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일곱 살 녀석들
한 입 두 입 쫑알 쫑알 날개짓 예쁘다가
모가지 쭈욱 빼며 일단 한 번 고개 젓는 그 날!
"걸레 좀 갖다 줄래?"
"싫어요. 선생님이 가져다 하세요"
"쟤랑 짝 하는게 좋겠다"
"싫어요. 나는 짝 안 할꺼에요"
"너희들은 고구마 순을 뜯는게 좋겠다"
"싫어요. 우리도 고구마 캘 꺼에요"
"정리하자!"
"싫어요. 더 놀꺼에요"
배실배실 웃음이 납니다.
'드디어 이 놈들이 반항을 하는구나
하지만 선생님 손 바닥 안이다. 이놈들아!'
"걸레 좀 갖다 줄래?"
"싫어요. 선생님이 가져다 하세요"
"왜 선생님이 해야 하는데?"
"선생님이니까요"
"선생님이라서 해야하니? 그건 좀 이상한데?"
"그럼, 물 쏟은 애보고 가져 오라고 하세요"
"물 쏟은 녀석은 물통 씻으러 갔는데? 네가 도와주면 안돼?"
"제가 안 쏟았는데 제가 왜 걸레를 가져와요?"
"그래서 도와달라고 하는거잖아. 도와 줄 마음이 없는거지? 네 마음에?"
"............."
"설마 친구를 도와주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겠지?"
"싫어요!"
"그래? 싫으면 할 수 없지. 싫은 것을 하는 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거든.
하지만, 네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도와주면
네 친구는 네 마음을 기억 해 줄꺼야.
그리고, 나중에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친구가 틀림없이 도와줄 것이고.
그것이 서로 돕기거든. 마음에서 마음으로하는.
그럼.. 다른 친구에게 도와 달라고 해야겠다.
누구.. 걸레 좀 가져다 줄 사람!"
"제가 가져 올께요!"
"싫다면서"
"아니요. 좋아졌어요"
후다닥 뛰어 가는 녀석의 씰룩이는 엉덩이가 예쁩니다.
"쟤랑 짝 하는게 좋겠다"
"싫어요. 나는 짝 안 할꺼에요"
"짝이 없으면 안 되는 놀이인데?"
"짝하고 싶은 친구 없어요"
"그럼..놀이를 할 수 없겠네. 짝이 없으니"
"혼자 하면 안 되요?"
"짝이 꼭 있어야 하는 놀이거든.
그럼 너는 짝이 없으니 저기가서 앉아서 구경해라.
놀이가 끝날 때까지"
놀이가 한창입니다.
"앉아있던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옵니다.
"저도 할래요!"
"너는 짝이 없어서 안돼!"
"쟤랑 하면 되잖아요"
"쟤도 이제는 다른 짝이 있어서 너랑 할 수 없어"
"나도 하고 싶단 말이에요"
"아까도 하기 싫어서 안한 것 아니잖아.
짝 하기 싫어서 그런거지"
"짝하고 싶단 말이에요"
"짝하기 싫다가 갑자기 왜 짝이 하고 싶어졌어?
"놀고 싶어서요"
"짝하고 노는 것을 보니까 재미있지?
혼자 노는 것 보다는 둘이 노는 것이 더 재미있거든.
그런데 넌 짝이 없으니 어쩌니? 못 놀겠다"
"선생님이 짝 해주면 되잖아요"
"난 짝하기 싫어하는 친구랑은 짝 안 할껀데."
"짝하고 싶다구요"
"정말? 왜?"
"둘이 노는 것이 더 재미있으니까"
"정말? 음...알았어.그럼 선생님이 짝 해 줄게.
하지만 그 마음은 잘 간직해 둬. 나중에도 꼭 필요한 마음이니까. 알았지?"
"네..."
청소를 하다말고 놀이를 하다말고
한 녀석과 한 선생님이 긴 이야기를 나눕니다.
놀이를 하던 중에도 청소를 하던 중에도
이야기는 기다리는 법이 없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일은
선생님이 시켜서 하게 되는 일은
이제는 아무런 재미가 없습니다.
드디어 그 날이 왔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활을 만들어 가는 그 날이.
어른들 흉내만 내다가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들.
살금 살금
어른들 모르게 소리없이 크다가
갑자기 한 뼘만큼 불쑥 자라는 아이들.
아이들의 이런 모습에 당황하지 마세요.
키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듯이
마음이 자라는 것은 더욱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키도 알지 못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더더욱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놈이, 이제는 선생님한테 대드네?"가 아니라
"이놈이 이제는 이만큼이나 자랐구나" 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일곱 살 어린아이입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사랑으로
자란 만큼 더욱 넓게 안아 주어야 할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선생님, 아기스포츠단 이름 바꿔 주세요.
아기도 아닌데 왜 아기라고 그래요?
'아기'자를 '어린이'로 바꿔 주세요. 당장!"
아기스포츠단 이라고 써 있는 등판을 내밀며
입을 삐죽하게 내민 녀석이 콧구멍을 씰룩이며 다가옵니다.
"당장은 안돼!"
"왜요? 왜 안되요?"
오늘도 아이들과 길고 긴 이야기를 합니다.
다섯 살 꽃다지반 아이들하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아기스포츠단!
이름은 정말 바꿔야 하겠습니다.
좋은 이름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