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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를 넘어

일곱 살 희은이의 일기


" 질경이반 선생님~ ! "

 

뒤통수에서 누가 부를라치면

아직도 한 번씩 뒤돌아보는 이름!

이제는 호랑이 반도 질경이 반도 아닌

달봉이 선생님이 되었지만

아이들 목소리는 나를 항상 뒤돌아보게 합니다.

 

반이 없으니

호칭도 참 여러 가지 입니다.

처음에는 소속도 없는 그냥 아저씨에서

몸 수업 달랑 한 번에 몸 수업 아저씨가 되었다가

눈 깜짝할 사이 슬쩍 숨긴 손수건에

마술사라 불립니다.

이제는 언니들, 형아들 하는 모양으로

 

" 달봉아~ "

 

하고 동네 강아지 부르듯이 부르고 다닙니다.

 

" 이 녀석아~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

 

달봉이 입에서 선생님 소리가 나와야지

선생님 소리를 붙여주는 녀석들.

이런 녀석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반마다 교실마다 한 다스 씩 쏟아져 나옵니다.

 

반은 없지만

반 없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녀석들의 손길과 눈길을 잡아주니

이 또한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화장실 한 번 갈라치면

기나긴 복도 한 번 지나갈라치면

아는 체 하는 놈

간섭하는 놈

슬쩍 시비거는 놈

별의별 녀석들을 다 만납니다.

그만큼 아이들 세상에 푹 빠져 살아 행복합니다.

 

작지만 그래도 사내라고

시커먼 녀석들 그득한 질경이 반에

하나라면 섭섭할까

둘 밖에 없는 여자 친구들 중의 한 녀석인 희은이가

은근슬쩍 눈 흘기며 건네주는 편지 한 장.

두 손 모아 펼치니

푸른 바다 반짝 별 하늘에

꾹꾹 눌러 쓴 녀석의 정성이 쏟아집니다.

선생님은 이럴 때 목소리가 없어집니다.

소리를 낼 수가 없습니다.

자칫 녀석의 마음에 부정이라도 탈까봐

선생님은 소리 죽여 행복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건네 준 아이들의 편지만도

선생님이 걸어온 길만큼 수북합니다.

그 길에 아이들의 작은 사랑이 그득하여

뒤돌아보는 길은 항상 봄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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