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배움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세 연령의 아이들을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몸 놀이 선생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예전 아기스포츠단 시절에는 한 연령의 아이들과만 몸 놀이를 진행했었습니다. 적응기간인 3월이 지나고 나면 아이들도 선생님도 서로에게 익숙해져 자연스러운 일상생활로 접어듭니다. 일상이라는 것은 최소의 긴장으로 생활하게 되는 때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일상생활 속에서의 변화를 알아차리기에도 둔해지기 마련입니다. 매일 다른 연령의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이러한 물러짐을 알아차리게 해 줍니다. 찬 물에 샤워를 하는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줍니다.
사실 아이들을 연령별로 구분하는 것도 무리가 없지 않습니다.
오래 전 우리나라 교육은 마을을 중심으로 한 통합 교육 속에 서로 다른 개인차가 자연스럽게 존재하였고 서로 배움의 과정이 아이들 속에서 물 흐르듯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 알고 보니 일제의 잔재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아이들을 비교하여 등급별로 나누기 위해 마련한 연령별 구분이었다고 합니다. - 개인차나 개성에 상관없이 연령 만으로만 아이들을 묶어 구분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성장의 시점은 아이마다 서로 다르지만 그것이 꼭 나이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섯 살에서 성장이 빠른 아이는 여섯 살에서 성장이 느린 아이와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빠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연령을 통해 묶게 되면 말도 안 되는 기준점이 만들어집니다. 소위 말하는 연령별 난이도입니다. 다섯 살 아이들은 한 발 뛰기를 할 수 없고 여섯 살 아이들은 공을 주고받기가 어렵고 일곱 살 아이들은 뜀틀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과 같은 예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섯 살 아이들 중에도 한 발 뛰기를 잘 하는 아이가 있고 일곱 살 아이 중에도 뜀틀 운동을 못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좁혀 가는 방법은 교사에 의한 배움보다는 아이들 간 배움이 좋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같은 아이들 사이에서의 배움보다는 나이가 서로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의 배움이 아이들을 보다 편하게 해 줍니다. 형제, 자매가 많았던 시절에 형, 누나, 오빠, 언니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이런 점에서 서로 다른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풀씨 몸 놀이 선생님은 한 마디로 축복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다섯 살 아이들 중에는 아직 가위, 바위, 보를 할 줄 모르는 아이가 있습니다. 가위, 바위, 보를 하면 생전 처음 보는 손 모양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일곱 살 아이 중에는 상대의 손 모양을 보고 자기가 낼 것을 결정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친구보다 늦게 내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짧은 순간에 결정하는 모습은 한마디로 경이롭습니다. 이렇듯 놀이에도 변화와 성장 과정은 명확하게 존재합니다.
변화와 성장 과정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 중에는 또래 집단의 수준도 중요한 몫을 담당합니다. 언제 한 번은 일곱 살 아이들이 모두 남자 아이들로만 구성된 적이 있었습니다. 여자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는 가운데 담임선생님도 몸 놀이 남자 선생님이었으니 그 반의 성격은 참으로 특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늘 시끄럽고 싸움이 끊이지 않았지만 졸업할 때 즈음 아이들의 운동 능력은 초등학교 2학년과도 맞먹을 수준이 되었습니다. 서로 갈등하고 부딪히면서 서로 배움의 과정도 치열하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렇듯 아이가 속해있는 집단의 모습이 어떠한 지에 따라 서로 배움의 정도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풀씨에 처음 왔을 때 한 반의 정원은 35명이었습니다. 거기에 광명 지역은 이사 빈도가 높아 대기자를 더 받아 39명까지 수업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풀씨 학교의 정원은 15명에서 20명 내외입니다. 무려 반수나 줄어들었습니다. 그만큼 개개인 아이들과 대화하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고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더 많아졌습니다. 여기에 서로 배우고 나눌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충분히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과 더불어 서로 배움에 있어서도 활짝 문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풀씨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이러한 기회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배움은 책 을 통해 선지식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서로 나누는 가운데 더욱 커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