우고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 두 편을 빌려 봤다. 꿀맛 같은 영화 감상이었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빌려 본다 해도 이 날만큼은 재미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 내일은 쉬는 일요일이니까^^
그런데, 일요일 단잠의 꿈은 일요일 아침부터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바로 현이 녀석 때문이었다. 현이 아빠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현이도 아빠가 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 아빠! 아빠! 일어나~ 일어~ 나!"
" 현아~ 아빠 좀 더 자면 안 될까? 아빠 어제 늦게 잤거든. "
" 왜 늦게 잤는데? "
현이의 묻는 말에 현이 아빠는 잠결에도 잠시 고민을 했다. 영화를 보느라 늦게 잤다고 하면 이 녀석이 트집을 잡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거짓말을 만들어냈다간 평상시 거짓말을 잘 못하는 현이 아빠로서는 괜한 트집꺼리를 또 만들 수 있는 노릇이었다.
" 으응~ 왜냐하면... "
생각도 잠시 현이 아빠는 다시 잠 속에 빠져 든다. 꿈속에서 현이가 아빠 배에 올라타서 말타기를 한다.
" 아빠~ 아빠~ 어서 일어나! 일어나라구! "
꿈인지 생시인지 현이는 아빠 배에 올라타서 쿵덕 쿵덕 떡방아를 찧는다.
" 현아! 엄마한테 놀아달라고 그래. 아빠는 조금 이따가 놀아줄게. "
" 엄마 지금 집에 없단 말이야! "
엄마가 엄마는 말에 현이 아빠는 번쩍 정신이 든다.
' 뭐라구? 엄마 어디 갔는데? "
부시시 눈을 뜬 현이 아빠는 아빠 배 위에 올라앉은 현이를 바라본다.
" 엄마~ 친구 만나러 간다고 나갔어. 아침밥도 아빠가 차려줄꺼라고 했는데? "
" 뭐? "
잠결에 물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이럴수가~ 황금 같은 내 일요일에 이 마누라가 이렇게 협조를 안 하다니...
" 현아~ 저기 아빠 핸드폰 좀 가져다 줄래? "
현이 아빠는 현이가 가지고 온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 꾸욱~ 꾸욱~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 당신이야! 지금 어디야! 왜 나한테 말도 안하고 나갔어. 오랜만에 쉬는 일요일이라고 했잖아.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거야! "
잠이 덜 깬 목소리지만 현이 아빠는 당당하고 씩씩했다. 하지만 핸드폰 저쪽에서 들려오는 현이 엄마 목소리는 이런 현이 아빠의 당당함을 한 번에 꺾어 버렸다.
" 무슨 소리야! 어제 저녁에 그러라고 그래 놓구선! 당신 어제 영화 볼 때 내가 얘기했잖아. 오늘 친구들 만나러 간다구 현이 좀 봐 달라구! 기억 안 나? "
현이 아빠는 기억을 더듬는다. 어제 저녁 본 영화는 생생히 떠오르는데 현이 엄마가 했던 말은 왜 생각이 안 나는걸까! "
" 내가 언제 그랬어! "
현이 아빠는 기억을 반 쯤 떠 올리다 휙~ 덮어 버린다. 아뿔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떠오르는 기억. 영화 속 주인공이 공중 돌기를 하며 다섯 명도 넘는 적을 쓰러뜨릴 때 현이 엄마의 목소리가 합성된 것처럼 들려온 것이다.
" 여보~ 나 내일 아침 일찍 요 아래 동네 사는 친구 좀 만나야 되는데 현이 아침밥 좀 챙겨줄 수 있어? "
" 응~ 그래. 그래. 점심밥도 챙겨줄게. "
" 정말이지? "
" 응~ 그래. 그래. "
분명 현이 엄마 목소리다. 아니, 분명 현이 아빠 목소리다.
" 당신 정말 그럴 거야! "
핸드폰으로 들여오는 현이 엄마 목소리에 현이 아빠는 어제 기억으로 부터 순식간에 돌아온다.
" 알았어. 알았어. 끊을게. "
황급히 전화를 끊은 현이 아빠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아빠 앞에 포개 앉은 현이는 아빠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 현아! 너 배고파? "
" 아니~ 배는 안 고픈데 심심해. "
" 그래! 아빠도 배 안 고프다. 그럼 우리 아침 건너뛸까? "
현이 아빠는 아침밥을 건너뛸 수도 있겠구나 싶어 현이 마음을 살짝 건드려본다.
" 응! 대신 나랑 놀아줘! "
' 놀아줘? "
차라리 아침밥을 준비 하는 게 더 나을 뻔 했다. 하지만 이미 쏟아 부은 말을 담을 수는 없었다.
" 뭐하고 놀고 싶은데? "
" 으~ 응! 저번에 한 놀이! "
" 저번에 무슨 놀이 했는데. "
" 이불 썰매타기 놀이! "
이불 썰매타기 놀이
현이 아빠의 머리 속에 도깨비처럼 머리에 뿔이 돋은 현이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 현아! 저번에 아빠가 그 놀이 한 다음에 엄마한테 혼났어. 그리고 아빠가 이불 빨래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
" 그럼. 나도 빨래 같이 하면 되잖아. "
현이의 말에 아빠는 두 수 앞을 내다본다.
' 그렇지. 이 녀석하고 놀고 나서 이불 빨래를 하면 그만큼 또 시간을 벌 수 있겠군. 흐흐 '
"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자~ 그럼 이불 썰매타기 놀이 한 번 해 볼까! "
현이 아빠는 개선장군처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놀이 천사의 말
: 이불 썰매타기를 하기에 가장 좋은 이불은 이불장에 있는 이불 중 가장 더러우면서도 질긴 이불입니다. 하얗고 깨끗한 이불을 선택했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될 테니까요. 아참, 그리고 이불보다는 요가 더 안성맞춤입니다. 이불보다는 요가 더 튼튼하니까요.
" 자! 타라! "
현이 아빠는 커다란 요를 꺼내 펼쳐 들고 현이에게 손짓한다. 현이는 썰매 탈 생각에 벌써부터 벌어진 입을 주체하지 못한 체 이불에 올라앉는다.
현이 아빠는 요 양 쪽 끝을 한 손으로 모아 어깨에 짊어진 후 앞으로 끌기 시작한다. 순간 허리에서 삐그덕~ 하는 소리가 들린다.
" 아이구~ 루돌프 고장 났다. "
현이 아빠는 요를 끌다말고 요를 내 던지고 허리를 빙글 빙글 돌린다.
" 아빠~ 뭐해! 어서 끌어줘. "
" 루돌프 고장 났어. 잠깐만 기다려! 고쳐야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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