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없잖아! "
현이가 뿔이 난 얼굴로 아빠에게 다가와 아빠 머리를 발로 찬다. 순간 아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 벌떡 일어선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속을 어지럽힌다.
' 피곤해서 쉬고 싶은데도 저랑 놀아주는데 아빠가 저를 좀 놀렸다고 해서 아빠 머리를 발로 차? 버릇없는 녀석은 딱 질색이야! 따끔하게 야단쳐야 돼! '
' 어휴~ 내가 현이를 골려준 것이나 마찬가지니 현이가 화가 날 만도 하지. 그냥 참자! '
아빠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생각 속에 잠겨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현이는 옆에서 뿔이 난 얼굴로 아빠를 노려보고 있다. 현이는 그렇다 치고 사실 아빠도 화가 나지 않을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이 마냥 화를 내는 것은 현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현이 아빠는 잘 알고 있다.
' 내가 좀 쉬어 보려는 요령으로 일부러 현이를 왔다갔다하게 했으니 현이가 화날 만도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아빠 머리를 발로 차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냐. 현이가 화난 것은 풀어주되 잘못된 행동은 하지 않도록 해 줘야 돼! '
고개를 들어 가만히 현이를 바라본다. 현이는 여전히 화가 난 얼굴이다.
" 현이, 화났어? " " 왜 없는데 있다고 그래! "
" 없는데 있다고 해서 화났구나! " " 일부러 그랬지! 거북이 하기 싫어서 그랬지! "
현이 말에 아빠 가슴이 뜨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직히 말하면 왠지 현이에게 기선을 빼앗길 것만 같다. 갑자기 아빠가 능청스러워진다.
" 아냐! 분명히 있었어. 그런데 그 녀석이 현이가 오는 것을 보고 자꾸만 도망가는 거야. 아빠에게는 들키면서 현이에게는 들키기를 싫어하는 것을 봐서는 독수리가 아빠보다는 현이가 더 무서운가 보다. "
현이가 아무 말이 없다.
" 현이 눈에는 안 보여서 화났어? " " 응 "
" 아마도 독수리가 현이를 무서워하나봐. 아빠가 볼 때도 현이 화난 모습은 정말 무서운 걸? "
" 내가 정말 무서워? "
" 정말 무서워! 독수리가 아니라 공룡이 와도 아마 무서워서 도망갈 걸? "
" 정말? "
현이 표정을 보니 화가 많이 풀린 모양이다.
" 현아! 거북이가 허리가 아프니까 조금 쉬었다 하자! " " 알았어! "
" 우리.... 엄마가 만들어 놓은 시원한 매실 주스 마실까? " " 응! 내가 꺼내올게 "
냉장고에서 매실주스를 꺼내 들고 온 현이는 매실주스를 내려놓자마자 다시 부엌으로 달려간다.
" 어디 가? " " 컵 가지러~ "
아빠 꺼, 현이 꺼 컵 2개를 가지고 온 현이.
" 현이 컵에는 아빠가 따라줄게. " " 아빠 컵에는 현이가 따라줄게. "
시원한 매실주스가 목 줄기를 타고 넘어간다.
" 캬~ 시원하다. 현이도 시원하지. " " 응~ 시원해! "
" 현아! " " 응? " " 아까 화 많이 났었어? " " 응! "
" 아빠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 " 응! "
" 그렇구나. 그런데... 아까 아빠도 화났었다? " " 왜? "
" 현이가 화났다고 아빠 머리를 발로 차서! " " 아빠가 거짓말 했으니까 그랬지. "
" 아빠도 현이가 화난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아빠 머리를 발로 차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야. 그러면 현이가 왜 화났는지 알기 전에 아빠도 화가 나거든. 화났을 때는 왜 화났는지 화나게 한 사람에게 그 사람이 잘 알도록 말해주는 게 중요해! 아빠도 화가 났지만 현이 머리를 발로 차지 않고 지금은 말로 이야기하잖아. 현이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 "
" 알았어요. 아빠! "
현이가 갑자기 존댓말을 쓴다. 녀석이 존댓말을 쓸 때는 무엇인가 잘못을 깨달았다는 표현임을 아빠는 잘 알고 있다.
" 현이가 아빠 마음을 잘 알아주니 아빠가 기분 좋은 걸? "
" 아빠도 화 내지 않고 말로 잘 해줘서 나도 기분 좋아! "
" 그래? 그럼, 우리 놀이 계속 할까? " " 좋아! "
놀이 천사
: 이때, 현이 엄마로 부터 전화가 왔어요. 현이 아빠가 현이 엄마에게 투덜거렸을까요? 결코 아니에요. 현이 아빠는 기분 좋은 큰 소리로 이렇게 당당히 말했답니다.
