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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우리들만의 소풍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습니다.

모기를 쫓느라

벌레들을 쫓느라

오른쪽 다리에서는

선풍기가 휑하니 돌아갑니다.

흰둥이 컹 컹 짖는 소리가

회관 가득 울려 납니다.

찐득이는

빙그레 웃는 모양으로

귀만 쫑긋대고

어수선한 사무실 책상위에는

시꺼먼 깔대기 무리가

졸고있는 형광등 불빛에 일광욕을 즐깁니다.

깔대기.. 왜 깔대기라고 할까?

사전에도 없는 단어입니다.

언제인가 통일반 선생님이

한저녁 하루살이를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깔대기라..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우리들만의 소풍을 다녀 왔습니다.

느낌나누기를 마치고

다시금 둥그렇게 마주 앉습니다.

베란다를 열면 정면에 마주 선 낮은 산..

저 산을 뭐라 불러야 할까?

옥길동에 오래 사신 할아버지께 여쭈어 봐도

이름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냥 작은 산이라 하십니다.

베낭메고 가방메고 물통들고 앉아

산에서 지켜야 할 약속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산의 주인은 산에서 사는 생명들이다.

나무며, 풀이며, 새며, 곤충들이며..

우리들은 잠시 놀러가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그러니까 주인이 싫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약속을 하고 교실을 나섭니다.

다른 반 녀석들은

벌써 현관앞에 줄줄이 사탕처럼

옹기종기 모 여있습니다.

동생 반 엄마 선생님으로 오신

질경이반 어머님도 계십니다.

질경이반은 천천히 가도록 하자..

동생들이 출발하고....

민들레반이 가고 나서도 한참이나 있다가..

먼저 간 녀석들이 흘린 먼지가

다시 수북히 쌓일때까지

질경이반은 출발할 줄 모릅니다.

두 녀석이 다툽니다.

한 녀석이 울음을 터뜨립니다.

왜 우니? ..

제가 나랑 돗자리 같이 안 앉는데요.

누구 돗자리인데?

제꺼요.

너는 돗자리 없니?

네..

왜 같이 안 앉는다는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섰던 한 녀석이 거듭니다.

자기랑 안 논다고 우리를 때려요..

왜 안 노는데?

때려서요.

응?

안노는게 먼저일까? 때린게 먼저일까?

친구들 다툼에 관심이 없는 녀석들은

옥길동 언덕에 철퍼덕 앉아서

듣도 보도 못한 손가락 놀이를 하거나

돌멩이를 주워다가 바닥에 무엇을 그리는지

연신 선을 긋고 있고..

쳐다보기는 하지만 끼지도 못하는 녀석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라보기만 합니다..

출발한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생긴 다툼입니다.

선생님이 보니까 돗자리를 안 가지고 온 친구들이 많아..

하지만 돗자리를 모두 깔면

질경이반 친구들 모두가 앉을 만큼 커질것 같아..

지금 네가 울지 않아도

네가 앉을 자리는 있을 것 같은데?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아 다시금 출발합니다.

채 다섯발자욱도 가지않아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왜 그러니?

제가..제가..발로 찼어요..

왜?

자기랑 놀지 않는다구요..

돗자리를 같이 안 앉는다고 울던 녀석이 발길질을 하였습니다.

친구를 왜 찼니?

나랑 안 논다고 하잖아요..

네가 발로 차면 제가 너랑 놀아주니?

아니요?

그럼?

화가나서 발로 찼어요.

너는 제랑 놀고 싶은거지?

네..

그럼 놀아달라고 부탁해야지.. 발로 차면 안되지..

발로 차는 친구랑

함께 놀이를 하고 싶은 친구는 없어..

네가 정말 저 친구랑 놀고 싶고

돗자리도 함께 앉고 싶으면

저 친구 마음에 그러고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지..

그것은 발로 차는것처럼 힘으로 되는것이 아냐..

.... 어떻게 할래?

사과할께요..

발길질에 맞아 울던 녀석을 부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단다..

......

할 이야기가 있지?

제가 나랑 안 논다고 했어요..

그 이야기가 아닌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말이 있는것 같은데..

미안해...

괜찮아...

이럴때면 드는 생각인데

이 녀석들..

정말 미안한 것인지.. 정말 괜찮은 것인지..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들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의례적으로 잘못하면 사과하고

사과하면 받아주고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할텐데..

하긴..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쫑알쫑알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모습이

정말로 미안하고 정말로 괜찮은것 같기도 합니다.

나들이때는 약수터까지만 갔었는데

오늘은 철탑이 보이는 꼭데기까지 가기로 합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길도 잘 보이지 않고

풀들이 너무 많이 자라

산을 오르기가 영 쉽지 않습니다.

한 걸음에 한 녀석씩..

가시에 찔렸다고 손바닥을 들여다 보는 통에

산행은 거북이 마냥 가는둥 마는둥합니다.

숲에있는 길 옆에는 가시가 있는 풀들이 많아..

왜냐하면 더 이상 안으로 들어 오지 말라고

풀들이 나무들이 말하는 거야..

