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1년에 한 번 씩
나이라는 수치로 알려주는 과정입니다.
아이들이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다고 볼 때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에
성장과 건강함을 축하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어린이라고 해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
모두 기쁘고 행복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아이들 스스로 자연스럽게 배워 터득하는
성장보다는 미리 준비하여 성장을 시켜주는 때에는
특히 말입니다.
선행학습과 스스로 학습
자주 듣는 말 중에
‘선행학습’과 ‘스스로 학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행학습이란 남보다 먼저 또는 시간적으로 먼저
다른 일보다 먼저 미리 하는 학습을 말하는데
이 말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려고 하기 이전에 하는
학습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행학습과 스스로 학습은
결코 한 바구니에 담을 수 없는 말이라고 보는데
선행학습을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는
스스로 학습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스스로 학습은
자연스러운 스스로가 아닌
사회적 흐름에 따른 스스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너도나도 하니 그러한 흐름에 따라
아이들도 그것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는
흐름 말입니다.
스스로라는 말에는
아이들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자연스런 호기심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러한 이유로 선행학습 안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끌어내기 위한
알록달록 막대사탕마냥 달고 현란한
유혹꺼리들도 잔뜩 생겨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선택하는 것은
아이이기 이전에 부모이므로
부모를 유혹하기 위한 꺼리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아이가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내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특히나 다른 아이와의 비교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항상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선행학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학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글과 수를 미리 배우지 않고
초등학교에 가는 어린이가 없을 뿐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선행학습을 미리 한
어린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깨 펴고 당당히 학교를 다니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행하게도 이러한 과정은
1학년 때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또 한 번 크게 좌지우지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며 슬픈 현실입니다.
유아시기 선행학습의 효과는
짧게는 초등 1년 길게는 초등 2학년 말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3학년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아이 스스로에 의한 학습에 따라
결정되어 진다고 하는데
과연 이때부터는 아이 스스로 학습을 하게 될까요?
아니면 이때를 위한
또 다른 선행학습, 학원이 필요한 걸까요?
유아시기에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이
3학년 이후부터는 스스로에 의한 학습이
쉽게 잘 이루어질 수 있다면
유아시기의 선행학습은
싫든 좋든 자연스런 성장에 맞든 안 맞든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길고 긴 아이들의 배움의 시간의 첫 단추인
초등학교에서 잘 적응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아닌 스스로를 가장한
또 다른 선행학습, 또 다른 형태의 학원으로
감당해야 한다면
이것은 분명 큰 잘못임에 틀림없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스스로에 의한 선택과 학습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흐름에 따라
남들 가듯이 그렇게 흘러가게 될 것이 뻔합니다.
경쟁 사회가 만들고 있는 이러한 거센 물결 속에서
과연 살아남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똑같은 과정과 똑같은 비교 속에서
몇 안 되는 아이들 속에 내 아이가 낄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설령 내 아이가 그 속에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과연 내 아이의 삶이 행복하였다
이후 삶은 행복할 것이다 말할 수 있을까요?
내 아이가 살아온 이러한 성장의 과정들이
내 아이가 살아갈 굴곡 많은 내일에
참 힘이 되어줄까요?
교육은 한치 앞 만을 내다보는
현실적이고 단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교육은 아이들이 제 생긴 모습 그대로
제 모습을 가꾸어 가고
제 선택에 의해 제 미래를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계획입니다.
우리는 분명 아이들을 잘 교육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혼란스러운 때입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의 부모나 선생님보다
더 많은 고민과 갈등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들이라면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은
어느 누구나 다 비슷할 것입니다.
주어진 제 모습을 사랑하고
제 능력을 발휘하여 제 삶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실로 제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하고 즐기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등의 바람들은
어느 누구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부모인 우리가,
인생을 먼저 살아온 선배인 우리가
아이들이 어떤 것을 선택하게 도울 지 결정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 그리고 곧 다가올 모습에서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내일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1년에 한 번 씩
나이라는 수치로 알려주는 과정입니다.
