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입니다.
약통을 준비하긴 했지만
아이들 감기약도 없고 대일밴드도 부족한 것 같고
혹시나 머리 아플 아빠들을 위해 두통약도 있어야 하겠고.
하지만 포장 그대로 들고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약 상자를 준비합니다.
비가 옵니다.
행사에 대한 전화를 몇 통이나 받습니다.
"물론, 갑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기차여행 꼭 갑니다.
다시금 준비하긴 아빠들이 너무 바쁩니다.
다시금 기다리긴 아이들의 목이 너무 깁니다.
동동 발을 구릅니다.
성민이 아버님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달려오신 아버님을 가쁜 숨으로 맞이하며
열차에 오릅니다.
"다 오셨습니다. 기차여행! 이제 출발합니다!"
저녁 11시!
열차 한 칸에 아이들만 있습니다.
열차 한 칸에 아빠들만 있습니다.
열차 한 칸에 행복한 선생님이 둘입니다.
태어나서 기차를 처음 타 본다는 안식이.
선생님도 처음입니다.
이렇게 많은 아빠들과 이렇게 많은 아이들과
한 칸 모두 반가운 얼굴로 가득 찬 기차를 타는 것
처음입니다.
버스에서, 운동장에서, 실내 체육관에서, 캠프장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강에서 갯벌에서
별의 별 장소에 다 서 보았지만
기차 차량 프로그램은 처음입니다.
심장소리 들리지 않을 만큼 좋아하기는 처음입니다.
우리 모두 다같이 인사를- 안녕하세요!
우리 모두 다같이 뽀뽀를- 쪽 쪽
우리 모두 다같이 고함을- 야! 야!
우리 모두 다같이 박수를- 짝! 짝!
우리 모두 다같이 사랑해- 사랑해!!(하트)
잘 하고 못 하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차 안에서 큰 소리로 노래부르고
기차 안에서 마음껏 장난도 하고
기차 안에서 다 함께 빵도 먹고 쥬스도 먹고
이리보고 저리봐도 아는 얼굴 즐거운 얼굴입니다.
살그머니 다가 온 한결 아버지의 작은 목소리.
"이제 재워야 하지 않을까요?"
자정이 넘어 1시에 다 되어 가는데
아이들 놀이는 끝이 없습니다.
"자! 얘들아, 이제는 자야지. 그래야 내일 또 신나게 놀지"
복도가 조용합니다.
'거 참, 녀석들. 신기하기도 하지. 한 마디에 저렇게 조용해 지니...'
의자에 앉아서도 속닥속닥 깔깔깔
웃음이 그치지 않는 몇 몇 너석.
한결이가 형아처럼 껴듭니다.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나지. 어서 자야지!"
풋- 웃음이 납니다.
기차는 어둠 속을 달립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끄떡 끄떡 절구질을 합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뒤척인 기억만 가득
시계는 어느덧 오전 5시 30분을 가르킵니다.
"자! 도착입니다. 모두들 짐을 챙기세요"
정동진에 도착입니다.
아빠들과 아이들과 함께 맞는 새벽입니다.
"저기 보세요, 바다가 바로 코 앞이에요"
넬름 넬름 창을 핧는 파도 거품이 느껴집니다.
"아직도 비가 오네? 하지만 이 정도 비라면..."
진행을 맡으신 원우 아버님이십니다.
추억 만들기가 시작되면서부터 계속 준비를 해 오신 아버님.
멀고 먼 정동진, 답사 여행까지 다녀오신 아버님.
"아침 식사하러 갑시다!"
순두부 집입니다.
정동진의 새벽에 밥가가 울려 퍼집니다.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있는 새벽밥입니다.
"이거 어떻하죠? 파도가 높아 유람선이 뜰 수 없다는데요"
"그럼, 일정을 변경해야 되겠네요"
"바닷가 구경하고 조각공원에 가서 놀죠."
"시간이 1시간정도 남는데요"
"아버님들께 협조를 구하죠. 다같이 준비하는 행사잖아요"
비로 인한 사정을 함께 나눕니다.
바닷가입니다.
넘실 넘실 높은 파도입니다.
어느덧 밝아 오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해가 뜬거죠?"
"떴겠죠. 구름뒤에 숨어서 몰래!"
"일출을 못 봐서 좀 아쉽다!"
"그러게요. 하지만 광명에서 이 많은 햇님들이 왔잖아요?"
"그러네요.."
우산을 가져 오지 못한 가족은
서둘러 우산을 준비합니다.
"우산 하나 주세요!"
선생님도 우산을 하나 삽니다.
"조각공원 갑니다!"
바닷가를 따라 걷습니다.
서른개가 넘는 우산이 길을 갑니다.
"우산 바꿔요!"