우리가 잘못한 것이니까 조금만 참아...

우리는 초대받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대로 가는 것이니까 풀들이 더 놀랄걸?

뱀딸기들이 군데 군데 빨간 얼굴을 내밀고

아이들 머리위로 자리공이 넘실넘실 거립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라면

벌써 10번도 더 주저앉았을 녀석들이지만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가는 길은

투덜투덜 불평은 많아도 주저앉는 녀석들은 없습니다.

자... 다왔다.. 저기 철탑이 보이지? 저기에서 밥먹자..

선생님.. 산에서 야호하는거 나쁘죠?

음.. 산에서 야호하는 것은

사람들이 기분좋다고 소리지르는 것이지

산이 기분좋으라고 소리 지르는 것은 아니지. ..

새들도 깜짝 놀라고 곤충들고 나무들도 놀랄걸?

산에 있는 주인들에게 허락도 없이 왔는데

소리까지 지르면 안되지...

여기서 점심을 먹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꺼내고

조그마한 엉덩이들이 털썩 털썩 앉습니다.

묵상하자.. 눈을 감아라...

오늘은 산으로 왔습니다.

허락도 없이 와서 죄송합니다.

조용히 먹고 조용히 보고 조용히 내려가겠습니다.

자리를 빌려줘서 감사합니다.

자.. 애들아.. 밥가를 부르는데 어떻게 불러야 할까?

조용히요..

그래..조용히..조용히 밥가를 부르자..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가지듯이

밥은 서로 서로 나누어 먹는 것.. 정말로!!

감사히 먹겠습니다. 친구들들아 맛있게 먹자..

쉬고 있는 나무들이 깰 새라 조용 조용히..

알을 품는 새들이 놀랄 새라 조용 조용히..

선생님. .개미들이 올라와요.. 쫓아줘요..

여기는 개미들 집이야..

개미들 집에서 밥을 먹어서 미안하다고 해야지..

주인을 쫓으면 안되지..

히히.. 그럼 개미들하고

선분식(나누어 먹기)하면 되겠네요...

그래.. 그러면 개미들도 좋아하겠네?

김밥을 싸 온 녀석.. 과일을 싸 온 녀석..

초밥을 싸 온 녀석..

서로 서로 나누어 먹으며

개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점심을 맞습니다.

선생님.. 화장실..

친구들 없는 저기가서 해라..

아니..아니.. 똥인데..

그래? 휴지는 있니?

아니요?

자.. 여기.. 저기 풀숲에 가서 해라..

선생님이 여기는 화장실이라고 할테니까..

그리고 다 하고 난 다음에는 꼭 흙으로 덮어야 돼..

알았니?

네..

산을 내려옵니다.

선생님이 앞에서 훠-이 하면

아이들이 뒤에서 휘-이 합니다.

혹시나 혹시나 뱀이 놀랄까 봐..

놀라서 다리라도 콱 물까 봐..

우리가 간다고 잠깐만 비켜달라고 말하며 갑니다.

회관에 도착합니다.

땀범벅이 된 아이들..

얼굴마져 발갛게 익었습니다.

전부 웃통벗고 와라..

왜요?

등목하게..

등목이 뭐야?

너는 가서 널어놓은 수건 좀 가지고 와라..

네..

조그마한 등판에 물을 끼얹을 때 마다

까르르 웃는 녀석들..

아..차가..아..차가.... 히히히..

할아버지 마냥.. 어...시원하다 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안하겠다고 하던 녀석도

친구들 웃음소리를 듣고

너도나도 웃통을 벗습니다.

재미붙은 녀석들은 다시 해 달라고 졸라댑니다.

선생님은 등목 안 해요?

너희들이 해 줄래?

네..

싫다..

왜요?

너희들.. 분명히 바지에 물을 넣을게 뻔하다..

잘할께요..

싫다..

왜요?

바지 젖기 싫다..

에이...

여자 선생님이 있어서 못 한다고 말하면

뭔가 말이 복잡해 질것 같아 그냥 둘러댑니다..

교실에 눕습니다.

팔을 벌리고 다리를 벌리고..

창문으로 살금 살금 작은 바람이 불어 옵니다.

들어누운 녀석들을 한 녀석 한 녀석 바라봅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씽긋 웃는 녀석..

어색해 하는 녀석..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색해 하는 녀석들 눈을 보면

선생님 눈도 어색해 집니다..

어? 내 눈이 어색해 지다니..

내가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시간이 부족했던가?

아니면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 하는 시간이 부족했던가? 어색해 하는 녀석들과 마주치면

살그머니 배에 앉아 봅니다.

씨-익.. 웃어주는 녀석들 눈빛에

선생님의 어색함이 달아납니다.

한 녀석 한 녀석..

볼을 어루만져 주면

빙그레 웃어 주는 것이 선생님 마음에도 좋습니다.

자.. 이제 집에 가자...

가방을 메고 베낭을 베고 물통을 든 녀석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부르며 안아 줍니다.

오늘... 재미있었니?

선생님도 재미있었다..

오늘은 우리들만의 소풍을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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