아이들이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다고 볼 때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에
성장과 건강함을 축하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어린이라고 해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
모두 기쁘고 행복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아이들 스스로 자연스럽게 배워 터득하는
성장보다는 미리 준비하여 성장을 시켜주는 때에는
특히 말입니다.
선행학습과 스스로 학습
자주 듣는 말 중에
‘선행학습’과 ‘스스로 학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행학습이란 남보다 먼저 또는 시간적으로 먼저
다른 일보다 먼저 미리 하는 학습을 말하는데
이 말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려고 하기 이전에 하는
학습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행학습과 스스로 학습은
결코 한 바구니에 담을 수 없는 말이라고 보는데
선행학습을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는
스스로 학습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스스로 학습은
자연스러운 스스로가 아닌
사회적 흐름에 따른 스스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너도나도 하니 그러한 흐름에 따라
아이들도 그것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는
흐름 말입니다.
스스로라는 말에는
아이들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자연스런 호기심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러한 이유로 선행학습 안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끌어내기 위한
알록달록 막대사탕마냥 달고 현란한
유혹꺼리들도 잔뜩 생겨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선택하는 것은
아이이기 이전에 부모이므로
부모를 유혹하기 위한 꺼리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아이가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내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특히나 다른 아이와의 비교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항상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선행학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학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글과 수를 미리 배우지 않고
초등학교에 가는 어린이가 없을 뿐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선행학습을 미리 한
어린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깨 펴고 당당히 학교를 다니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행하게도 이러한 과정은
1학년 때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또 한 번 크게 좌지우지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며 슬픈 현실입니다.
유아시기 선행학습의 효과는
짧게는 초등 1년 길게는 초등 2학년 말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3학년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아이 스스로에 의한 학습에 따라
결정되어 진다고 하는데
과연 이때부터는 아이 스스로 학습을 하게 될까요?
아니면 이때를 위한
또 다른 선행학습, 학원이 필요한 걸까요?
유아시기에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이
3학년 이후부터는 스스로에 의한 학습이
쉽게 잘 이루어질 수 있다면
유아시기의 선행학습은
싫든 좋든 자연스런 성장에 맞든 안 맞든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길고 긴 아이들의 배움의 시간의 첫 단추인
초등학교에서 잘 적응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아닌 스스로를 가장한
또 다른 선행학습, 또 다른 형태의 학원으로
감당해야 한다면
이것은 분명 큰 잘못임에 틀림없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스스로에 의한 선택과 학습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흐름에 따라
남들 가듯이 그렇게 흘러가게 될 것이 뻔합니다.
경쟁 사회가 만들고 있는 이러한 거센 물결 속에서
과연 살아남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똑같은 과정과 똑같은 비교 속에서
몇 안 되는 아이들 속에 내 아이가 낄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설령 내 아이가 그 속에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과연 내 아이의 삶이 행복하였다
이후 삶은 행복할 것이다 말할 수 있을까요?
내 아이가 살아온 이러한 성장의 과정들이
내 아이가 살아갈 굴곡 많은 내일에
참 힘이 되어줄까요?
교육은 한치 앞 만을 내다보는
현실적이고 단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교육은 아이들이 제 생긴 모습 그대로
제 모습을 가꾸어 가고
제 선택에 의해 제 미래를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계획입니다.
우리는 분명 아이들을 잘 교육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혼란스러운 때입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의 부모나 선생님보다
더 많은 고민과 갈등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들이라면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은
어느 누구나 다 비슷할 것입니다.
주어진 제 모습을 사랑하고
제 능력을 발휘하여 제 삶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실로 제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하고 즐기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등의 바람들은
어느 누구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부모인 우리가,
인생을 먼저 살아온 선배인 우리가
아이들이 어떤 것을 선택하게 도울 지 결정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 그리고 곧 다가올 모습에서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내일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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