" 현이랑 재미있게 놀고 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고 천천히 놀고 오셔! "
" 정말? 당신 최고야!!
때르르르릉~~~
뭐가 그리 신났는지 연신 볼을 흔들어대는 자명종 시계에 손을 얹는다. 부스스한 눈을 부비며 현이 아빠가 일어난다.
“ 어휴~~ 한 시간만 더 자면 소원이 없겠다. ”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돌아 누워있는 현이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 그럼 더 자면 되잖아... 오늘부터 연휴인데... ”
“ 아~ 그렇지~ 오늘부터 연휴지? 야호~ 난 왜 이런 걸 까먹나 몰라~ 자기야~ 고마워~ ” 하며 현이 아빠가 현이 엄마에게 달려든다.
“ 아이~ 왜 이래? 징그럽게~ 잠이나 더 자~ ”
“ 그래~ 그래야지~ 음~ 달콤한 잠~ ”
현이 아빠는 가장 편한 자세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본다.
‘ 이 자세도 아니고~ 이 자세도 아니고······. 아! 이 자세다. 아~ 포근해~ ’
다시 잠이 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5분도 채 안 된 것 같은데 이번에는 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아빠! 놀이동산 안 가? ”
대답을 할까! 말까! 현이 아빠는 잠결에도 고민을 한다.
“ 아빠! 오늘 놀이동산 간다고 했잖아! ”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빠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 아빠! 치사해! 거짓말만 하고! 그럼 약속은 왜 해! ”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잠 때가 잔뜩 묻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 현아! 아직 아침이잖아! 잠 좀 더 자고 가자! 알았지?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 너머로부터 현이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 어느 세월에 가려고 그래! 지금 벌써 10시야! ”
“ 뭐? 10시라고! ”
현이 아빠는 고개만 삐죽 내밀고서 더듬더듬 손을 뻗어 자명종 시계를 잡는다.
“ 뭐야! 왜 벌써 10시야! 이래도 되는 거야! ”
현이 아빠는 투정부리는 아이처럼 이불을 뒤집어쓴다.
“ 아~"
현이 아빠의 한숨 소리가 천정까지 닿았다 내려온다.
“ 아빠~ 일어~ 나~ ”
“ 알았어. 알았어. 일어날게. 너는 가서 갈 준비나 해. ”
“ 준비 다 했단 말이야! ”
“ 뭐? 벌써? ”
현이 아빠가 이불을 가슴까지 내린다.
“ 뭐야! 옷도 안 입었잖아. ”
“ 옷은 금방 입을 수 있어. ”
“ 알았다. 아빠도 얼른 씻을 게. ”
현이 아빠는 천천히 이불 속에서 나와 연거푸 하품을 하며 힘없게 기지개를 켠다.
“ 이상하다~ 자명종을 금방 끈 것 같은데 언제 10시가 되었냐? ”
현이 엄마는 열심히 도시락을 준비 중이다.
그런 현이 엄마를 힐끔 쳐다본 후 곧장 화장실로 가는 현이 아빠!
“ 거~ 신문 보지 말고 바로 씻고 나와야 돼. 도시락도 거의 다 되었단 말이야. ”
“ 알았어~ ”
현이 아빠는 양치질을 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언제부터인가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한 흰 머리가 이제는 제법 눈에 띈다. 뿐 만인가! 눈가에 자리 잡은 주름은 원래 거기가 제 자리인 양 이제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어휴~ 내 팔자야~ ”
짱알거리는 현이 소리, 휴일 아침에는 정말 듣기 싫은 현이 엄마 보채는 소리를 두 번이나 더 듣고서야 현이 아빠는 신발을 신는다.
“ 여자도 아닌데 뭐가 이리 오래 걸려? ”
“ 알았어~ 그만 좀 징징거려~ 당신 목소리가 머리 속까지 왱왱거려~ ”
“ 뭐? ”
“ 자! 가자~ ”
현이 아빠는 힘차게 일어서며 현관문을 열었다. 순간 얼굴로 쏟아지는 햇볕에 오만가지 인상이 만들어진다.
“ 날씨는 왜 이리 좋은 거야? ”
휴일이라 그런지 도로에 나와 있는 차 들이 많다. 현이 아빠는 능숙한 운전솜씨로 이리저리 차선을 바꿔보지만 서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차는 거북이걸음을 친다.
“ 뭔 놈의 차들이 이렇게 많이 나왔데? 휴일에는 집에서들 쉬지~ ”
“ 당신이 일찍 준비했으면 이러지 않았을 것 아냐! ”
말마다 빈정상하는 말만 골라하는 아내가 오늘따라 더 밉상이다.
