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달봉샘의 성장통

세상 밖으로 1. 풀벌레 소리가 요란합니다. 점점이 들려오는 개 울음소리 방 문턱을 몰래 넘다 아뿔사! 발 밑에 숨어있던 밤이 꿀꺽 삼켜 버립니다. 사방이 어둠입니다. 할로겐 불빛에 어둠이 뒤엉키는 모습을 봅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한 연수 마지막 날 노트 위를 바쁘게 기어 다니는 깨알만한 벌레를 따라 하얀 종이위에 지난 시간을 그려봅니다. 해지고 남은 여운을 따라 잠시 들렀던 야트막한 산 길에서 줄무늬 모기떼를 만났습니다. 인심좋은 선생님들 덕에 오랫만에 포식을 한 모기들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였습니다. 책 읽고 이야기하고 밥 먹고 또 이야기하고 걷고 움직이는 시간보다 말하고 듣는 시간이 많은 앉은뱅이 선생님들. 펜을 쥔 손 그림자 뒤로 졸졸 따라 다니는 검은 글씨마져 앉은뱅이 모양입니다. 밤이 오는줄 모르고 밤이.. 더보기
껍데기를 벗고서 풀벌레 소리가 요란합니다. 점점이 들려오는 개 울음소리 방 문턱을 몰래 넘다 아뿔사! 발 밑에 숨어있던 밤이 꿀꺽 삼켜 버립니다. 사방이 어둠입니다. 할로겐 불빛에 어둠이 뒤엉키는 모습을 봅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한 연수 마지막 날 노트 위를 바쁘게 기어 다니는 깨알만한 벌레를 따라 하얀 종이위에 지난 시간을 그려봅니다. 해지고 남은 여운을 따라 잠시 들렀던 야트막한 산 길에서 줄무늬 모기떼를 만났습니다. 인심좋은 선생님들 덕에 오랫만에 포식을 한 모기들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였습니다. 책 읽고 이야기하고 밥 먹고 또 이야기하고 걷고 움직이는 시간보다 말하고 듣는 시간이 많은 앉은뱅이 선생님들. 펜을 쥔 손 그림자 뒤로 졸졸 따라 다니는 검은 글씨마져 앉은뱅이 모양입니다. 밤이 오는줄 모르고 밤이.. 더보기
오늘은 일요일 또 다시 눈을 떴습니다. 아침입니다. 오랫만에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몸은 마음만큼 게으르지 않나 봅니다. 멍하니 누워 천정을 바라봅니다. 손만 내밀면 닿을 듯 '하늘이 이렇듯 낮으면 좋겠다.' 뭉게뭉게 구름이 모여 비라도 내릴라치면 이리저리 흩어놓아 맑은 하늘 만들고 몹시도 비가 그리운 날에는 군데군데 흩어진 구름모아 비구름을 만들고. 햇볕이 따가운 날에는 햇님 얼굴에 물수건이라도 걸어놓고 몹시도 추운 날에는 따사로운 햇볕에 손을 쬐고. '그래도 하늘은 높이높이 있는게 좋겠다.' 내 사랑하는 외로움 달아 하늘 높이 띄워보고 풍선처럼 두둥실 하늘 위를 걸어도 보고 휘휘 젖어 손 닿는 마음보다 더 큰 마음이 좋겠다 싶습니다. 꿈틀꿈틀 지렁이 마냥 이불 속을 돌아다닙니다. 한 두번 용을 쓰면 벽에 쿵 부딪히는.. 더보기
쉬는 날에 눈을 떴습니다. 높다란 천정 넓은 창 집이 아닙니다. 1학기 마지막 축구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의 아버지들과 다리가 휘청거리도록 축구를 하고 터벅터벅 걸어 온 사무실 세수하고 발 닦고 피곤하여 잠시 눈을 붙인것이 벌써 11시가 되었습니다. 부시시한 머리로 거울 앞에 섭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 참으로 편안합니다. 거울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납니다. 옥길동 회관에서 살던 생각이 납니다. 넓다란 벽에 붙은 하얀 칠판을 봅니다. 빽빽히 들어선 행사며 일정들이 파리떼처럼 앉아 있습니다. 그 중에 큼지막하게 써진 빨간 글씨 하나 제헌절! '오늘이 제헌절이구나!' 아침 11시부터 시작된 학부모 상담 축구 시간을 생각하여 1시간 여유를 두었지만 시간에 맞춰 진행하는 상담이 아니라 축구 시간이 다 되어서야 상담을 마쳤습니.. 더보기
인 연 1. 오늘은 태권도 마지막 띠 따는 날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반팔옷에 반바지에 손 때, 흙 때, 놀이 때 잔뜩 묻은 띠를 메고 오던 녀석들이 오늘은 하얀 태권도복을 입고 버스에서 내립니다.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때를 지우기 위해 팔팔 끓는 물에 삶아 빤 태권도복이 쭈글쭈글 할머니 얼굴로 나타납니다. "선생님! 태권도 띠 따는 날, 몇 밤 남았어요?" "오늘이다. 이녀석아!" "히히..." "선생님! 태권도 띠 따는 날, 몇 밤 남았어요?" "오늘이래두 이녀석아!" "히히..." 물어도 물어도 자꾸만 묻고 싶어 지나 봅니다. 들어도 들어도 자꾸만 듣고 싶어 지나 봅니다. 선생님 마음에 손바닥만한 아쉬움이 생기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연신 태권도 띠를 매만집니다. 오후에는 아이들과 몸 터를 청소합.. 더보기
