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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몸 놀이 연구소

1년을 마치며

1년을 마치며.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었다.
교사로 산다는 것은
농사를 짓는 일이다.
작물을 가꾸는 일이 아니라
땅을 키우는 일이다.
좋은 작물을 심는 것보다
어떠한 작물을 심어도
잘 되는 땅을 일구는 일이다.

봄이면 땅을 뒤집는다.
겉과 속이 뒤섞여 하나가 되도록.
이것은 교사의 몸과 마음의 일신과 같다.
그리고 거름을 뿌린다.
거름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을 기름지게 하고 생명이 숨쉬게 한다.
아이들은 토양이다.
그러므로 작물을 위해 토양을 개간하지 않고
토양을 위해 작물을 선별한다.

작물을 심은 후에는
작물이 토양에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아이들과의 만남과 이어짐에 있어서도
관계의 뿌리를 맺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뿌리를 잘 내린 작물은 어떠한 시련에도 굳건하다.
햇볕과 비와 바람은
작물을 보다 건강하게 하고
메마름과 더위는
작물을 충분히 인내하게 한다.
아이들간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수많은 상황들이 이와 같다.
때로는 햇볕같다가도
이것이 메마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목마름의 해갈이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장마로 이어지기도 한다.
농사를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과정이 필요하다.
비닐하우스 속 작물은 바람을 알지 못한다.

가을이 되어 작물을 거둬들이고 나면
토양에는 작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이것은 토양에 저장된 작물의 기억이고
이러한 기억은 토양의 새로운 성질을 결정한다.

1년 농사를 마쳤다.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어떠한 작물을 얼마만큼 수확했는지
세어 보는 대신
아이들의 토양이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마음 밭을 돌아 본다.
지금은 교사가 아이들의 토양에 농사를 짓지만
결국 토양의 주인은 아이들이고
아이들이 대지의 농부다.
아이들 스스로 심을 작물을 선별하고
작물을 가꾸며 수확을 꿈꿀 수 있도록
교사는 작물보다는 늘 대지를 살펴야 한다.
이것이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의 자연친화적 농사법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나는 삽을 들고 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