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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한결같이, 몸 놀이 선생님 이야기

여름 몸 놀이

여름 몸 놀이

 

여름 몸 놀이라고 해서 뭐 특별할까 싶지만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기스포츠단 시절에는 체육실마다(아기스포츠단 때는 연령별 체육 교사와 체육실이 따로 있었습니다.) 에어컨이 있어서 무더운 여름이면 에어컨이 더위를 식혀주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몸을 움직여 땀을 내고 몸 익히기를 하는 몸 놀이 시간에 에어컨의 힘을 빌려 인위적으로 땀을 제어하고 순간적으로 더위를 식히는 일은 지구환경이나 아이들의 몸 어느 면에서나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옥길동에 풀씨 학교를 만들고 교실 중 가장 큰 교실인 체육실을 만들면서도(처음에는 체육실이 두 개 있었습니다. 지금의 민들레 반 교실이 작은 체육실이었습니다.) 교실마다 에어컨을 하나씩 들여 놓았습니다. 물론 체육실에는 보다 큰 용량의 에어컨을 들여 놓았지요. 하지만 창만 열면 자연이 손짓하는 옥길동에서 더운 바람을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을 바로 바라볼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실에서 에어컨을 내보냈습니다. 에어컨이 있던 자리에는 선풍기가 그리고 아이들의 손에는 부채가 들려졌습니다. 한 여름에는 모든 교실의 창을 열고 복도에 앉으면 사방에서 불어오는 자연 바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더우면 웃통을 벗고 등목을 하거나 발을 물에 담그고 물장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 여름 풀씨에서 생활하는 것에 나름 운치가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한 여름 몸 터에서 몸 놀이를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른 교실과 달리 중간 천장이 없는 몸 터는 내리쬐는 여름 볕을 고스란히 받아 들여 그 열기로 늘 후끈후끈 하였습니다. 선풍기를 틀면 시원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운 바람이 날아다녔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무더위 그리고 계속되는 장마 속에서도 활기차게 몸 놀이를 하면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여름 몸 놀이는 달라야 했습니다.

천사 체조나 올챙이 체조에 등장하는 물뿌리개는 놀이를 위해 어쩌다 등장한 소품이 아닙니다. 한 여름 더위를 가시게 하는 방법으로 고민 속에 나온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한 번은 몸 터를 물바다로 만들어 놓고 몸 놀이를 한 적도 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미끄러지기 일쑤였지만(바닥이 쿠션이 있는 고무바닥이라 넘어져도 위험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고무공에 바람을 빼고 물 썰매마냥 아이들과 타기도 하였습니다. 달랑 수영복 한 장만 입고 몸 놀이를 하기도 하고 몸 놀이 후에 간단 샤워로 더위를 날리기도 하였습니다. 밥을 먹고 난 오후에는 식곤증에 꾸뻑 조는 아이들도 있어 등을 시원하게 하는 등목은 얼음물마냥 온 몸을 시원하게 식혀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물놀이만큼 기다려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수영장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몸 터에 아예 수영장을 들여 놓기도 하였습니다. 커다란 물통을 몇 개 가져다가 미끄럼을 타고 물통에 풍덩 빠지는 놀이는 색다른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신나게 놀고 난 후 청소를 하는데 반나절이나 걸리는 점을 빼면 말이지요. 두 번째로 시도한 방법은 베란다에 수영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방수 천을 가져다가 베란다 주변을 에워싸고 물을 받아 물놀이를 하였는데 나름 비가 오는 날에도 물놀이를 할 수도 있고 추운 날에는 미지근한 물을 받아 할 수도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뒤처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여름에는 베란다를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 늘 불편하였습니다.

운동장에 수영장을 만드는 일은 마음을 먹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첫 꿈은 물을 갈아줄 필요가 없는 생태 수영장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수영장보다 수영장을 생태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더 커야 하기 때문에(커다란 인공 연못 속의 수영장) 엄두를 낼 수 없어 다음 방법으로 땅을 파고 벽을 쌓아 수영장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땅을 파는 일에는 풀씨 아버님들이 큰 몫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수영장 넓이만큼 그리고 깊이 1미터의 땅을 삽으로 파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풀씨 아버님들이 이것을 해 내셨습니다.(지금 생각해도 그 감동과 노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렇게 파여진 땅에 옥길동 마당에서부터 커다란 호스로 시멘트를 붓고 틀을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틀에 수영장용 방수 페인트를 바르는 몫은 풀씨 선생님들의 몫이었습니다. 한 여름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 온 몸에 페인트를 묻혀 가며 수영장에 옷을 입혔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영장에 지하수로 뽑아 올리는 볍씨 수돗가에 100미터 가량의 호스를 연결하여 물을 받았습니다. 풀씨 아이들이 물놀이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을 받으려면 사흘을 꼬박 받아야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양이었습니다.

수영장에서 처음 물놀이를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우리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한다는 일은 시원한 물놀이 외에도 실로 대단한 바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비가 옵니다. 수영장에 빗물이 가득 고입니다. 베란다를 통해 수영장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에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는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을 살짝 훔쳐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