나무는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현관 앞 조그만 의자에 앉아. 구멍 숭숭 뚫린 신발 위로 발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체중에 눌려 켁켁 숨막히는 허벅지 위로 김치 자욱 벌건 반바지를 봅니다. 아이들 마냥 흥얼거리며 밥을 먹다보면 아이들 마냥 팔꿈치에도 바지에도 밥을 먹이는 선생님. 잦은 비 잠시 쉬는 사이 콧등에 오르는 바람타고 제 모양에 웃습니다. 오늘따라 아이들이 늦습니다. 빗길에 버스도 엉금엉금 비님 내리는 길에 재촉하면 이-놈합니다. 신발을 고쳐 신고 비탈진 마당에 내립니다. 촉촉한 비에 나무가 숨을 쉽니다. 비옷입은 아이들마냥 빗 속에 우뚝서서 내려주는 만큼 받아 안는 나무입니다. 나무는 여름이면 옷을 입습니다. 하나라도 더 벗으려 하는 여름에 하나라도 더 옷을 입는 나무입니다. 사람 좋으라 그늘을 만드는 것은.. 더보기
이야기 이야기 1. "선생님! 달봉이 이야기 해 줘요! 월요일이잖아요!" 월요일이면 달봉이 이야기를 합니다. 달봉이같은 선생님의 황당무계한 이야기. 하루 하루 기다림이 있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선생님의 사랑 가득한 이야기. "선생님! 비 와요! 만득이 이야기 해 줘요!" 비가 오면 만득이 이야기를 합니다. 장난꾸러기 심술꾸러기 도깨비들을 만나는 요상하고 괴상한 만득이 이야기. 비가 오면 나타나는 괴상망칙한 도깨비들. 투둑 투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탄성을 지르는 아이들입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이야기 보따리가 떨어집니다. "선생님! 그림 그려왔어요. 그림 동화 해 줘요!"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오면 뒤죽박죽 그림을 섞어 그림 동화를 들려줍니다. 그림 속 친구들과 나누는 즉석대화입니다. "히히히... 헤헤헤" 아이들의.. 더보기
선생님의 선생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나의 필요에 의해. 아이들과의 시간은 내가 필요로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나의 필요에 의해. 아이들과의 시간은 잊고자 하는 기억을 멈추게 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나의 필요에 의해. 아이들과의 시간은 행복하지 못한 나 자신을 잊기에도 충분한 도구였습니다.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무런 필요로 없이. 하루 하루 더해지는 짐같은 시간들에 오히려 나 자신이 도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기에...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아이들마냥 행복한 것 같았기에... 그런데! 아이들은 필요에 의해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잊기 위해 선생님을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삶.. 더보기
아버지와 오징어 밤 공기가 시원합니다. 반바지에 슬리퍼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검은 하늘 넓은 하늘 그 하늘아래 시야를 막아 선 커다란 건물들이 우뚝 서 있습니다. 빽빽히 들어 선 집 들과 건물들이 만들어 준 길을 따라 미로 속 생쥐마냥 숨통이 트이는 곳으로 걷습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아버지께서 오시지 않습니다. 막노동을 하시는 아버지. 방금 전 전화통화를 할 때만 해도 지하철 계단에 앉아 계시다던 아버지. 발 길은 저절로 지하철이 있는 차도로 향합니다. 계단을 내려 갑니다. 아저씨 한 분이 지하철 난간에 누워 계십니다. "설마 아버지는 아니시겠지..." 술 취한 아저씨 한 분이 누워 계십니다. 어느 계단에도 아버지는 계시지 않습니다. "혹시 길이 엇갈렸나?"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합니다.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 더보기
옥길동 나들이 길 나들이를 갑니다. 가방을 메고서. 가방 안에는 맛있는 도시락이 있습니다. 오늘은 나들이 길에 점심을 먹습니다. 소풍을 가듯이 견학을 가듯이. 오늘은 다른 길로 가 보기로 합니다. 밭길을 따라 구불탕 구불탕. 걸음마다 놀란 개구리 폴딱폴딱 도망갑니다. 절로 나오는 노래. "개울가에 개구리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은행나무 숲에 섭니다. 숲이라 하기에는 작고 작지만 가운데만 폭- 쉼터가 있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너희들 이 숲이 얼마나 예쁜 줄 아니? 여름에는 초록 잎으로 하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이 되면 온통 노란 세상이란다. 그뿐 인줄 아니? 겨울이 올 때쯤이면 노랗게 깔린 은행침대에서 폭신폭신 놀 수도 있거든. 그래서 선생님은 여기에다 선생님의 마음을 심을 꺼야. 은행나무처럼 예쁘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