“ 어휴~ 그러기에~ 그냥 집에서 쉬자니까~”
“ 아빠~ 놀이공원 멀었어? ”
“ 멀었어~ 하루 종일 가야 돼. ”
“ 치~ ”
놀이 천사
: 이러한 경험,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있었었죠? 이럴 때에는 서로에 대해 손톱만큼도 배려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죠. 게다가 마치 어떻게 하면 한 번 더 싸워볼까 트집 잡을 궁리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런 날은 이상하게 잘 되던 일도 안 됩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인데 마음부터 잘 못 먹고 있으니 잘 될 턱이 있나요! 모름지기 이럴 때는 숨쉬기 크게 몇 번하고 마음을 비운 후에 마음을 새로 고쳐먹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먼저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 아빠! 언제 도착해? ” “ 아직 멀었어! ” “ ............... ”
현이는 가만히 있기에 좀이 쑤신다. 엉덩이도 들썩들썩 해 보고 창문도 열었다 닫았다 해 보았지만 뾰족하게 재미있는 일이 없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이 옆에 앉은 엄마는 감은 눈을 뜰 생각을 안 한다.
“ 엄마! ” “ ........... ” “ 엄마! ” “ ............ ”
두 번이나 불렀건만 엄마는 대답이 없다.
“ 엄마!! ”
“ 아~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
엄마 목소리에 운전을 하던 아빠마저 흠찟 놀란다.
“ 왜 소리를 질러! 살살 말하지. 간 떨어질 뻔 했네~ ”
“ 왜 부르는데 왜! ” “ 심심해~ ”
“ 심심할 때도 있는 거야. ” “ 그래도 심심해~ ”
“ 그럼 잠이나 자든가~ ” “ 잠자기 싫어! ”
“ 그럼 엄마보고 어떻게 하라고!! ”
“ 당신은 왜 매사에 그렇게 신경질적이야? ”
현이 아빠가 현이 엄마에게 한소리 한다. 마치 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 당신은 왜 그래! 당신이 일찍 서둘렀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냐! ”
“ 아~ 왜 지난 일을 가지고 그래! ”
“ 지난 일은...... 불과 두 시간도 안 된 일인데...... ”
현이는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낀다. 서로 으르렁 거리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숨을 쉴 수가 없다.
“ 가슴이 답답해! ” “ 그럼, 창문을 열든가! ”
“ 그래도 가슴이 답답해! ” “ 그럼, 윗옷을 벗든가! ”
“ 옷 벗기 싫어! ” “ 어쩌라고!! ”
결국 또 화를 내는 엄마다. 현이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화내고 소리 지르는 엄마가 밉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운전만 하는 아빠도 밉다! 미운 엄마, 아빠와 놀이동산 가는 게 싫다!
“ 나 놀이동산 안 갈래! ” “ 정말? 그럼 집에 간다? ”
“ 놀이동산 가기 싫어! ” “ 정말이지? 나중에 뭐라고 하면 엄마한테 혼난다? ”
“ 가기 싫어! ”
“ 너, 정말 가기 싫지? 분명히 가기 싫다고 했지? 현이 아빠! 당신도 들었지? ”
“ 으이그~ 정말 애랑 똑 같이 논다. 똑같이 놀아! ”
“ 현아! 아빠 정말 차 돌린다? ” “ 가기 싫어! ”
차가 크게 한 바퀴 돌더니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되돌아가는 길은 왜 이리도 빠른지, 한참 걸려 엉금엉금 달려온 길을 순식간에 스쳐간다.
“ 가기 싫어! ”
모기 만해진 현이 목소리가 떨고 있다. 떨어뜨린 고개 아래로 뚝뚝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놀이 천사
: 아니~ 이럴 수가! 이래도 되나요? 아빠와 엄마 신경전에 불쌍한 현이만 눈물을 흘리네요.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놀이 천사 가슴이 미어집니다. 엄마, 아빠 다툼에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이렇게 상처 받는 일이 많습니다. 작고 여린 아이들이라고 감정적으로 나무라고 함부로 몰아 붙여서는 안 됩니다. 결국 자기가 뿌린 씨의 열매는 자기가 거두게 되는 것을...... 아이와 놀아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와 놀아주면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면 차라리 놀아주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잠자리에서 늦게 일어난 아빠에게 화가 난 엄마 그리고 이런 엄마가 곱게 보이지 않는 아빠! 엄마, 아빠의 불편한 관계에서 시작된 다툼이 결국 현이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한 번이라도 더 현이 마음을 헤아려보았다면, 엄마, 아빠가 한 번만이라도 서로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더라면 현이가 상처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음....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현이를 위해 이 놀이 천사가 힘을 좀 발휘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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