어린이 우산으로 머리만 가린 주빈이랑 아빠.
선생님과 우산을 바꿉니다.
아빠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다섯 살 준형이.
우산 들랴, 가방들랴, 준형이 들랴
"가방 주세요!"
생각보다 먼 길입니다.
비가 와서 더욱 먼 길입니다.
조각공원에 도착합니다.
커다란 배가 산 위에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 배 안 타요?"
"지금 타러 가잖아"
"아니, 저 배 말구요. 바다위에 있는 배요"
"파도가 너무 높아서 탈 수가 없데. 배가 뒤집어 질 지도 모른데"
"그럼 잠수함 타면 되잖아요"
"그렇지. 잠수함은 안 뒤집어지지"
"그럼, 잠수함 타요"
"그런데, 여기는 잠수함 없단다."
"그래요?"
배를 못 타게 된 것이 영 아쉬운 안식이입니다.
전망대에 오릅니다.
넓고 넓은 바다가 보입니다.
비도 옵니다.
바람도 붑니다.
옷이 젖은 아이들은 옷을 갈아 입습니다.
아빠들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옷을 갈아 입히고 양말을 벗기고
젖은 옷은 널어 놓고 젖은 몸도 널어 놓고.
여기 가고 좋고 저기 가도 좋을텐데
비가 와서 여기도 못 가고 저기도 못 가고
하지만 여전히 아빠와 함께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들은 함께 있습니다.
기념품장에 들렀습니다.
순전히 모래시계 뿐입니다.
엄마 줄꺼, 동생 줄꺼, 오빠 줄꺼..
모래시계가 흐릅니다.
정동진 백사장 모래를 퍼서
우리 집 엄마 계신 집에
모래알을 싣고 가야지...
기차를 타러 갑니다.
간간이 오는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모자릅니다.
"어떻게 하지요?"
"다시 걸어가야 하겠는데요?"
"애들이 힘들지 않을까요?"
"버스가 없으니 걸어가야죠. 함께 가니 서로 도와서 가 봐야지요."
일곱 살 가족이 앞장서고 여섯 살, 다섯 살 가족이 뒤따릅니다.
비가 계속 내립니다.
전화가 옵니다.
"선생님, 버스타야 하지 않아요? 뒤에 계신 분들은 힘드신가 봐요"
"버스가 없어요. 걸어가야 되요"
전화를 끊고 기다립니다.
일곱 살 가족이 다섯 살 가족을 도와주기로 합니다.
힘든 여정입니다.
어려운 걸음입니다.
기다려서 받은 것은 겨우 배낭 하나.
"힘내세요. 이제 다 왔습니다."
"얘들아! 힘내자. 다 왔다"
기차를 기다립니다.
기차가 달려옵니다.
늦어진 도시락 상자를
겹겹이 들고 뛰어 오는 아빠들이 있습니다.
열차 정차 시간은 일 분.
온 힘을 다해 달려오는 아버지들.
창근이 아버지, 혜지 아버지, 안식이 아버지, 원우 아버지.
도시락을 받아 열차에 올립니다.
생각보다 무거운 상자.
두 상자, 세 상자 들기에는 너무나도 무겁습니다.
무거움을 들고 날아갈 듯 뛰어 오신 아버님들.
젖은 옷을 벗고 양말을 벗고
비에 젖은 몸을 말리며
도시락을 나눕니다.
따끈 따끈 도시락.
손에 손에 나눕니다.
따뜻한 밥, 따뜻한 기차.
"선생님, 아버지들은 거의 다 사망하셨구요,
아이들은 거의 다 되살아났습니다."
창근이 아버님의 말씀에 열차 안을 둘러 봅니다.
아버님들은 모두들 잠에 빠졌고
아이들은 모자란 놀이에 빠졌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손에 손에 든 모래시계에 있고
열차안에는 아빠와 아이들만 있습니다.
"오늘,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비가 와서 힘들었고 걷느라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너무 너무 잘 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추억 만들기 행사가 끝이 났습니다.
1차에서부터 4차까지
매주 일요일 쉼 없이 달려온 행사입니다.
아버님들이 준비 하고 아버님들이 발로 뛰고
아버님들이 함께 한 행사입니다.
잘 하고 못 하고가 없는 행사입니다.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사입니다.
"우리 다음 주에 술한잔 합시다!"
거나한 약속을 남긴 채 돌아섭니다.
아빠와 함께 한 추억 만들기.
우리네 아이들의 마음속에
추억 하나 선명히 세겨진 날들입니다.
모두들 너무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로움에 행복이 함께 할 것입니다.
수고로움에 사랑이 함께 할 것입니다.
아이들 마음에 커다란 아빠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아버님들은 분명 좋은 아빠입니다.
모두들 너무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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