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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몸 놀이 연구소

몸 놀이 선생님의 독백

몸 놀이 선생님의 독백.

학기초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던 수영(물놀이)수업이 오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의 수영장을 마련할 때까지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아무 수영장이면 될 것을
수영 강사에게 맡기면 될 것을
구태여 돈과 시간들여 가며 발품을 팔았던 것은
몸놀이에 대한 나름의 고집스런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동이라면 어렸을 때 부터 이력이 날 정도로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운동에 대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이렇게 몸놀이 선생님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몸놀이를 고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라인 강사라면 인라인 잘 타는 법만 가르치면 됩니다. 축구 강사라면 축구 잘 하는 법만 가르치면 됩니다. 수영 강사라면 수영만 잘 하게 가르치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작은 아이들의 몸 선생이라 평생 아이들의 재산이 되고 삶의 거울이 되어 줄 제 몸과 다른 이의 몸을 존중해야 함을 스스로 알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몸과 소통하고 몸을 통해 배우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의 몸 그릇을 만드는 일입니다. 배움은 평생 죽을 때까지 하는 일이기에 배움을 담을 그릇을 만드는 일을 허투루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성급하게 돌아가다 보니 조기 교육 바람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교사도 학부모도 매순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이 바람에 휩쓸리기 일쑤입니다.
그렇다 보니 별 괴상망측한 현상을 종종 접합니다.
아이들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탑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왜 타는지를 얘기하는데
인라인은 그렇게 타는 것이 아니라고 멋들어진 자세를 취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인라인 스케이트 강사에게 스케이트 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아이입니다.
아이들과 축구를 합니다.
축구를 왜 하고 싶은지 묻고 있는데 축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친구들을 재치고 멋지게 드리블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축구 강사에게 축구를 배우고 있는 아이입니다.
아이들과 수영을 합니다.
물에서 하고 싶은 놀이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하는데 수영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며 멋지게 자유형을 하고 물살을 지치는 아이가 있습니다. 수영 강사에게 수영을 배우는 아이입니다.
한글이 왜 한글이고 우리 글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이야기를 하는데 한글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라고 '가 나 다 라. . . .' 옆에서 줄줄이 외고 있는 아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아이들은 이제 겨우 만 5세입니다.

겉모습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인라인 스케이트 잘 타는 법 배우는 게 잘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공 잘 차고 수영 영법 배우는 게 잘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그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것이고 이른 것으로 인해 바탕을 만드는 일이 뒤엉켜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좋은 것 아닌가 할 수도 있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인라인 스케이트 선수를 만들 생각이면 지금부터 해도 됩니다. 축구 선수, 수영 선수를 만들 생각이면 지금부터 해도 됩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조금만 더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일곱 살은 일곱 살을 충분히 사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하고 공 차는 법, 수영 영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고요? 아이들의 욕구를 제대로 읽은 것이 맞을까요? 아이들의 그 욕구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혹시 곰곰히 들여다 보셨나요?
아이들이 초코렛을 먹고 싶어 하고 사탕을 먹고 싶어 한다고 덥썩 사 주지 않듯이 몸을 통해 먹는 배움도 그래야 합니다.

집이 아닌데 매일 가는 곳은 학교입니다.
그곳에서 특정한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곳은 학교입니다. 아이들의 지금만이 아니라 내일과 미래를 함께 생각한다면 그곳은 분명 아이들의 삶의 학교입니다.
저는 이런 학교의 선생님이라 믿기에 그 직분에 걸맞게 아이들의 그릇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학부모님께서는 조금만 천천히 가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을 학교 끝나고 학원에서 또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진은 제게 늘 제 역할을 돌아보게 만드는 우리 아이들의 웃음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의 이런 웃음을 늘 지켜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