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입니다.
"선생님.. 밥 다 먹었어요.. 치카치카도 했구요..
친구들 쓰는 수건도 갈아 놓았구요.. 그럼 이제 저 놀아도 되죠? "
"나팔꽃 물은 주었니?"
"아참.. 나팔꽃 물을 안 주었네.."
"나팔꽃 물은 안 줘도 될것 같은데? 저기 봐..
누가 주고 있잖아?"
"누가요?"
"비가..."
"맞다.."
한달하고도 열 밤전에
아이들만큼 작은 화분 하나씩에
콩알보다 작은 나팔꽃 씨 세개씩을 심었습니다.
아이들이 냠 냠 점심을 먹고 나면
돈가스 소스통을 잘라 만든
나팔꽃 밥통에 물을 담아
나팔꽃 화분에 물을 줍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나팔꽃 화분에
나팔꽃씨를 심었는데
나팔꽃이 자라는 화분은
눈 비비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상하다.. 분명히 나팔꽃씨를 심었는데..'
밤마다 옥길동 작은 들꽃씨가 날아와서
화분 하나씩에 집 하나씩을 지었는지
화분마다 들꽃 천지입니다.
'뽑아서 옮겨 심어줘야 하나?
나팔꽃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이 가고 난 후
창가에 쭈그리고 앉아
똑! 똑! 처마물을 받아 마시는
작은 화분들을 바라봅니다.
옥길동 자연화단에
검은색 화분 스물다섯개..
꼭 나팔꽃일 이유는 없겠다싶습니다.
화분에 무엇이 자라든
아이들은 매일 매일 물을 줄 것이고
하루가 다르게 무럭 무럭 자라는 녀석들을 보며
우리네 아이들도 무럭 무럭 자랄테니까요.
우리네 아이들..
똑 같은 교실에서 똑 같은 물을 주어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삐죽 빼죽 자라듯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키재기하는
검뎅이 화분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 봅니다.
'이녀석들도 참..
어쩜 이리도 질경이반 녀석들하고
똑 닮았을까?'
선생님 마음엔
질경이 투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