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화장지는 왜 하얀 색이에요?"
아이들 이야기를 듣던 중에 한 녀석이 묻습니다.
"글쎄?"
"하얀 색 페인트를 칠한거 아니에요?"
다른 녀석이 대답합니다.
"페인트를 칠했으면 코 풀 때 코에 묻을꺼 아니야.
똥 닦을 때는 똥구멍에 묻을꺼구..."
"그럼, 하얀 나무가 있는거 아니에요?"
"하얀나무? 글쎄? 그럴까?... 화장지는 나무로 만드니까...
음..선생님도 모르겠는걸? 선생님이 오늘 화장지 만드는 회사에
전화해서 물어볼께.."
"화장지 만드는 회사 전화번호 알아요?"
"114로 전화 걸어서 물어보면 되지.. 114는 전화번호를 모를 때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는 곳이거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듭니다.
사무실 의자에 앉습니다.
책상위에 전부터 놓여있던 화장지가 보입니다.
네모난 종이상자에 들어있는 화장지.
뒤집어 바닥을 보니 회사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화장지 만드는 회사지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YMCA 어린이 유치원인데요
저는 유치원 선생님이구요.
저희 반 녀석이 궁금해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화장지가 대부분 왜 하얀 색인가요?"
"네?"
전화받은 아가씨가 당황했던지 깜짝 놀랍니다.
놀란 목소리 뒤에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저희 반 녀석이 궁금해 해서 그러는데요.
저는 그 이유를 모르거든요"
"저기.. 저도 잘 모르는데...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옆 사람에게 묻는 소리가 들립니다.
묻는 소리는 있는데 대답소리는 없습니다.
"여기는 아시는 분이 없으신데요..."
"그럼, 혹시 공장에 전화를 걸어보면 아시는 분이 계실까요?"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한번 해 보세요. 혹 아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테니까요"
"예,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행히 회사 전화번호 밑에는 공장 전화번호도 있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화장지 만드는 공장이지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YMCA 어린이 유치원인데요
저는 유치원 선생님이구요.
저희 반 녀석이 궁금해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화장지가 대부분 왜 하얀 색인가요?"
"네? 큰소리로 말씀 해 주세요.
지게차 소리때문에 잘 들리지 않아요"
"아- 예, 그러니까 여기는 YMCA 어린이 유치원인데요
저는 유치원 선생님이구요.
저희 반 녀석이 궁금해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화장지가 대부분 왜 하얀 색인가요?"
"네?"
또다시 놀람과 웃음이 함께 하는 목소리.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다른 분께 물어 보구요"
소근소근 목소리.
뭐 그런걸 묻는냐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여기에는 아시는 분이 안 계신데요.
제가 소비자 상담실 전화번호 알려 드릴테니
그쪽으로 한 번 해 보세요"
"예, 그럼,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세번 째 전화를 합니다.
"여보세요? 거기 화장지 소비자 상담실이죠?
안녕하세요. 여기는 YMCA 어린이 유치원인데요
저는 유치원 선생님이구요.
저희 반 녀석이 궁금해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화장지가 대부분 왜 하얀 색인가요?"
"잠시만요. 담당자 분 바꿔 드릴께요"
세번의 전화로
화장지가 왜 하얀 색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화장지는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우드칩(나무조각)과
하얀색 표백제를 섞어서 만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장지가 더 하얄수록 좋아하기 때문에
하얀 표백제를 잔뜩 넣고 만듭니다.
그것을 펄프라고 하지요"
"아- 그렇군요. 그럼, 표백제를 넣지 않으면
화장지는 무슨 색깔이 되는 건가요?"
"그건 흑설탕과 백설탕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검은 휴지가 나온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
"아- 네,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볍씨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 코를 잘 푸는 편인데 많이 푸는 날에는
코 밑에 물집이 생겨요. 아마도 그 표백제 때문인 것 같아요"
또 한 분이 말씀하십니다.
"도시 사람들 똥은 거름으로도 못 쓴데요.
독성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고도 하데요.
아마도 화장지 탓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옛날에는 화장지라 하지 않고 똥종이라고 했는데
부드럽고 하얀 종이가 나오면서 화장지라 하게 되었지요.
왜 좋은 우리말을 놓고 화장지라 하는지..."
"아, 그럼 코 푸는 화장지는 코종이라 하면 되겠네요"
"뭐..그렇다 할 수 있겠네요"
사람을 생각한다 만든 것이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에까지 해를 주고 있는 현실.
자연의 일부인 사람의 몸에 좋은 것은
자연에도 좋아야 하는데
사람의 눈에만 사람의 겉느낌에만 좋게 만들다 보니
몸에도 해롭고 자연에도 해로움을 잊게 되었나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의 눈에도 표백제가 뿌려졌나 봅니다.
내일 아침이면
아이들과 화장지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아니 화장지가 아닌 똥종이, 코종이 이야기를 하며
하얀 화장지일수록 마음을 속이는 화장지임을 이야기 하겠지요.
아이가 던진 작은 물음 안에
잘못 사는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부끄러워 하며
이야기를 하겠지요.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