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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샘의 성장통

할까와 말까


컴퓨터 앞에 앉아 찐뜩이 얼굴을 가만히 봅니다.

둥그런 두 눈이 감길 때마다 기억자 눈이 희안합니다.

고양이는 왜 항상 웃는 얼굴일까?

눈을 감고 졸고 있는 녀석을 보노라면

커다랗게 미소짓는 아이들을 보는것 같습니다.

진흙 투성이인 옷을 입고 앉아 즐거운 자판여행을 떠납니다.

뜨거운 라면을 먹을 때면 후루룩 소리가 납니다.

후루룩 후루룩 후루룩

라면먹는 소리에 흠뻑 젖은 희망이

늦은 저녁 옥길동 회관의 문을 열었습니다.

비가 오는 저녁이면

옥길동 회관은 땅 속으로 푹 꺼진듯 안락한 느낌을 줍니다.

컹 컹 짖는 하늘이와 흰둥이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 온 빗 물이 콧잔등에 닿을 때

아차.. 오늘 이 녀석들 밥을 주지 못했구나..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받으며 선생님을 기다렸을 녀석들입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밥을 주러 나가면 옷이 다 젖을텐데..

오늘 주지말고 내일 줄까..

아니야.. 하루종일 굻었을 녀석들 생각하면 옷 젖는게 대수인가..

옷이 젖더라도 밥을 주자..

밥을 줄까.. 말까..

할까.. 말까..

주방에 가서 남은 밥을 찾습니다.

밥은 있는데 반찬이 없습니다.

이를 어쩐다? 함께 줄 반찬이 없네?

가게에 가서 참치 통조림이라도 사올까?

에이... 비도 오는데 그냥 맨밥 주자..

아니야.. 개 들은 맨밥은 안 먹는데..

그럼 그냥 내일 주자.. 아니야.. 배고플텐데..

가게에 갈까.. 말까..

할까.. 말까..

한 손에 우산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서

가게에 가서 참치 통조림 2개를 삽니다.

남은 밥에 참치를 넣고 주걱으로 비비는데

밥이 차서 시원찮게 비벼집니다.

더운 물을 약간 타서 밥알들을 졸리게 한 다음

여러번 다시 비벼 줍니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개들이 있는곳으로 갑니다.

진흙놀이를 한 아이들처럼 온 몸이 진흙투성입니다.

반가워서 달려드는 녀석들 통에

선생님의 바지에 녀석들의 발자욱이 난자합니다.

가만히 보니 하늘이 녀석 목줄이 울타리에 걸려 대롱대롱합니다.

어떻게 된거야..가만히 있어 봐..

우산마져 팽개치고 쪼그리고 앉아 목 줄을 푸는데 영 풀리지 않습니다.

한참이나 씨름하다 겨우 풀고보니 등짝이 시원합니다.

녀석들의 발자욱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벗으며

그래도 마음 한편은 흐뭇합니다.

아침입니다.

컹컹짖는 개 소리에 옷을 껴 입고 현관문에 나섭니다.

볍씨학교 검은라면이 비를 맞고 컹 컹 짖습니다.

검은라면은 선생님만 부르는 볍씨학교 개 이름입니다.

온 몸의 털이 라면처럼 북실거리는게 온통 검은색입니다.

제자리에서 짖기만 하는 것을 보니 목줄이 꼬인 모양입니다.

에구.. 날씨도 구질구질한데.. 좀 있다 나가자..

볍씨학교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개들은 겨울비도 그냥 앉아서 맞는다더라..

하지만 영 발길이 돌려지지 않습니다.

나갈까..말까..

할까.. 말까..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나섭니다.

줄을 푸는데 연신 혓바닥을 내름거리는 통에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온 몸에 라면사리가 꼬이는 듯한 느낌입니다.

어제부터 이놈의 목 줄은 왜 이리도 꼬이는지..

겨우 풀어 볍씨학교 문고리에 걸어 둡니다.

비는 이제 피하겠구나..

현관문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니

하늘이와 흰둥이가 가관입니다.

흠뻑 젖은 얼굴로 쳐다보는데

눈을 마주치기가 미안할 만큼 처량해 보입니다.

저 녀석들 집을 다시 만들어 주어야 되겠다..

비 그치면 만들어 줄테니 오늘은 그냥 참아라..

아니야.. 비가 오면 어때.. 생각났을 때 하자..

아니야.. 비 맞으면 또 감기 걸린다.. 그냥 내일 하자..

할까.. 말까..

손바닥만 빨간 작업 장갑을 끼고

빨간 모자 하나 눌러쓰고 나섭니다.

대충 비만 피하면 되겠지.. 생각했던 것이

창문도 만들고 지붕도 씌우고 현관도 만들고

개 집을 만드는지 소꼽놀이를 하는지

뚝딱 뚝딱 대 못을 박아가며 만든것이

벌써 어스름 저녁이 됩니다.

거인신발처럼 커다래진 진흙 신발을 신고

녀석들의 새 집을 바라봅니다.

와우.. 멋있지는 않지만 근사하다.

솜씨는 없어 보이지만 재미있어 보입니다.

집 구경을 하느라 이리 저리 분주한 녀석들을 바라보며

수돗가로 향합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찐뜩이 얼굴을 가만히 봅니다.

둥그런 두 눈이 감길 때마다 기억자 눈이 희안합니다.

찐득이의 전용 화장실에 올라서더니

이리 저리 흙을 고릅니다. 작은 것? 큰 것?

가만히 지켜봅니다. 엉덩이를 내리고 앉아 힘을 주더니

다시금 흙을 고르고 다시 앉습니다.

다시 엉덩이에 힘을 주다 말고 자리를 옮겨 다시 힘을 줍니다.

까다롭게 장소를 선택하는 녀석입니다.

엉덩이가 커지는가 싶더니

방귀소리가 나며 누런 똥이 나옵니다.

고양이 방귀냄새도 무척이나 지독합니다.

이리 저리 흙을 파서 똥을 묻는데

역시 고양이는 영물은 영물인가 봅니다.

깨끗이 해결하고 나온 녀석의 표정에는

흐뭇함이 묻어 있습니다.

너는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머리가 띵하다 이놈아.. 이놈의 냄새야..

할까.. 말까..

하루에 몇 번이나 고민을 할까?

내일 할 일, 앞으로 닥쳐올 일 들 생각에

하루에 몇 번이나 가슴이 텁텁할까?

오늘을 살면서 어제일에 힘들어하고

오늘을 살면서 내일일에 부담스럽고

과연 오늘은 오늘일까...

새 집에서 집뜰이에 여념이 없는

하늘이와 흰둥이를 바라보며

기억자 눈에 둥그런 미소를 지으며 졸고 있는

찐득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재에 가장 충실한 녀석들에게

한 수 배움을 얻습니다.

선택은 즐거운 것입니다.

선택하는 즐거움에 힘들어 해 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순간의 여유로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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